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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저는 35세이며, 6살 된 사내아이와 3살 된 딸아이를 두고 직장을 다니고 있는 평범한 회사원이자 가장입니다. 참고로 저는 4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지금 부모님은 서산의 한 시골집에 내외분이 사시고 큰형과 작은형은 부모님과 약 자동차로 40여분의 거리에 분가하여 살고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저의 가족사에 대하여 언급을 하는 이유는 이어지는 글에 대해 보다 쉽게 이해하실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지난 8월 29일 11시 20분경 저는 회사에서 밀린 업무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때 두 아이는 잠들어 있었고, 아내는 비몽사몽으로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거의 자정이 될 무렵 몸을 씻고서 방으로 들어가 자기 전에 늘상 하던 것처럼 큰아이(민호)와 둘째아이(민주)를 쓰다듬어 주고 자려고 하였습니다.

큰아이(민호)를 만져보니 약간 미열이 있음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여보! 민호가 미열이 있네"라고 했더니 아내가 "날씨가 더워서 그럴 거야"라고 시큰둥하게 대답을 하더군요. 저도 그날 날씨가 워낙 후덥지근했기에 날씨 때문이기도 하려니와 원래 애들은 잘때 열이 좀 난다는 그 동안의 경험으로 미루어 짐작해 그냥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거의 1시간여가 흘러 막 잠이 들었을 때 갑자기 아내의 비명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저는 이게 꿈이려니 했습니다. 그런데 재차 아내의 비명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민호야 너 왜 그러니?" " 민호야 정신차려"라고 말입니다. 제가 놀래서 벌떡 일어나 방안의 불을 켜는 순간 저는 너무나 놀랬습니다. 과연 어떤 상황이었을까요?

아, 제가 비몽사몽간에 일어나서 불을 켜고 난 다음에 본 것은 정말로 끔찍한 광경이었습니다. 올해 6살된 큰 아이가 두 눈을 뒤집고 흰자만 보이는 상태에서, 그리고 얼굴은 오른쪽으로 돌아간 상태로 오른팔과 오른다리가 뒤틀려서 마비상태에 있는 것이었습니다.

참고로 저는 육군대위로 제대를 하였습니다. 그래서 군생활을 하면서 각종 사고나 응급상황이 발생했을 때 누구보다도 침착하게 대처를 해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내 눈 앞에 큰아이가 그런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서는 순간적으로 아무 생각이 없었습니다.

약 10여초를 물끄러미 보고 있으려니 아내가 재차 "민호야! 엄마야! 정신차려!"하면서 큰아이를 끌어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경황이 없고, 정신이 없는 듯이 갈팡질팡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에서야 저는 이것이 꿈이 아니고 현실이라는 생각과 함께 큰아이를 빼앗듯이 끌어안았습니다. 그때 큰아이의 체온은 그야말로 불덩이처럼 뜨거웠고, 그 열기에 큰 아이는 시금치를 뜨거운 물에 넣었다가 꺼낸 것처럼 축 늘어져 있었습니다.

저는 큰아이를 끌어안고 거실로 나오면서 아내에게 소리쳤습니다. "빨리 119로 전화해!" 그랬더니 그제서야 갈팡질팡 왔다갔다 하던 아내가 수화기를 집어들어 119에 신고를 했습니다.

큰아이를 안고 거실로 나왔을 때 큰아이가 제 품에 안긴 채로 소변을 보더군요. 너무 뜨거웠습니다. 제 몸을 타고 흐르는 아들놈의 소변의 체온이 심상치 않음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그러다보니 제가 반바지도 안 입고 팬티와 런닝셔츠 차림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들놈을 거실바닥에 내려놓고 반바지를 허겁지겁 주워입었습니다. 그리고 아내에게 다시 소리쳤습니다 "아니 뭐해 빨리 옷입지 않구?" 그제서야 아내도 옷을 입고 둘째아이를 깨우더군요.

저는 우선 큰아이를 먼저 끌어안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나오면서 "민호야! 아빠야! 정신차려~"라고 소리를 치면서 의식이 없는 아들놈을 깨우려 하였습니다. 혹시나 하여 감겨진 눈을 손으로 벌려봤지만 초점은 없었고, 숨을 가쁘게 몰아쉬고 심장박동은 마치 100m를 전속력으로 질주를 한 사람처럼 급박하게 몰아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저 멀리서 앰블런스 불빛이 보이더군요. 손을 번쩍 들고 침대에 눕히자 아내도 둘째를 안고 나와서 앰블런스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앰블런스 안에서도 계속 저와 아내는 "민호야 정신차려"를 외치며 채 1Km도 안 되는 산본전철역 주변에 있는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바로 첫번째 4거리에서 차 몇 대가 앰블런스의 길을 가로막았습니다. 그 차들은 분명히 신호등의 지시에 움직이고 있었건만 저는 그분들이 그렇게 얄미울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덧 차는 병원의 응급실에 도착(새벽1시)하고 의사와 간호사가 나와서 상황을 파악하고 큰아이의 몸무게를 물어보고 하는데 저는 사실 큰아이의 몸무게가 얼마인지 몰랐습니다. 순간 속으로 내가 아들놈에 대하여 너무 아는 게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내가 말을 하더군요 "약 17Kg정도 될 겁니다"라고요

간호사는 간단한 상황을 파악하고 링겔주사를 준비하더니 큰아이의 왼손을 들고 손등에 있는 혈관을 찾아서 바늘을 꽂았습니다. 그때까지 아무런 반응이 없던 아들놈이 "아퍼~ 으앙~"하고 울음을 터트리더군요

저는 그 순간 그렇게 아들놈이 고마울 수가 없었습니다. 평소에 징징대며 울 때는 "큰인물 될 사람이 그렇게 쉽게 울면 안된다"라고 말을 하곤 했었습니다. 그러나 그 시간만큼은 아이의 울음소리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 고마워서 눈물이 다 나오더군요.

그리고 수건을 미지근한 물에 적셔서 38.9도에 이르는 큰아이의 몸을 목과 겨드랑이 사타구니 등을 중심으로 닦아주면서 온도를 낮추기 시작했습니다. 간호사가 저에게 "애가 몇 살이에요?"하고 물었습니다. 제가 "6살입니다"라고 했더니 간호사는 "어 이상하다 보통 6살은 경기를 안하는데 참 드문 일이네"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에 저는 조금 더 불안해졌습니다.

약 20여분에 걸쳐서 물수건으로 온도를 낮추는 맛사지를 하였더니 큰아이가 이제 좀 정신이 드는 눈치였습니다. 계속해서 큰아이는 "엄마" "엄마" "엄마"만을 부르짖었습니다. "아빠"라는 말은 한마디도 안하더군요. 사실 그 순간 약간은 서운하기도 하였지만 저는 큰아기가 깨어나준 것만 해도 너무나 고마웠습니다.

상황이 어느 정도 호전되어 응급실 밖으로 나왔습니다. 하늘에는 별이 총총히 떠 있었습니다. 한 분이 담배를 피우고 있더군요. 그래서 염치불고하고 담배를 한 대 얻어피웠습니다. 그때서야 시골에 계신 어머니가 생각이 나더군요. 아마도 아버지가 이런 저의 모습을 보고 아까 전의 저처럼 서운해하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지금 글을 쓰는 이 시간에 드는군요.

약 40여분이 지났는데도 큰아이는 아직 확실한 정신이 안 들었는지 헛것이 보이는 듯한 말을 하였습니다. "엄마 요구르트 먹기 싫어, 이제 안먹을래~", 또는 침대 머리맡에 앉아 있는 아내의 배 부분을 가리키며 "엄마 이 동물은 무슨 동물이야?"라는 등의 말을 하였습니다. 순간 저는 혹시 저승사자가 큰아이 앞에 와 있는 것을 보고 말하는 것은 아닌지하여 불길하기도 하였습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체온이 많이 떨어졌습니다. 큰아이가 정신을 차리고 퇴원을 하려고 하니 그때 갑자기 명치 윗 부분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묵직한 고통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너무 긴장을 했다가 긴장이 풀리면서 약간의 위경련이 일어난 것이라고 짐작했습니다.

퇴원수속을 마치고 별이 어스름하게 빛을 발하고 있을 때 저는 큰아이를 가슴에 안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병원의 의사님들과 간호사님들께 너무나 고맙고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자동적으로 인사를 하는 제 허리가 90도로 꺽어졌습니다. 아니 큰절이라도 하고 싶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서 안방에 들어온 순간 불을 켰을 때, 큰아이의 흉칙한 잔상이 그대로 머릿속에 생생하게 남아서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날 원래 대전에 출장을 갔다오기로 했었는데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기 때문에 도저히 운전을 할 수 없을 것 같아 사장님께 말씀드리고 출장은 가지 않았습니다. 출장은 가지 않고 회사에 출근을 하기는 했지만 그날은 하루종일 업무에 집중을 하지 못하고, 자꾸 불을 처음 켰을 때의 흉칙한 잔상이 남아서 찝찝한 하루를 보냈습니다.

퇴근시간이 다 되어서 '오늘 큰아이와 아내에게 맛있는 거나 사주어야지'하며 평소보다 일찍 퇴근을 하였습니다. 퇴근을 하다가 길이 막혀잠시 꼼짝 못하는 동안 시골에 계신 어머니에게 전화를 드렸습니다.

저 : 어머니, 저 막내에요!
어머니 : 어, 그래 어디냐?
저 : 퇴근하는 길이에요(갑자기 안경이 뿌여집니다).
어머니 : 오늘은 일찍 퇴근하는구나.

저 : ...ㅠ.ㅠ
어머니 : 무슨 일 있니?
저 : 아니요!
어머니 : 무슨 일 있구나.

저 : 어머니 진지 잡수셨어요?
어머니 : 아니 이제 먹어야지.
저 : 사실 어제 민호가 경기를 해서 깜짝 놀랬었어요.
어머니 : (놀래신 목소리로)그래! 지금은 어떠냐?

저 : 지금은 괜찮아요, 그나저나 제가 예전에 경기를 그렇게 많이 했었다면서요?
어머니 : 너는 바늘로 살았다. 말도 마라~.
저 : (앞서가는 차들이 뿌얘지면서 앞이 안 보여 안경을 벗고 손으로 훔치고 나서야 차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다행이 차가 막혀서 서 있는 상태였습니다.)ㅠ.ㅠ

어머니 : 내가 예전에 아퍼서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형들하고 니 아버지만 있을 때 경기해서 벗건너(제 시골집에서 약 1km 떨어진 곳으로 자그마한 산을 넘어가야 됨) 택민이 아버지한테 둘째가 그 야밤에 뛰어가기도 했었지.
저 : ㅠ.ㅠ
어머니 : 너는 10살때까지 경기했단다. 아마도 넌 하도 많이 해서 셀수도 없었단다.

그러시며 예전에 어머니가 제가 경기할 때 쓰셨던 민간요법을 유명한 한의원이 처방을 전수하시듯 약과 바늘로 따는 방법 등에 대하여 강의(!)를 하셨습니다.

저 : 어머니 진지 잡수시고 쉬세요. 추석 때나 한번 내려갈께요~.
어머니 : 그래 조심하고 언제나 맡은 바 임무에 충실하구, 항상 조심하구~(아직도 제가 물가에 내논 어린네처럼 타이르십니다).

아직도 70이 거의 다된 연세에 일 안하면 몸이 아프다는 핑계를 대시며 없는 살림에 생활비를 버시느라 그 뜨거운 뙤약볕에 꼭두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일을 다니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전화를 끊고 담배를 빼어 물었습니다. 어머니! 저는 진짜로 불효자였던 것 같습니다. 저는 이제 겨우 한 번 이런 일을 겪고 나서 가슴이 숯덩이가 된 듯한 느낌이었는데... 저는 속으로 '어머니, 아버지 건강히 오래오래 사십시요. 제가 빨리 자리잡아서 용돈도 많이 드리고 하겠습니다'하고 기원했습니다.

옛날에 배웠던 글이 생각납니다.

'나무가 가만히 있고자 하나 바람이 멈추지 아니하고, 자식이 효도를 하고자 하나 부모가 기다리지 아니한다.'

그렇습니다. 지금의 우리가 있기까지 부모님의 고생은 말로 다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가슴은 아마도 커다란 숯덩이가 되어 있겠죠. 여러분 효도하십시오. 그날 다시 한번 이 지면을 통해서 119구조대원과 산본의 원광대 한방병원 응급실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지금까지 두서없이 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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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민족과 국가가 향후 진정한 자주, 민주, 통일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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