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도 좋아>의 한 장면
ⓒ 박진표
"젖 빨아줘…."

3살짜리 아이가 젖을 물게 해달라며 엄마를 보채는 게 아니다. 젊고 풍성한 두 육체가 서로를 탐미할 때 나누는 대화도 아니다. 71세의 이순예 할머니가 73세의 박치규 할아버지와 사랑을 나누며 속삭이는 이 말은, 영화 <죽어도 좋아>를 통해 귀엽고 정열적으로 들려온다.

노인들의 성과 사랑에 무지했던 사람들은 그들의 열정에 관심을 갖게 된다. 서로 끔찍이 사랑한다면 70대의 나이에도 결코 비아그라가 필요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두 노인의 섹스는 톰 크루즈와 니콜 키드만의 <아이즈 와이드 샷>(Eyes Wide Shut, 눈을 힘껏 감아라)과는 달리 눈을 힘껏 뜨게 한다. 노인들의 성에 눈을 뜨는 만큼 마음도 열게 된다. 바로 이 점이 박진표 감독의 영화 <죽어도 좋아>가 주는 최고의 교훈이다. 우리도 곧 늙지 않겠는가. 이 영화는 모두의 이야기다.

그러나 이 영화는 지난 7월 23일 영상물등급위원회 영화등급분류 소위원회로부터 제한상영가 등급 판정을 받았다. 현재 제한상영관이 없는 국내사정으로 볼 때 제한상영가 등급은 개봉불가와 마찬가지다.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게 된 이유는 영상물등급위원회가 지적한 문제의 장면 때문.

이 장면은 두 노인이 구강성교를 하는 7분여의 성애장면으로 영상물등급위원회는 "내용 및 표현기법이 18세 관람가 기준을 벗어나 과도하게 일반국민의 정서에 악영향을 미치거나 반사회적인 내용인 경우"라고 판정했다.

이에 영화제작사도, 영상물등급위원회도 아닌 제 3의 그룹인 젊은영화비평집단에서는 지난 7월 31일 코아아트홀에서 <죽어도 좋아> 등급판정관련 시사회와 토론회를 개최했다. 영화와 직접 관련이 없는 제 3의 그룹이 영화의 등급판정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매우 드문 경우며 이 행사에는 극장좌석수를 훨씬 웃도는 영화인과 언론인이 참석했다.

영화를 관람한 한 기자는 "<죽어도 좋아>의 문제장면이 노골적이지도 않지만 삭제를 해도 스토리상 별 문제가 되어 보이지 않는다"는 해석을 내렸고, 한 영화인은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상물등급위원회 김수용 위원장
ⓒ 배을선
이번 소위원회의 심의 표결 결과는 9명의 위원중 8명이 출석하여 '제한상영가'와 '18세 이상 관람가'가 4:4로 동수를 이뤘었다. <죽어도 좋아>가 재심을 청구하면, 본심의 결과와는 또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재심에서는 15인의 위원이 심사를 맡게 되며 다시 동수를 이룰 경우 영상물등급위원회의 김수용 위원장의 한 표가 이 영화의 운명을 결정지을 것이다.

그는 개인적으로 <죽어도 좋아>가 포르노적 요소를 가지고 있는 외설영화라며 제한상영가 등급은 당연한 결과라고 밝혔다. 비가 쏟아지는 화요일 오후, 국립극장 별관에 위치한 김 위원장의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 <죽어도 좋아>를 제한상영가 등급판정 토론회에서 보았다. 문제의 구강성교부분이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을 정도로 노골적이지 않다는 의견이 토론회에서 많이 나왔는데?
"거기서 본 것은 영화사가 영상물등급위원회에 보낸 것과는 다른 버전이다. 우리한테는 문제의 부분을 아주 환하게 노골적으로 해서 보냈다. 다른 시사회에서는 좀 어둡게 만들어서 틀어주는 것 같은데 디지털 필름으로 찍은 영화라 화질이 좋지는 않지만,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은 뒤 기자들이나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둡게 만든 필름을 상영해 동정을 받으려는 행위일지도 모른다. 우리한테도 어둡게 만들어진 필름을 가지고 와 등급을 매기라고 했다면 바로 18세이상 등급을 내어주었을 것이다."

- 글쎄, 그게 다른 버전이든 어둡게 처리되었든 거기서 묘사된 성행위 자체가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을 만큼 노골적이지는 않다는 의견이 많다?
"그게 노골적이지 않다고? 한국영화사의 극영화에서 성기가 나온 영화는 단 한편도 없었다. <죽어도 좋아>의 박진표 감독이 대한민국의 관객을 놀래 주려고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 장선우 감독의 <거짓말>도 성기가 나오지만 일종의 모자이크 처리되었지 않은가?
"적어도 <거짓말>에는 진짜 배우가 나와 허구라는 시나리오를 열심히 연기해서 진실처럼 보여준다. <거짓말>은 그 허구의 분위기에 접근했다. 그러나 <죽어도 좋아>는 노인들이 허구없이, 등급과는 관계도 없이 노골적으로 성행위를 하는데, 이건 순전히 도덕성의 문제다."

- 다시 전 질문으로 돌아가서, 만약 영화사가 어둡게 만들어진 다른 버전을 정말 상영했다면, 이번 재심때 어둡게 만들어진 다른 버전을 사용할 수도 있겠다. 그 다른 버전을 가지고 재심을 한다면 단지 어두워졌다는 이유로 제한상영가 등급을 철회할 수 있겠나?
"재심때 상영되는 필름은 본심때 상영된 필름과 똑같은 것이어야 하므로 다른 버전으로 재심을 받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70대 노인들의 성과 사랑을 아름답게 표현했다는 일반적인 평을 받은 영화 <죽어도 좋아>
ⓒ 박진표

- 위원장이 말하는 문제의 노골적인 장면이 기자가 생각하는 장면과 같은 것인지 의문이 든다.
"할머니가 할아버지 성기를 만지고 입을 갖다대는 부분이다. 이 장면이 노골적이라 제한상영 등급을 받은 데는 사실 내 의사는 반영되지 않았다. 소위원회로부터 제한상영등급을 받은 것이고, 영화제작사가 재심을 신청하면 그제서야 위원장으로서 내 의사를 행사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영화를 3번이나 본 개인적인 입장으로서 이 영화가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 제한상영관이 없는 상황에서 제한상영가 등급을 주는 것은 영화를 상영하지 말라는 이야기와 같다.
"그건 영상물등급위원회와 하등 관련이 없는 일이다. 우리는 정부로부터 영상물의 등급을 정하라는 임무만 받았지, 각각의 등급을 받은 영화들이 극장에서 상업적으로 잘 상영이 되는 것까지 관련할 필요는 없다. 영화의 유통과정은 영상물등급위원회와 아무 상관이 없다. 우리는 등급만 매긴다."

- 만약 이런 식의 영화가 많이 만들어져서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는 영화가 많아지면 분명 언젠가는 제한상영관이 들어설 것이고 <죽어도 좋아>같은 영화는 어쨌든 극장에서 상영하게 된다. 이런 경우 등급이 또 달라질 경우의 수는 없나?
"없다. 상영하게 되면 상영되는 것이다. 순전히 우리나라 극장업자들의 도덕성과 관련이 깊은 문제다. 제한상영관을 하는 것보다는 상업영화를 트는 게 돈을 더 많이 버니까 제한상영관을 아무도 안 하는 것이다. 그걸 가지고 영상물등급위원회가 뭐라고 하겠나?

또 듣자하니 박진표 감독이 제한상영관이 생길 때까지 이 영화의 상영을 기다리겠다고 말했다고 하던데, 이제 와서 제한상영등급을 받은 것에 대해서 이런 태도로 나오는 것은 여론을 환기시키려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그리고 아무리 제한상영관에서 틀 수 있는 영화가 많아진다고 해도 형법상 포르노그라피는 상영해서는 안 된다."

- 그렇다면 <죽어도 좋아>가 포르노그라피라는 의미인가?
"성기가 나오니 포르노그라피다. 이 영화 전체를 완전 포르노라고 할 수는 없지만, 성기가 나오고 구강성교가 나오니 포르노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지 않나?"

 김수용 위원장은 현재 3년 2개월이 넘게 영상물등급위원회에서 일하고 있다
ⓒ 배을선
- 위원장의 나이가 73세다. 영화에 나오는 배우 박치규씨의 나이인 73세와 동갑인데, 같은 연령의 안목으로 보았을 때 이 영화가 그리는 70대의 성과 사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그들은 배우가 아니다. 직업배우가 아니니 영화의 출연자라고 해야한다."

- 하지만 어쨌든 이번 영화로 데뷔를 했으니 위원장의 정의로 구분한다해도 다음 영화에서는 배우로 나올 수 있지 않나?
"그렇다고 쳐도, 70대의 사랑을 너무 잘못 그렸다. 70대인 내가 봤을 때 별로 납득이 안 간다. 오버액션이 많고 예술성이 없다. 70대가 꼭 그렇게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모영화잡지에 실린 박찬욱 감독이 쓴 글도 읽었지만, 박찬욱 감독의 표현처럼 '부둥켜 울' 정도로 70대의 사랑이 처참한 것은 아니다. 예술은 일반론이 아니다. 꼭 아름다워야 할 필요는 없지만, 어쨌든 내 시각으로 예술성이 조금 부족한 영화가 <죽어도 좋아>이다."

- 그렇다면 70대의 본인이 70대의 사랑이야기를 영화화한다면 후배감독이 만든 영화와 예술적으로 어떻게 다를 것 같나?
"영화적 완성도를 추구하겠다. 난 50년 동안 영화감독을 한 사람이다. 노년의 성을 다루고자 했다면 좀 더 사려 깊게 생각해서 연출했을 것이다. 허물어지고 망가진 70대의 육체에서 용트림하는 예술적인 절박함, 손, 힘줄, 땀 등을 세밀하게 카메라에 담아 보여줄 것이다."

- 한국영화가 많이 발전했고 더 많이 보여주고 있는 게 사실이다. <죽어도 좋아>는 깐느영화제에도 갔다왔다. 국내의 영상물등급도 좀 더 열려야하는 게 아닐까?
"한국영화가 근래 많이 개방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 시기의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위원장이었다. 나는 한국영화의 발전을 위해서 <친구>에서 40번 넘게 칼을 찌르는 것도 OK했고, 여럿 조폭영화에서 나오는 무수한 욕들도 OK했다.

내가 영화를 찍을 당시에는 국가로부터 처참하게 가위질을 당했다. 그때 뼈아픈 경험을 했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를 위해 앞장서고 싶었고, 그래서 영상물등급위원회에서 일하고 있는 것이다. 모두 한국영화의 발전을 위해서다. 하지만 포르노의 요소는 형법에서 막고 있기 때문에 국가의 법률을 영상물등급위원회가 넘어설 수 없다."

 박치규 할아버지와 이순예 할머니는 '청춘가'와 함께 사랑을 나눈다
ⓒ 박진표
- 하지만 일부 젊은 영화인들의 목소리는 한결같다. <죽어도 좋아>의 영상물등급위원회의 판결이 의문스럽다는 것이다.
"나는 109편의 영화를 연출한 영화감독이다. 나야말로 표현의 자유를 위해선 죽어도 좋다. 86년 나의 영화 <허튼소리>는 십여 곳을 삭제당했다. 그 이후 감독일을 접고 청주대학교에서 20여년간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생각한 것은 한국영화가 표현의 자유를 박탈당하면서 제자리걸음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사실 요즘 등급 때문에 영화 못 만들겠다는 감독이 한 명이라도 있나?

<죽어도 좋아>는 어쨌든 극장에서 상영될 상업영화다. 다른 모든 감독들도 상업영화를 찍지만 아무도 성기를 노골적으로 보여주면서 돈을 벌려고 하지 않는다. 박진표 감독이 남들이 안 보여주는 성기를 보여주고 상업영화를 찍겠다고 하면, 그것은 상업영화를 찍는 룰을 어긴 것이다.

문제의 장면은 간접표현을 하거나 삭제를 해도 이야기의 줄거리에 전혀 해가 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시도는 좋았으나 완성도가 떨어져 예술적 향기가 부족하다고 할 수 있겠다. 문제의 장면을 좀 더 어둡고 아름답게 찍었다면 난 분명 18세 이상가로 통과시켰을 것이다.

누군가 이 영화가 <집으로>보다 순수하다고 했는데, 내가 보기에 이 영화에는 <집으로>의 순수성이 없다. 이정향 감독의 <집으로>와 이미연 감독의 <버스정류장>이야말로 순수한 영화다. <버스정류장>에도 정사신이 나오지만, 정말 아름답고 전혀 노골적이지 않다. 영화는 아름다움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픽션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게 20대의 사랑이든 70대의 사랑이든 말이다. 연령하고는 상관없다."

한편, 이 영화의 담당자는 "김 위원장이 주장한 것과는 달리 토론회와 시사회에서 상영한 <죽어도 좋아>는 영상물등급위원회에 보낸 필름과 같은 필름"이라면서, "다른 버전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데 문제의 성애장면이 좀 어두웠다는 기자들의 말을 듣고 김 위원장이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현재 영화사측은 <죽어도 좋아>의 재심의 청구를 준비하고 있으며,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관련 규정에 따라 재심을 청구하게 될 경우 그 결과는 오는 8월말에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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