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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후보는 무슨 소주를 마십니까?'
하이트주조가 지난 6.13지방선거를 '컨셉(주제)'으로 대대적인 광고전략을 펼쳐 광고업계의 주목을 끌었다. 올 들어 시장 점유율이 사상 최악을 기록하자 지방선거의 핵심 이슈인 ‘애향심’에 편승한 마케팅 전략을 구사한 것이다.

전북 하이트주조 '애향심 마케팅'의 속사정

'전북을 사랑하고 향토제품을 애용할 줄 아는 그런 일꾼을 뽑고 싶습니다.’
소비자들에게 후보자들의 애향심을‘향토제품 애용여부’로 가리도록 하고 자연스럽게 하이트 소주가 향토제품임을 부각시키고 있다. 이처럼 소비자들의 애향심을 자극하는 하이트주조의 광고는 유권자들의 심리를 치밀하게 계산한 고도의 상술인 셈이다.

그러나 이면에는 도민들 사이에 하이트소주가 향토제품이라는 인식이 얼마나 저조한지를 보여주는 반증이며, 이에 대한 하이트주조의 깊은 고민이 담겨 있다. 새삼스럽게 하이트주조가 '애향심’을 광고 컨셉으로 삼은 것은 최근 도내 소주시장에서의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서다. 또 브랜드를 ‘보배’에서 ‘하이트’로 바꾼 뒤 희박해진 도민들의 향토주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한 노력으로 볼 수 있다.

불경기에 오히려 더 많이 팔린다는 소주는 전통주 막걸리를 대신해 서민들의 애환을 달래주는 '대중주'로 자리잡고 있다. "소주 한 잔 하자"는 말이 "술 한 잔 하자"는 말로 통할 정도다.

소주의 연간 소비량은 360㎖ 30병 1상자를 기준으로 9303만 3000상자(2001년), 무려 27억 9099만병에 달한다. 국민 1인당 약 60병씩을 마신 꼴이다. 국내 소주시장의 규모는 2조원에 달하며 도내 시장규모는 전국시장의 3%대인 600억여 원에 이른다.

이처럼 소주의 소비량이 엄청나다 보니 소주가 지역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다. 주세는 '국세'지만 교부세와 지방양여금 등 국세의 지방 배분기준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또 막대한 소주 판매대금의 순환과 고용창출 등 어느 제조업보다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지역주민들의 소주의 선호도가 애향심의 척도가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도내 소주시장은 안방을 외지업체에게 내주고 향토기업이 더부살이를 하는 것과 다름없을 정도로 '자도주'의 의미가 퇴색한 상태이다.

전북도내 하이트주조 점유율 사상 최저치

지난 4월말 현재 도내 소주시장의 시장점유율을 보면 진로가 74%로 거의 독점하다시피한 상황이다. 이에 반해 하이트주조는 16%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하며 판매고에 시달리고 있다.
하이트주조는 지난 99년까지도 도내 소주시장에서의 시장점유율이 58.1%로 자도주의 명성을 지켰다.

그러나 2000년도에는 38.6%로 급감한데 이어 지난해에는 31.7%로 떨어졌으며 급기야 올 들어서는 10%대로 추락했다. 애주가 10명중 8명은 외지업체 술을 마시는 셈이다. 매출액도 99년 500억 원대에서 2000년 300억여 원, 지난해 250억여 원 등으로 매년 큰 폭으로 감소해 경영난이 심화되고 있다.

이처럼 텃밭에서 자도주가 외지업체에 밀리는 곳은 불행하게도 전북이 유일하다. 전국에는 각시도를 기반으로 하는 소주회사가 10여개 사에 이른다. 서울과 경기 등 수도권을 기반으로 하는 진로를 비롯, 강원 두산, 대구·경북 금복주, 부산 대선주조, 경남 무학, 전남 보해, 대전·충남 선양주조, 충북 하이트소주, 제주 한라산 등이 그 지역을 대표하는 자도주이다.

이중 두산이 강원의 경월소주를 인수해 전국 브랜드로 부상, 진로의 아성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으며 나머지 회사들은 자도 시장에서 탄탄한 기반을 토대로 시장 확대를 모색하고 있는 중이다.

올해 5월까지의 회사별 자도 시장에서의 점유율을 보면 금복주가 96%로 가장 높고 진로가 서울 89%·경기 92%, 한라산 92%, 대선주조 85%, 무학 82%, 보해양조 74%, 두산 60%, 선양주조 46%, 하이트주조 24% 등으로 하이트주조가 자도 시장점유율이 가장 낮다.

진로소주가 영남지역에서 4%대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것과 너무나 대조적인 도내 소주시장의 양상에 "자존심까지 무참히 밟히고 있는 느낌"이라는 애주가들의 탄식도 들린다.

국내 소주시장에서도 하이트주조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대한주류공업협회가 집계한 2001년도 소주제조사별 판매량에 따르면 진로가 14억 6800만 병을 팔아 전체시장의 52.6%를 차지, 소주업계의 맹주로 군림하고 있으며 금복주가 2억 9600만 병으로 10.6%의 시장 점유율로 그 뒤를 이었다. 대선주조와 무학이 8.5%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했으며 두산은 22.2%의 매출신장으로 5위(6.2%)에 올랐다.

하이트주조는 진로 판매량의 35분의 1에 불과한 4200만병을 판매, 시장점유율이 1.3%에 그쳐 1억 병 이상을 판매한 보해양조(6%)와 선양주조(3.6%) 등과도 현격한 차이를 나타냈다. 전체 순위는 7위지만 8위 한라산(제주) 3700만 병, 하이트소주(충북) 3300만 병 등과 도세와 인구 등을 비교할 때 절대 우위에 있다고 볼 수 없는 실정이다.

전체 소주판매량의 44.7%를 차지하고 있는 수도권시장에서 판매량도 진로가 90.3%(11억 2600만병)로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두산이 7.7%를 기록한 반면 하이트주조는 고작 0.6%에 그쳤다.

연고지에서 경쟁력을 상실한 하이트가 전국시장에서 제대로 힘을 쓸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소주시장의 영업망 구축에는 막대한 인력과 자본이 필요하지만 매년 매출이 감소하는 상황에서 외지시장 공략을 위한 투자는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마케팅 강화와 신상품 개발, 품질의 고급화를 위한 투자는커녕 최소한의 인력조차 감원해야하는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다. 이처럼 전북의 소주인 하이트주조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은 소주회사들이 과거 자도 위주의 영업망에서 탈피해 전국으로 영업망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지적된다.

상호 하이트로 바꾸며 자도주 인식 약해져

여기에 조선맥주가 보배를 인수하고 하이트로 상호를 바꾸면서 도민들에게 자도주라는 인식이 희박해진 것도 주요인으로 작용했다. 자도주들은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정부의 지방주 보호정책 그늘에서 비교적 안정적인 경영이 가능했다. 정부의 지방주 보호정책은 자도주 50% 판매를 의무화해 대기업 제품의 지방시장 잠식을 막았다.

그러나 1992년 이 제도가 폐지되면서 지방의 소주회사들이 위기를 맞았으며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초기에는 비교적 지역주민들의 애향심 덕분에 급격한 매출감소는 없었지만 시장규제에 묶여 있던 진로의 무차별적인 지방시장 공략이 지속되면서 하나둘씩 부도로 문을 닫거나 주인이 바뀌었다.

당시 1979년 백화양조의 소주를 흡수한 이래 전북을 대표하는 소주회사로 군림해온 (주)보배도 자도주 보호정책 철폐로 인한 시장위축과 보배빌딩 건설 등 무리한 투자로 1995년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2년 뒤 조선맥주에게 경영권이 넘어갔다.

하이트주조도 조선맥주가 97년 향토기업인 (주)보배를 인수해 1998년 상호를 변경한 것이다. 오랫동안 자도주는 보배뿐이라고 인식해온 도민들은 하이트소주를 자도주라고 말하기가 어색한 것이 현실이다.

상호와 브랜드가 바뀐데다 경쟁회사들이 "하이트는 향토기업이 아니다"고 자도주 논쟁을 불러일으키며 시장진입을 기도해 도민들을 혼란스럽게 만든 것도 하이트의 자도주에 대한 인식에 악영향을 미쳤다.

하이트 관계자는 자도주의 위축을 도민들의 애향심 결여 때문이라며 서운한 심정을 토로하고 있다. 영남지역은 물론이고 광주와 대전 등 외지에서는 자치단체와 사회단체들이 "지역에서 생산하는 소주를 팔지 않는 업소는 이용하지 말자"는 캠페인까지 벌일 정도로 자도주에 각별한 애정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무조건 자도주에 대한 낮은 선호도를 애향심 결핍으로 몰아 부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도민들에게 하이트소주가 자도주라는 인식을 확실하게 심어주는 것이 선결과제라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하이트가 지역주민을 겨냥한 마케팅전략과 지역밀착 경영에 너무나 소홀했다"는 질책도 나온다.

최근 "브랜드를 보배로 다시 환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도 하이트에 대한 도민들의 자도주 인식을 전환하기 위한 고민으로 보여진다.

하이트주조도 이 점을 인정하고 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의 광고도 하이트가 자도주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한 전략도 들어 있다.

하이트주조 관계자는 "기업의 지배주주가 바뀌었다고 향토기업이 아니라는 생각은 기업구조에 대한 왜곡된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하이트주조는 본사를 전북에 두고 전북인이 만드는 소주로 유일한 향토소주회사가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브랜드 변경에 대해서도 "소주시장의 전국화 상황에서 도내시장에만 의존할 수 없는 실정에서 국내시장 경쟁과 영업망 확충을 위해서는 전국 브랜드화가 필요하다"며 "하이트맥주의 높은 브랜드 지명도를 감안해 브랜드를 바꿀 수밖에 없었다"며 불가피성을 설명했다.

그러나 하이트는 맥주시장과는 대조적으로 소주시장에서 그다지 큰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어 딜레마에 빠져 있다.

하이트주조의 고민은 또 있다. 막대한 자금력을 앞세운 대기업의 공격적인 마케팅과 끼워 팔기, 덤 제공 등 불공정행위는 시장질서를 교란하고 있다.

대기업들은 일정량 이상 소주를 구입하면 덤을 얹어 줘 업소 주인들이 마진이 좋은 외지업체 소주를 선호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업주 입장에서 보면 소주 10박스를 사면 1박스를 더 줘 원가가 낮다. 또 컵과 앞치마 등 서비스 상품을 무상으로 제공한다. 대규모로 영업사원들을 풀어 손님들에게 공짜로 술을 사준다.

이 같은 마케팅 활동은 불법이다. 그러나 대기업들은 판매업소 주인들의 비호아래 증거도 남기지 않고 시장을 활개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식당에 가서 소주를 찾으면 '참이슬'을 내놓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참이슬'소주를 찾는 사람도 많다. 소주 애주가 10명 중 하이트를 마시는 사람은 2명에 불과하다.

이처럼 자도주인 하이트주조가 도민들에게 외면을 당하는 사이 외지업체의 시장잠식으로 소주값으로만 연간 400억여 원이 지역자금이 역외로 유출되고 있다. 이는 곧 기업활동 위축과 지역경제 약화로 이어져 도민 전체에게 손해를 안겨준다.

애주가들의 애향심이 절실한 상황이다.

덧붙이는 글 | 위 기사는 '시사전북(www.sisajb.com)'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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