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죽어도 좋아>의 한장면
ⓒ 박진표

70대 노인들의 삶과 사랑을 그린 박진표 감독의 영화 <죽어도 좋아>가 지난 7월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로부터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은 후 재심을 신청, 오는 27일 발표될 재심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젊은 영화인들은 <죽어도 좋아>의 제한상영가 등급은 부당하다며 목소리를 높였고, 몇몇 유명 영화인들은 영화전문지에 <죽어도 좋아>를 지지하는 글을 쓰면서 이 영화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그렇다면 일반인들은 <죽어도 좋아>를 어떻게 보았을까? 기자는 20대, 40대, 70대의 관객들이 <죽어도 좋아>를 어떻게 보았나를 알기 위해 인터뷰를 시도했다. 그러나 영화를 관람한 70대 관객이 끝내 인터뷰를 거부해 지난 8월 7일 문화연대에서 개최한 <죽어도 좋아> 관람등급 토론회에 참석했던 한 70대 노인의 발언을 대신 싣는다. 김목인·25세·고려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재학중 나는 이 영화를 의외로 평범하게 보았다. 문제의 장면에 대해서 한마디하라고? 음... 노출은 있었다. 그래서 그 장면을 영등위가 문제삼는 것이고. 하지만 솔직히 야한영화를 보고 있을 때의 신체적 자극이나 정신적인 민망함은 전혀 없었다. 다만 70대 노인들이 실제로 섹스를 한다는 것이 신기할 뿐이었고, 영화 속에서도 실제 정사를 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나는 나이가 들면 끝이라고 생각했다. 섹스라는 것도 다 젊었을 때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죽어도 좋아>를 보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이 영화를 보고 마음이 아팠다. 영화 속의 줄거리는 노인들 현재의 사랑을 비추면서 밝고 아름다운 미래를 이야기하지만 영화속에 등장하는 노인들의 집을 올라가기 위해서는 수많은 계단을 밟아야 하고, 집의 분위기는 열악하고 옥상의 전선은 무언가 낙후되어 보이고 전체적으로 어두운 영화의 톤이 이런 영화를 만들어봤자 제한상영가로 보지 못하게 되어버리는 우리사회의 현실을 어둡게 조명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김목인·25세·고려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재학중
ⓒ 배을선
어렸을 때 부모 접촉이 없었던 아이들이 성장한 후 대인관계를 꺼린다고 하던데... 우리 세대들은 인터넷과 다른 대중문화 등을 통해 이미 야한 것들을 많이 접해서 <죽어도 좋아>가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을 정도로 야하거나 포르노적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하지만 영등위의 사람들이나 나이가 드신 분들에게는 이 영화가 상당히 파격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는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을 정도로 문제될 영화가 아니다. 영등위의 김수용 위원장은 노출 때문에 포르노적 요소가 있다고 하던데, 영등위는 시각적요소로 영화의 등급 판단을 하는 곳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제한상영가 등급과 제한상영관 극장은 사회를 지켜나가는 최소한의 보호장치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모쪼록 재심의 결과가 성숙된 판정으로 나왔으면 한다. 백준현·47세·제일은행 독산동지점 지점장 나의 아버지는 예순에 홀로되시어 예순 여덟에 돌아가셨다. 노인들은 성생활을 안 할거라 생각했고 홀로 계시는 동안 별로 외롭지 않으실 거라 믿었다. 어느 날 새벽 4시 아버지께서 자위를 하시는 것을 보았고 나를 비롯해 젊은 사람들이 얼마나 이기적인가를 알았다. 섹스라는 것은 젊은 사람들만 소유하는 게 아니었다. 그 이후로 아버지와 다방에 자주 갔다. 아버지는 다방에 가시면 기분이 좋아지셨다. 아버지와 다방에 함께 가서 마담들에게 만원씩 쥐어주면서 아버지와 이야기 벗이 되어 달라고 부탁한 적이 몇 번 있다. 아버지께 "마담을 친구로 사귀어 봐라" 말씀드리면 굉장히 쑥쓰러워하셨지만 달리 여자친구도 없는 아버지께 다방은 정겨운 곳이었다. 요즘엔 다방이 없어지고 커피숍이 생겨나 아쉽다. 다방은 노인들이 모여 외로움을 달래는 곳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백준현·47세·제일은행 독산동지점 지점장
ⓒ 배을선
노인들은 일찍 일어나 새벽부터 나가신다. 다 이유가 있다. 요즘 부부들은 아침에 성관계를 많이 한다고 한다. 좁은 아파트 생활을 하다보면 기대치 않은 소리가 날 수도 있고 홀로된 노인들은 그걸 피하기 위해 나가시는 걸거다. 아파트라는 좁은 공간은 노인들에게 좋은 삶의 터가 못 된다. 그렇다고 탑골 공원이 전부는 아니다. 은행본점과 가까워 자주 가는 탑골공원에서도 서로 니애인, 내애인 싸우는 노인들을 몇 번 봤다. 노인들의 세계는 젊은이들의 세계와 똑같다. 그들은 단지 인생의 선배일뿐이다. 나는 노인들로부터 나를 찾는다. 그들로부터 삶을 배운다. 사실 <죽어도 좋아>는 좀 지루한 장면이 많다. 거기에 끝날 때는 영화<서편제>처럼 끝났다. 문제가 되는 앞부분의 성교장면 말고 뒷부분의 성교장면을 삭제해도 되지 않았나 싶다. 좀 지루했다는 것을 빼면 이 영화는 훌륭한 영화다. 은행을 다니는 상업적인 안목으로 이야기하자면, 이 영화는 대박감이다. 이런 영화가 많은 극장에 걸려 대박을 못 터뜨리고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았다니 정말 아쉽다. 이 영화는 18세 이상, 아니 15세 이상 등급을 받아도 무관하다고 본다. 요즘 15세 아이들은 알 것 다 안다. 내 딸들도 벌써 오래전 0양 비디오를 본 것은 물론 알건 다 아는 눈치다. 물어볼 때 제대로 대답을 안 해주고 쑥쓰러워해서 그렇지. 우리 사춘기 때도 얼마나 많은 야한 만화책을 보았나? 그런데 세상이 바뀌었다. 손가락 하나로 인터넷에서 더 야한 영상물과 사진을 볼 수 있다. 그것에 비하면 <죽어도 좋아>는 전혀 야한 게 아니다. 노출이 문제된다면서 노인들의 성기를 가리게 되면 이 영화는 노인들의 에로 비디오로 전락하게 된다. 이 영화는 노인들의 성생활이 노출되었기 때문에 사는 것이다. 영화의 질감도 거칠고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어두워서 이 영화는 자연스럽다. 이런 생각을 해본다. 영화 시작에 앞서 청춘가 자막과 함께 "이 영화의 한 부분은 나이든 부모의 성에 대해 자식들에게 알려주는 실질적인 영화로 과노출이 있다고 생각되어도 이해하고 감안해달라"는 안내문이 있었으면 좋겠다. 사실 이 영화는 노인들의 성생활을 보여주는 교육적인 영화가 아닌가? 노인·70대·YMCA 노인의 모임
 <죽어도 좋아>의 한 장면
ⓒ 박진표

나는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고 혼자 산다. <죽어도 좋아>에는 분명 내가 공감할 부분이 많이 있다. 그러나 이 영화를 자식들이나 젊은이들에게 보여주기에는 현재의 국민정서상 너무 초스피드다. 성기의 노출은 아직 자연스럽지 않다. 영화속에 등장하는 70대 노인들의 낮거리와 그것을 자랑스럽게 달력에 표시하는 것도 현재 우리의 정서에는 맞지 않는다고 본다. 국민들의 합일점을 찾기 위해서는 현실상 시간이 걸린다. 그러기에 아직까지 우리나라에는 제한상영관이 있어야 하며, 제한상영가 등급이 존재해야한다. <죽어도 좋아>는 제한상영가로 상영을 해야한다고 본다. 이 영화의 노출 수위는 우리나라 현 수준에서는 지나친 것 같다. 또한 박진표 감독이 영화에서 노인의 복지문제는 부족하게 다루는 것 같다. 세대차의 갈등과 젊은이들의 이해를 불러오기에는 이 영화가 좀 부족한 면이 있다. <죽어도 좋아>를 연출시 노인들에 대한 좀 더 사려깊은 생각을 했더라면 제한상영가 등급은 받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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