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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제가 초등학교에 막 들어갔을 때의 기억입니다. 워낙 황당하고 부끄러운 일이라 지금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집에 놀러온 이모가 지폐 몇 장을 쥐어주면서 일회용 기저귀를 사 오라고 심부름을 시켰습니다. 제겐 동생이 둘 있지만 부모님은 항상 천 기저귀를 사용했기 때문에 그 때까지 일회용 기저귀를 사본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가서 보면 알겠지 싶어 그냥 슈퍼에 갔고 구석에 놓여 있는 '프리덤'이라고 적혀 있는 기저귀(?)를 하나 손에 들고 집으로 갔습니다. 그 다음 상황은 말 안해도 짐작이 갈 겁니다. 부모님과 이모는 뭐가 재미있는지 한참을 웃으셨고, 전 영문도 모르고 다시 바꾸러 가야 했습니다. 그게 생리대라는 것이며, 여자들은 일정한 나이가 되면 그게 필요하다는 사실을 설명 듣고 나서는 한동안 다른 슈퍼를 이용해야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 제가 중학교에 다닐 때 다시 생리대를 보게 되었습니다.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방에서 우연히 어릴 적 슈퍼에서 샀던 그 물건을 보게 된 것입니다. 한 살 많은 친구 누나가 쓰는 것이었습니다. 평소 나이 차도 별로 나지 않아서 친구처럼 지냈던 그 누나가 그날 이후로 자꾸만 멀게만 느껴졌습니다. 난 아직도 어린 것 같은데 누나는 벌써 어른이 다 된 것처럼 생각된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저의 사춘기의 시작도 아마 그때부터가 아닌가 싶습니다.

또 다시 생리대를 만나게 된 것은 군에 입대하고 난 이후였습니다. 장거리 행군이 있는 날, 동기 하나가 손에 생리대 하나를 쥐어 주었습니다. 완전군장을 하고 장거리 행군을 하면 다리도 물론 아프지만 군장을 멘 어깨가 아파서 고생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생리대를 어깨에 대고 군장을 메면 어깨가 무리가 덜 간다고 해서 몇몇 군인들이 생리대를 즐겨 사용하곤 하는데, 마침 동기가 한 팩을 사서 그 중 몇 개를 나눠준 것입니다. 그때의 일이 생리대와 관련된 세 번의 기억 중 가장 유쾌했던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결혼을 한 지도 벌써 7년째가 되다 보니 가끔은 할인점에서 쇼핑을 하다가 아내의 생리대도 함께 고르기도 할 정도로 이젠 생리대에 대한 거부감이나 특별한 감정은 없습니다. 다만 한 달에도 몇 일씩 생리대에 의지해야 하는 여자들이 안쓰럽다는 생각을 가끔 할 뿐이죠. 피 묻은 생리대를 다리 사이에 끼우고 생활하는 것은 남자인 저는 상상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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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단체 "생리대 가격 낮춰라"

며칠 전 한국여성민우회가 생리대 가격인하 캠페인을 벌인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일년에 23억개가 소비된다는 생리대가 기초생필품 목록에서 빠져 있으며 그로 인해 부가가치세가 덧붙여진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 나라 전반을 뒤덮고 있는 모성보호에 대한 인식부재가 얼마나 심각한지 다시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생리대 면세 요구가 "일고의 가치가 없다"는 재경부 당국자가 만일 한 달에 몇 일씩, 삼사십년을 생리대와 벗해야 하는 여자였다고 한다면 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지도 의문입니다. 저 같은 남자에게는 생리대가 옛 추억을 떠올리는 하나의 소품에 불과하겠지만, 여자들에게는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생필품입니다.

재경부 당국자들의 발상의 전환을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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