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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의 현장을 지켜온 <오마이뉴스>가 서해교전 사태로 전국민적 관심으로 떠오른 서해 연평도에 특별취재팀을 파견, 현장취재에 나섭니다.

이번 서해교전 사태로 아군은 전사자 4명을 포함, 24명이 다치거나 실종됐으며 북측 역시 30여 명이 사상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지난 99년이 이어 3년만에 다시 재발한 이번 교전사태는 남북간에 뚜렷한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언젠가 또 다시 재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 정박해 있는 어선들로 꽉찬 연평도 포구.
ⓒ 오마이뉴스 공희정
사태 발생 직후 국방부는 브리핑을 통해 이번 교전사태는 당일 북측 경비정이 돌연 남하해 우리 해군에 선제공격을 했고, 우리가 자위권 차원에서 응수하면서 발생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현지 어민, 부상병 등 교전 당시 현장에 있었던 당사자들의 증언을 인용한 일부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이번 사태는 꽃게잡이철을 맞아 우리 어민들의 무리한 '월선'과 이들에 대한 우리 해군측의 원칙없는 조치가 이번 사태를 초래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 99년에 발생한 '서해교전' 이후에도 북방한계선(NLL)을 놓고 남북간에 확고한 의견조율을 마무리하지 않은 점도 이번 사태의 한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특별취재팀은 2박3일간 연평도에서 이번 교전사태와 관련, 다각도로 취재활동을 벌이는 동시에 취재 전 과정과 현지에서 발생한 각종 사항을 생생하게 중계할 예정입니다. 특히 일반매체의 뉴스기사에서 볼 수 없는 목격담, 현지 분위기, 주민 반응 등도 기사와 자체 제작한 동영상 뉴스로 생중계할 예정입니다. 네티즌 여러분들의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 <편집자 주>


'서해교전' 현장 연평도 가는 길 / 김정훈 기자

어민, "곪았던 상처가 이제야 터졌다" / 김정훈 기자

[특별취재팀]
취재/사진 : 정지환 공희정 기자
동영상 : 김정훈 김용남 기자



[제7신: 7월 4일 오후 3시 45분]

"'월선' 개념 보다 분명히 할 필요 있다"
"국익과 국민의 알권리 깊이 고민하게 됐다"
- 취재기자들의 식당 '즉석토론회'


▲ 연평도 현지에서 기사와 사진을 전송하고 있는 <오마이뉴스> 기자들이 임시 편집실로 사용하고 있는 한 PC방의 외관 모습 ⓒ 오마이뉴스 공희정
연평도 현지취재 이틀째를 맞고 있다. 현재 이곳은 태풍에 대비하기 위해 현재 큰 어선들은 모두 인천항으로 피항했고 작은 어선들은 연평도 부둣가에 정박해 있다. 아직까지 이곳에선 태풍의 기미를 찾아볼 수 없지만 모두들 내일 이 섬을 떠나기는 불가능할 것이란 예측을 기자들은 물론이고 섬 주민들도 조심스레 내놓고 있다.

어제까지만 해도 언론사 취재인력은 50여 명에 달했는데 현재 이곳에는 20여 명 안팎만 남아 있다. 오늘 약 30여 명의 언론사 기자들이 섬을 떠났는데 태풍 때문에 시간을 앞당겨 예정 출발시간보다 2시간 빠른, 아침 8시에 출발했다. 현재 남아있는 언론사는 눈에 띄는 것만 조선일보, 대한매일, 한겨레, SBS, MBC, 그리고 <오마이뉴스> 등이다.

각 언론사 취재기자들은 일과시간에는 각자 흩어져 독자적으로 취재활동을 벌이다가 식사시간 때는 잠시 만나 더러 서로 정보를 교환하기도 한다. 취재 '낙수'를 하나 소개하기로 한다.

오늘 아침 9시경 언론사 취재진은 연평회관에서 아침식사를 했다. 오늘도 어김없이 기자들이 식당으로 모여 들었다. 어제 다른 식당의 '끔찍한' 매운탕 때문인지 대한민국 어디서나 '무난한' 김치찌개를 시키자는 데 이견이 없었다.

마침 TV에선 아침 뉴스가 방송되고 있었다. 서해교전에 대한 진상조사, 유엔사의 북측에 대한 공동조사 제의,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 '월경' 발언 논란 등의 소식이 뉴스의 서두를 장식했다.

곧이어 일기예보에서 5호 태풍 '라마순'이 북상한다는 '흉보'를 알리자 식당 안에 있던 주민들이 한숨을 푹 내 쉬었다.

식사가 나오기 전까지 기자들은 각자 취재하고 있는 '히든 카드'는 숨긴 채 이런 저런 주변 정보를 교환했다. 이러한 '탐색전'과 '정보교류'의 장이 벌어진 것은 어제 점심 식사 때부터 벌써 세 번째이다.

기자들의 세 차례 '식당 회동'에서 나온 발언을 정리했다. 자유롭게 나눈 대화였기에 익명으로 소개한다.

"오늘 <경향신문> 보도를 봤는가? 어민회 문건을 통해서 어민들이 적색선을 넘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하더라. 사실 지금까지 그런 증언은 수없이 나왔다. 적색선 너머에 설치해 놓은 그물만 해도 7백 틀이 넘는다는 주민들의 증언도 있지 않았나."(A 주간지 기자)

"모든 신문이 크게 실었던, 6월 29일 현장에서 찍었다는 현장 사진에도 연기를 내뿜으며 예인되는 북한 경비정 아래 그물 부표가 보였다. 그것은 일부 어선들이 조업구역을 벗어나 그물을 설치한 것이 사실이었음을 확인해주는 증거가 되어 버렸다. 그것이 북방한계선(NLL) 너머에 설치된 것이 확인되면 문제는 더 심각해질 것 같다."(A 신문사 사진기자)

"그러나 월선에 대한 개념을 분명히 해야 할 필요도 있다고 본다. 수산법상 조업구역을 벗어난 것을 월선이라 하는데, 일부에선 월선 모두를 조업한계선과 적색선은 물론이고 NLL까지 넘은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NLL을 넘었다는 확실한 증거나 증언이 나올 때까지는 월선이라는 용어를 좀더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써야 할 것 같다."(A 월간지 기자)

"우리가 분명히 해둘 것은 또 있다. 우리 어민들이 조업구역을 벗어나 불법어로를 했다는 것과 상관없이 북한이 선제공격을 한 것은 잘못이다. 그것은 비난받아 마땅한 행위이다. 그러나 동시에 좀더 거시적인 접근도 필요하다.

1953년 정전협정 당시 유엔과 북한 사이에 해상분계선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었던 것이 사실 현재 문제의 빌미가 됐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북한은 미군이 주도하는 유엔군 측이 일방적으로 NLL을 그은 뒤 통보했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B 신문사 기자)

"국제법상으로도 NLL은 문제가 많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견해다. 모든 것을 북한만 비난하는 것으로 몰아가거나 어민들의 불법어로에 모든 책임이 있는 것처럼 몰아가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고 본다. 따라서 합리적 대안을 찾을 필요가 있다. 물론 국제적이고 정치적인 접근도 필요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먼저 현지 주민들의 처지와 시각에서 지혜를 찾아볼 수도 있다고 본다. 연세가 많으신 주민들의 증언에 의하면, 1960년대 말까지만 해도 이곳에선 남한과 북한의 어선들이 함께 자유롭게 조기잡이를 했다고 한다. 공동어로수역 설정 등 근본적인 대안이 나와야 할 것으로 보인다."(C 신문사 기자)

"나는 오늘(7월 3일) 한 젊은 선주를 만났다. 그는 전작이 있었는지 술에 잔뜩 취해 있었는데, 이번 서해교전 당시 현장에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합법적인 조업구역을 벗어나 북방한계선 쪽에 그물을 설치해 놓았는데, 걱정이라는 말도 했다.

그의 증언에 의하면, 이번 사건을 계기로 선주들의 의견이 두 갈래로 갈렸다고 한다. 합법적인 조업구역 안에서만 어로 작업을 하고 이제는 한계선을 넘어가지 말자는 쪽과 어느 정도 조용해지면 융통성있게 다시 들어가서 조업을 해야 빚도 갚고 먹고 살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쪽으로 갈렸다는 것이다."(B 주간지 기자)


오늘 기자들의 아침식사 중에는 이런 대화도 한바탕 오고 갔다. 여기에선 다른 언론사의 보도행태가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그런데 SBS는 연평도에 뭐 하러 왔는지 모르겠다."

"왜 그러는가?"

"연평도에 방송차량은 제일 많이 보내놓고 정작 어제 저녁 내보낸 뉴스는 한 꼭지밖에 안되더라. 그것도 '어민들이 며칠만에 출어를 했고, 여전히 피해가 크다'는 뻔한 내용이었다. 어제 들은 얘기로는 중계차량을 실어나르기 위해 별도로 수백만원의 비용을 지불하고 배까지 빌렸다고 하는데,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내용적으로만 보면 KBS도 큰 차이가 없었다. MBC와 정반대의 보도를 하더라."

"사실 MBC는 이번 보도로 일부 주민들에게 미운털이 박힌 상황이다. 불법어로라는 사실과 상관없이 이번 보도로 상처를 받았다는 피해의식이 강한 것 같다. 이번 사건을 보도하는 각 언론사의 보도행태를 보면서 국가의 이익과 국민의 알권리의 관계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됐다."


(* 기사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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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 전화위복 계기 삼아야" "NLL, ' 공동어로구역 ' 으로 설정을"


[제6신: 7월 4일 오후 1시 30분] 태풍경보 마을방송

▲ 연평도 포구 입구 ⓒ 오마이뉴스 공희정
취재진은 오늘 오전에 이번 사건의 배경과 원인을 결정적으로 설명해 줄 수 있는 중요한 인물을 만났다. 그와의 인터뷰는 장시간 동안 진행됐다.(이 내용은 정리가 되는 대로 곧바로 올릴 예정이다)

인터뷰가 끝난 뒤 취재진은 곧바로 어촌계를 찾았다. 여기서 우리는 남북 어업분쟁 해결과 대안을 시사하는 유익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어촌계 취재를 마치고 나온 시간은 12시 40분경. 갑자기 커다란 마이크 소리가 연평도 마을 전역에 울려퍼졌다.

"강한 돌풍을 동반한 태풍 라마손이 북상함에 따라 바다에서 해일이 일 수 있으니 선주들께서는 선박을 결박하는 데 만전을 기해주시기 바랍니다."

수평선이 보일 정도로 안개는 걷혔지만, 북상하는 태풍 때문에 오늘 출어는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태풍이 불면 그물에 걸린 꽃게는 모두 떨어져 나간다고 한다. 재수 없는 사람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더니, 연평도 어민들의 수심은 자꾸만 깊어지고 있다.

[제5신: 7월 4일 오전 7시 35분]
짙은 안개 덮인 연평도의 아침,"'눈물의 연평도'는 이제 싫어"


"어민들, '적색선' 넘어 조업" 문건 공개
- 어민회장, "왜 자꾸 까발리나" 불만 토로

<경향신문>이 4일자에서 어민회의 문건을 인용, '어민들이 적색선을 넘어 조업해 왔다'라는 내용의 기사를 실은 것과 관련해 연평도 어민회 신승원 회장은 4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문건의 정확한 내용이나 존재 여부에 대해서는 뭐라 말할수 없다"고 밝혔다.

신 회장은 이어서 "어민들이 꽃게를 잡기 위해 일부가 (저지선을) 넘은 것은 사실"이라며 "예전에 어민들이 찾아와서 해군 쪽에 우리의 애로사항을 알려달라고 요청해, 어민회 차원에서 그쪽에 여러 이야기를 부탁했던 일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우리 어민들이 조업구역을 넘어간 것은 잘못"이라며 "그 과정에서 해군쪽과 (어민들사이의) 마찰을 최소화하기 위해 그쪽에 이해를 구했다"면서 해군쪽과 월선 조업에 대해 상의했던 사실을 확인했다.

하지만 그는 "왜 언론들이 자꾸 어민들의 월선 조업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면서 "무슨 문건이나 어민들이 왔다갔다한 내용이 (세상에) 알려져 봐야 우리에게는 득이 될게 하나 없다"면서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한편 <경향신문> 4일자 '어선들, 적색선 넘어 조업해왔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연평도 어민들이 조업 및 항해가 통제된 적색선(어로저지선·레드라인)을 넘어 군당국의 묵인 아래 조업을 해왔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연평도 어민회가 작성한 '월선 어구 세부계획 상정안'의 내용을 소개하면서 연평도 어민들은 적색선을 이탈한 지역을 포함, 조업구역 밖에 설치된 어망을 특정기일까지 단계별로 완전 철거키로 하고 이를 위한 협조를 해군 당국에 요청했다고 전했다. / 김종철 기자
현재 시각 7월 4일 오전 7시 35분.

당섬 선착장과 그곳에서 5백미터 길이의 다리로 연결돼 있는 동네 어구마다 주민들이 여기저기 삼삼오오 모여 있다. 근심어린 표정으로 담배를 물고 있거나 잡담을 나누고 있는 그들의 눈길은 바다를 향하고 있다. 오늘도 바다는 짙은 안개로 덮여 있다.

"끼룩, 끼룩."

오늘도 갈매기들만 신이 났다. 어제 들어왔다 내버린 꽃게 그물을 뜯으며 포식할 수 있게 된 것이 마냥 기쁜 모양이다.

오전 6시로 예정된 출항은 안개가 걷힐 때까지 연기된 상태다. 어장에 설치해 놓은 그물을 거두기에는 어제 하루만으로 턱없이 부족하다. 더욱이 기상대는 오늘과 내일 중으로 태풍이 올 것이라고 예보한 상태다. 바다에서 썩어가는 꽃게로 어민들의 한숨은 더 커지고 있다.

"그나마 일주일 안짝에 설치한 그물에 걸린 꽃게는 걱정이 덜해요. 비록 상품가치는 낮아도 '게 따기'를 할 수 있으니까. 그러나 그 이전에 설치한 그물이 걱정이야. 어제 걷어온 꽃게만 해도 적지 않게 상했는데.... 이러다간 그물 값도 안 나오게 생겼어."

새마을 모자를 눌러 쓴 한 주민의 한숨 섞인 푸념이다.

주민들이 제일 많이 모여 있는 동네 어구로 발길을 옮겼다.

▲ 연평도의 '명동거리'로 불리는 번화가 모습 ⓒ 오마이뉴스 공희정
동네 어구의 넓고 둥근 마당에는 여관과 식당이 밀집해 있다. 이곳은 연평도의 '시청광장'인 셈이다. 연도파크장, 서해장, 현미식당, 연평회관, 낙원정 등의 상호가 내걸려 있다. 그 오른쪽으로 좁고 길쭉한 골목이 연결돼 있는데, 바로 어제 말한 연평도의 '명동거리'이다.

그러나 지금 연평도의 '시청광장'과 '명동거리'에서는 활기찬 어촌의 풍경을 찾아볼 수 없다. 서해교전이라는 인간이 만들어낸 상황, 안개와 태풍이라는 자연이 만들어낸 상황이 어민들의 한숨을 강요하고 있을 뿐이다.

광장 정면에는 연평파출소와 우체국 건물이 보인다. 파출소 옥상의 깃대에는 월드컵기, 태극기, 인천중부경찰서기가 나란히 걸려 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인천광역시 옹진군 연평면이지만, 경찰서는 인천시 중부경찰서 소속인 모양이다.

그러나 오늘은 깃발들도 힘차게 펄럭이지 못하고 있다. 풀이 죽어 있는 깃발들. 그들도 어민들의 심정을 알고 있는 것일까.

▲ 연평도 포구 입구에 서있는 조기배 상징 청동조형물 ⓒ 오마이뉴스 공희정
광장 중앙에는 하나의 기념물이 서 있다. 돛단배 모양의 청동 조형물이다. 가까이 가 보니, '조기섬'이라는 문구가 보인다. 조기의 명산지였던 연평도의 '화려한 과거'를 보여주는 상징물이다.

1968년까지만 해도 연평도는 '조기의 섬'이었다고 한다. 매년 4월 중순에서 6월 초순까지 조기 철이 되면 전국 각지의 어선들이 조기떼를 따라 이곳으로 몰려 들었다. 성어기에는 그렇게 몰려든 배가 3천여 척이었다고 하니, 가히 그 규모가 얼마나 컸는지 짐작된다.

"과거에는 이 섬에서 저 섬까지 어선으로 가득 찼어. 연결된 배로 걸어서 저 섬까지 걸어갈 수 있었으니까. 대풍어가 들면 그런 어부들을 상대하는 색시집이 연평도에 엄청나게 생겨났지."

기자 옆에 서 있던 한 노인의 중얼거림이다. 조형물에 붙어 있는 설명문에도 '조기를 쫓는 어부와 어부를 쫓는 낭자군'이라는 문구가 보인다.

그러고 보니, 연평도에는 조기와 관련된 상징물이 많다. 어제 저녁 들렀던 전망대에도 조기전시관이 있었다. 그리고 전시관 앞에는 작은 노래비가 하나 서 있었다.

조기를 담북 잡아 기폭을 올리고
온다던 그 배는 어이하여 아니오나
수평선 바라보며 그 이름 부르면
갈매기도 우는구나 눈물의 연평도


1958년 사라호 태풍에 희생된 어부를 추모해 만들었다는 이 노래의 제목은 '눈물의 연평도'(작사 김남풍, 작곡 김부해, 노래 최숙자). 당시 공전의 대히트를 치며 국민 애창곡이 됐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날 조기는 갑자기 사라졌다. 그러면서 등장한 것이 바로 꽃게. 그러니까 꽃게는 조기 대신에 30년 넘게 연평도 주민들을 먹여살린 은인인 셈이다. 그들은 지금까지 꽃게 농사로 자식들을 공부시키고 결혼을 시킬 수 있었다.

연평도 어민들이 평화롭게 꽃게잡이를 할 수 있는 날은 언제나 올까.

그들은 이제 더 이상 '눈물의 연평도'에서 살고 싶지 않다고 했다.


[제4신 대체: 3일 오후 11시]
연평도는 주민 반, 기자 반일 것이라고?
주민들, 제 때 놓쳐 '상한 꽃게'로 한숨만


▲ 출항을 기다리는 실버스타호. ⓒ 오마이뉴스 공희정
연평도는 주민 반, 기자 반일 것이라는 추측과 달리 연평도에서 기자들을 만나기란 그리 쉽지 않았다. 대체 그 많다던 기자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

한 주민은 "어제까지만 해도 우리를 그렇게 괴롭히더니만 오늘은 통 보이지 않는다"면서 "아마 어선을 따라 바다로 나섰거나 아니면 어딘가 짱박혀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연평도에 도착한 <오마이뉴스> 취재팀은 포구 근처 A 민박집에 숙소를 정하고 곧바로 현지 상황파악에 들어갔다. A 민박집 앞에는 외제 스포츠카가 한 대 주차되어 있었는데 바로 민박집 주인의 것이라고 했다. 제대로 된 도로 하나 없는 연평도에서 스포츠카가 왜 필요한 걸까? 하지만 민박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일체 민박집 주인의 직업에 대해서 일언 반구를 하지 않는다.

숙소를 정하고 짐을 푼 뒤 취재진의 첫번째 임무는 PC방 찾기. 다행히 민박집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PC방이 있었다. 하지만 도심에서 흔히 보던 PC방이라고 보면 안된다. 간판조차 없는 이 PC방은 낡은 한옥집을 개조해 만든 것. 1시간 이용료는 2000원, 서울 도심의 두 배지만 이 외딴섬에 PC방이 있다는 것 자체가 고마울 따름이다.

PC방을 기점으로 연평도에 가장 번화하다는 연평도 명동이 자리잡고 있다. 정육점, 식료품점, 호프집, 노래방 등 없는 것이 없다. 하지만 이곳도 역시 1층 짜리 주택을 개조해 만든 가게들로 가득하다. 유흥가로 지칭하기에는 민망할 정도다.

곧이어 연평도 '탐방'을 시작했지만 연평도 곳곳에 군부대가 자리잡고 있어 탐방은 금새 끝이 났다. 연평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는 전망대에서는 북한땅이 내려다 보인다. 옹진반도를 비롯 해주 땅도 한 눈에 들어온다고 했다.

포구에선 오늘에서야 꽃게 어획에 나섰던 어부들이 어망을 거둬들였지만 제때를 놓쳐 한 마디로 '맛이 간' 꽃게들을 보며 어부들은 한숨을 짓고 있었다.

어망에서 꽃게를 골라내던 어부 김 씨는 "어찌됐든 어망을 거둬들여 속은 시원하지만 이미 속이 곯을대로 곯은 꽃게를 보니 복장이 터진다"고 한탄한다.

오후 7시 30분 저녁시간이 되자 어디 숨어있었는지 보이지 않던 기자들이 식당가로 속속 모여든다. 식당이라고 해봤자 몇개 되지 않다보니 거의 한 자리에 모이게 된 것. 이날 식당의 주요 메뉴는 단연 꽃게탕과 매운탕이었다. 하지만 채소가 귀하다는 이유로 고기만 몇점 떠있는 매운탕과 라면 스프로 국물을 우려낸 것 같은 꽃게탕을 본 기자들은 한숨만 내쉬었다.

▲ 연평도 근해에 있는 해군 해상기지. ⓒ 오마이뉴스 공희정
앞서 도착한 몇몇 일간지 기자들은 "연평도 사태 끝물에 들어와 볼 것도 없고 취재할 것도 없는데 데스크는 새로운 뉴스를 만들어 보내라고 성화여서 스트레스가 이만 저만이 아니다"면서도 "더 큰 문제는 태풍 때문에 발이 묶여 이런 음식을 먹으면서 일주일을 버티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취재팀은 저녁식사후 민박집으로 돌아와 오늘 일정을 정리하고 내일 취재계획을 논의했다. 내일은 주민들을 본격적으로 만나 이번 서해교전 관련 사실에 대해 본격 취재에 나설 계획이다.

동영상팀은 도착하자마자 인천에서부터 촬영한 내용의 편집작업에 돌입했다. 곧 도중에 배에서 인터뷰한 선원 출신 30대의 인터뷰 내용과 출항 풍경 등을 담아 독자들에게 동영상으로 생생히 전할 예정이다.

이곳에도 내일 태풍이 올라온다는 얘기가 전해지면서 뭍에서 온 사람들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선주들, 벌금 무서워 조업구역 '월선' 마다하지 않는다"
- 선원 출신 30대 연평도 주민 심층인터뷰


한편 취재진팀은 연평도를 둘러본 뒤 여객선에서 만났던 전직 선원 김 아무개씨(37)와 선원을 남편으로 둔 민 아무개씨(38)의 증언을 좀더 상세히 정리하는 일부터 착수했다.

독자들은 그들의 증언을 통해서 지금까지 각종 언론 보도에서 접했던 연평도 사태의 배경을 보다 넓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은 그들과 나눈 대화를 정리한 것이다. 우선 연평도 주민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부터 들어보자.

-연평도에는 꽃게잡이 배가 몇 척이나 있나?
"56척으로 알고 있는데, 모두 9.7톤 규모다. 어선은 10톤 이하로 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기 때문이다."

-꽃게잡이를 하는 시기는 언제인가?
"1년에 두 차례 꽃게잡이를 하는데, 크게 3-6월과 10-12월이다. 그 사이 시간에는 뒷처리와 다음 출어 준비를 한다."

-배 1척 당 선원 수는 얼마나 되나?
"봄 철에는 6-7명, 가을 철에는 5-6명 정도다."

-봄 철과 가을 철에 차이가 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봄 철이 가을 철보다 어업 기간이 길고 꽃게도 많이 잡히기 때문이다. 이번에 우리 어선들이 조업한계선을 벗어나 문제가 된 것도 이 때가 꽃게가 제일 많이 잡히기 때문이다. 이 때 왕창 벌어놔야 나머지 기간을 편하게 지낼 수 있다. 그래서 이번에도 무리를 하게 된 것이다."

-하루 일과는 어떻게 되나?
"대략 새벽 5-6시경에 출항해서 여기저기 설치해 놓은 그물을 건져올린다. 그렇게 작업을 마친 뒤 포구에 들어오는 것이 대략 오후 4-5시경이다."

▲ 99년 연평도 승전 기념탑. ⓒ 오마이뉴스 공희정
-그 후 작업은 어떻게 되나?
"포구에 어선이 들어오면 그물에 엉켜있는 꽃게를 떼어낸다. 이것을 '게를 딴다'고 부른다. 이 작업은 주로 선주 부인이 주도하는데, 선주 부인을 흔히 '선주 색시'라고 부른다."

-게를 따는 작업은 누가 하나?
"선원들이 직접 하기도 하지만, 별도로 인부를 사서 쓰는 경우가 많다. 남녀노소 구분 없이 1시간 기준 5천원의 일당을 준다. 출어를 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 작업을 통해서 수입을 올린다. 게를 따서 상자에 넣으면 운반선이 인천으로 나른다."

-꽃게잡이 이외에 다른 어종은 잡지 않나?
"연평도에선 꽃게잡이만 한다고 보면 된다. 꽃게 농사로 1년을 먹고 사는 것이다."

-꽃게잡이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나?
"크게 선주와 선원으로 나뉜다. 자본이 부족한 선주는 다른 사람에게 자본을 구하기도 하는데, 자본을 대는 사람을 객주라 부른다.
선주와 선원은 대다수가 연평도 주민이고, 객주는 거의 전부가 외지인이다."

-이익은 어떻게 나누는가?
"꽃게잡이 철을 끝내는 것을 '파송'이라 부르는데, 파송을 한 뒤 결산을 한다. 객주가 있는 경우, 우선 객주가 28%를 차지한다. 그리고 나머지 72%를 다시 선주와 선원이 6:4의 비율로 나눈다."

-그렇다면 1년 동안 파송을 두 번 한다는 말인가?
"그렇다. 파송을 하고 결산이 끝난 8월과 1월에 선원들은 선주와 재계약을 한다. 그 때 일부 액수를 선불로 받는데 차용증을 써준다."

이번에는 현재 쟁점이 되고 있는 사안에 대한 증언을 들어보자.

-조업한계선 안에서 조업할 때와 그곳을 벗어나 북방한계선 쪽으로 가서 조업할 때 어획량에 차이가 있나?
"물론이다. 특히 봄 철에는 북방한계선 쪽으로 갈수록 어획량이 많다."

-어느 정도 차이가 있나?
"엄청난 차이가 난다."

-구체적으로 약 2-3배라고 보면 되나?
"그 이상인 것으로 알고 있다. 아무튼 엄청난 차이가 난다. 그러니까 기를 쓰고 그쪽으로 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벌금(4백만원)을 내더라도 그 10배 정도의 벌이를 할 수 있는데 누가 그곳을 마다하겠는가."

-서해교전이 일어난 시기가 1999년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6월이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추운 겨울에는 꽃게가 수심이 깊은 서쪽으로 이동한다. 이 기간에 꽃게가 이동하는 장소가 바로 연평도 남쪽에 있는 조업한계선 내 지역이다. 그래서 꽃게가 많이 잡히는 겨울에는 굳이 북방한계선 쪽으로 갈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날씨가 따뜻해지면 꽃게가 수심이 얕은 북쪽으로 이동한다. 그래서 어선들이 봄철에 조업한계선을 벗어나 북방한계선 쪽으로 이동하게 되는 것이다. 이번 서해교전도 바로 그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다.

-이번 사건의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일부 선주들의 욕심이 이번 사건의 제일 큰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벌금을 내는 한이 있더라도 그보다 10배나 놓은 수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에 조업구역을 벗어나 북방한계선 쪽의 황금어장으로 월선하기 일쑤다. 월선하려는 어선과 이를 통제하려는 해군 고속정이 숨바꼭질을 벌이는 것은 일상화 돼 있다."

-해군의 통제가 제대로 안 되고 있다는 말인가.
"조업 어선은 모두 56척인데 비해 그것을 관리하는 고속정은 6척에 불과하다. 솔직히 6척으로 56척을 통제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가?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어선 성능이 전에 비해 좋아졌다는 점이다. 1999년 서해교전이 있을 때만 해도 어선 중에는 목선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 재질이 FRP로 바뀌었다. 더욱이 일부 선주들은 10톤 이하로 규정하고 있는 어선 규모 기준까지 어기고 있다. 사실 적지 않은 어선이 12-13톤을 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어선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졌다.

거기에다 대다수 어선이 위성항법장치(GPS)까지 장착하고 있다.
그래서 조업구역을 넘어갈 경우 해군에서 무선으로 회항 명령을 내려도 듣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해군 고속정이 현장으로 직접 쫓아오더라도 약 15분 정도가 걸리다 보니 그 때까지 개긴다."

-두번째 이유는 무엇인가?
"설치한 그물이 이미 조업구역의 한계를 넘어섰다. 해군에서 허용한 그물 크기 기준은 어선 1척 당 200미터이고, 이 크기의 그물을 15개만 설치하게 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 기준은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심할 경우에는 500미터 그물까지 생겨났으며, 이런 것을 많은 경우 30-40개까지 설치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다 보니 설치한 그물이 조업구역의 한계 범위를 넘게 됐고, 더많은 꽃게를 잡기 위해 조업한계선을 벗어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세번째 이유는 무엇인가?
"이 지역의 특수성이다. 연평도는 북한에서 제일 가까운 곳이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해주까지 훤히 보일 정도다. 사실 이 지역에는 북한 경비선이 자주 나타난다. 북한 경비선을 이곳에선 '빨간 바가지'라고 부른다.

그들이 북방 한계선 근처까지 오면 '빨간 바가지가 떴다'고 한다.
그러면 아무리 날씨가 좋아도 조업을 하던 어선들은 모두 귀항해야 한다. 올 봄에도 '빨간 바가지'가 많이 떴다. 그런 점에서 보더라도 이 지역은 시한폭탄과도 같은 곳이다. 이번 서해교전 같은 사건이 언제라도 터질 수 있는 분위기였던 것이다."

-해군 측에서 좀더 적극적으로 통제할 수는 없는가.
"과거에는 군의 명령을 감히 거역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방식이 통하지 않는다. 한번은 해군에서 통제를 심하게 하자 어민들이 출어를 안하고 항의를 한 적이 있다. 괜히 어민들을 잘못 건드려서 승진에 안좋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데 어떻게 통제만 심하게 할 수 있겠는가.

여기에 또다른 변수가 작용했다. 1999년부터 한 3년 동안 봄 철이 되면 전에 비해서 엄청나게 꽃게가 많이 잡히기 시작한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적게는 몇 천만원에서 많게는 몇 억원까지 벌 수 있는 상황에서 해군이 아무리 통제를 하려 해도 통하지 않는다. 선주들은 '떠들려면 떠들어라. 벌금 내면 그만이지'라고 하면서 조업구역을 벗어나 월선을 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이런 상황에서 서해교전 같은 일은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었다는 말인가?
"그렇다. 결국 터질 일이 터진 것이다. 곪을 대로 곪았던 상처가 이제야 터졌다고 본다."

[제3신: 3일 오후 5시 30분] 연평도는 지금 '취재전쟁' 중

▲ 연평도 어민들은 뒤늦게 꽃게 어망을 거둬들였지만 손실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 오마이뉴스 공희정
삑--.

오후 5시 15분, 긴 경적 소리와 함께 취재팀을 태운 여객선이 연평도 선착장에 도착했다. 인천항을 떠난 지 만 4시간을 훌쩍 넘어선 시간이다. 탑 모양의 소 연평도와 달리 대 연평도는 넓고 평탄한 섬 모양을 띄고 있다. 섬 주변에는 작은 섬들로 둘러 싸여 있고, 섬 뒤쪽으로 북한 지역의 섬들도 눈에 들어온다. 따라서 북한쪽으로 향하는 대 연평도의 끝부분으로는 일반인의 통행이 불가능하게 돼 있다.

연평도에 도착하기 바로 직전의 바다위에는 해군이 만들어 놓은 해상기지가 눈에 띄었다. 한마디로 간이식 해군 선착장 정도라 부를수 있다. 이곳 기지에는 이번 서해교전으로 침몰한 고속정과 같은 기종의 고속정 2대가 정박돼 있다. 도착 1.5킬로미터 전에 해군의 해상기지가 보였다.

이곳 해상기지에는 6대의 고속정이 소속돼 있는데 지난번 서해교전 처럼 긴박한 상황이 발생할 때면 6대 모두 바다로 나간다고 했다. 연평도의 한 주민은 "해상기지에 2대가 정박해 있는 것을 보면 전보다는 상황이 많이 안정된 것 같다"면서 "지난번 교전 때에는 6대 모두가 바다에서 경계활동을 펼쳤다"고 말했다. 이 해상기지는 태풍 등의 기상이변이 발생할 경우 인근 해군 기지로 철수한다.

하선 직전 여객선 실버스타 기관사 안영완씨를 만났다. 그는 지난 6월 29일 서해교전이 벌어졌을 때 연평도로 오다가 해군 당국으로부터 연안부두로 돌아가라는 긴급 지침을 받고 귀항했던 당시의 상황을 긴장된 목소리로 증언했다.

'계절마다 아름다움이 머무는 섬 연평도'.

선착장 입구에 세워진 큰 대문에 씌어진 문구다. 며칠 전 바로 이곳이 해군 고속정 부상병들의 붉은 피로 물들었던 곳이다.

연평도 선착장은 한마디로 방송국 중계차량과 언론사 취재차량으로 점령돼 있었다. 이미 KBS, MBC, SBS 등 방송 3사의 대형 위성중계 차량를 포함해 미니버스 등 모두 30대 정도의 언론사 차량이 진을 치고 있다.

배에서 내린 일부 언론사 사진 기자들은 선착장의 이같은 모습 등을 카메라에 담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선착장 뿐 아니라 연평도 섬 마을에는 언론사들의 취재 보도 차량들이 육지로부터 건너와 취재 활동을 벌이고 있다.

어선-경비정 '추격장' 방불케하는 연평도 어장

연평도 일대의 어장 황폐화로 인해 어선들의 조업경계선 이탈이 앞다퉈 이뤄지고 있고, 이는 이번 교전사태를 부른 원인중의 하나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어선들은 조업경계선을 이탈, 꽃게가 많은 북쪽 해상으로 점차 올라가 심지어 적색구역(어로 저지선)까지 침범, 그물을 설치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서해특정해역상에서 어선들의 조업을 지도. 감시하는 선박은 해군 고속 경비정 6척과 옹진군 소속 어업지도선 2척 등 모두 8척. 어업지도선의 경우 2척중 한 척은 선령 노후로 폐선 직전인데다, 나머지 한척도 속도가 시속 18노트에 불과한 실정이다.

반면 수 년전 꽃게 풍년으로 연평도 어선중 상당수가 위성항법장치(GSP)와 신형레이더를 갖추고 시속 20노트 이상의 속력을 낼 수 있는 선령 2∼3년짜리 신형어선으로 교체돼, 어업지도선의 통제는 사실상 어려운 실정이다. 고속경비정의 경우도 어선들이 집단으로 조업경계선을 넘어 불법 어로행위를 해도 현재 투입된 경비정 수 만으로의 통제는 불가능한 상태다.

선장들은 고속경비정의 강제 철수명령을 받고 조업구역내로 남하했다가, 또다시 조업경계선을 넘어 조업을 하는 등 경비정과 어선과의 해상 숨바꼭질이 비일비재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부 어선들의 경우는 조업경계선과 불과 6마일 떨어진 북방한계선(NLL) 부근 700여m 해상까지 올라가 조업을 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때문에 군과 어민들간에는 불법조업을 둘러싼 마찰도 심심찮게 일어나기도 하고, 군이 어민 생계와 안전 사이에서 자주 딜레마에 빠지고 있는 형편이다.

금어기를 불과 사흘 앞둔 지난달 26일부터 연평도 꽃게잡이 어선들의 조업경계선 이탈과 불법조업도 군이 묵인해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달 26일부터 서해교전 당일인 29일 오전까지 연일 어선들의 불법조업과 일명 '빨간바가지'(북한 경비정)의 잇따른 출현으로, 철수와 불법조업이 반복돼 왔다. / 연합뉴스

[제2신: 3일 오후 4시 30분] 인천 출발 3시간 반만에 소연평도 도착

오후 4시 30분 현재 인천항을 출발한 여객선의 뱃머리로 소 연평도가 눈에 들어온다. 여객선은 삼각뿔 모형의 소 연평도에 잠시 들른 후에 목적지인 대 연평도로 들어갈 예정이다. 인천항을 떠난 지 3시간 30분만이다. 소 연평도의 가운데 부분에 매우 큰 모양의 접시형 안테나가 자리잡고 있다. 핸드폰이 매우 뜨거워져 있다. 바다에서는 기지국을 찾기 어렵기 때문에 전화 상태가 그리 좋은 편이 되지 못한다.

여객선 풍경- 상가집 표정의 객실과 막 연평도 부대 배치받은 신병까지

정기 여객선에는 2개의 커다란 객실이 있다. 한 곳에는 영화를 볼 수 있도록 대형 스크린이 마련돼 있고 50석 규모의 좌석도 있다. 건너편 객실은 넙직한 마루바닥에 여객용 간이 담요들이 널려있다. 선실에는 자는 사람부터 2~3인 모여 화투놀이 등을 하는 사람도 눈에 띈다. 마치 상가집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여객선에는 취재진 이외에 연평도로 관광을 간다는 노인들, 가족 단위의 여름 휴양객들도 더러 끼어 있다. 특히 부모와 함께 배를 타고 연평도로 들어가는 어린이들은 월드컵 경기 거리응원 때 유행했던 '비 더 레즈(Be The Reds)'라고 씌여져 있는 붉은 티셔츠와 두건 등을 하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 연평도 일대 지도
ⓒ 오마이뉴스 공희정
특히 지난 5월 충남 논산훈련소로 육군에 입대, 신병 훈련을 마치고 연평도로 자대배치를 받고 이동중인 신참 군인 2명도 이들 사이에 들어있다. 정 아무개(21·전남 여수) 이병과 이 아무개(22·경기 시흥)이병은 3시간이 넘는 항해에도 객실에서 무릎에 주먹을 올려놓고 잔뜩 군기가 들어있는 모습이다.

자대로 배치돼 가는 심정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정 아무개 이병은 "착잡하다"면서 "제대할 때까지 건강하게 군 복무할 것"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 '월선'은 선주들의 욕심 때문, 구조적인 문제가 이번에 곪아 터진 것"
- 선원 출신 30대 선상 간이인터뷰


이들 이외에 객실에는 연평도에서 살고 있는 주민들도 상당수 있었다. 최근 서해교전 이후 주민들이 언론에 대해 민감한 반응 보이는 등 경계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이같은 분위기는 배 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일부 주민들 사이에서는 오히려 언론에 의해 주민들의 의견이 왜곡되거나 구조적인 문제를 다루지 않는 것에 대해 이번 기회에 제대로 알려야 한다면서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다음은 자신을 전직 선원이라고 밝힌 30대 초반의 젊은 남성이 전하는 이야기다.

바다를 나가는 연평도 사람들은 북한 경비정을 '빨간바가지' 라고 부른다. 선원들은 북한 경비정이 바다에 등장을 하면 '빨간바가지가 뜬다'는 은어를 사용하고, 곧 조업을 중단하고 섬으로 돌아와야 한다.

북방한계선(NLL)에 대해선 솔직히 나 자신도 잘 모른다. 하지만 배들이 어로한계선을 넘어가는 월선은 비일비재하다. 그 원인은 일부 선주(배 주인)들의 욕심 때문이다. 해군 통제는 거의 불능에 가깝다고 보면 된다. 월선 하려는 어선과 통제하려는 해군의 숨바꼭질은 이미 일상화된 지 오래다.

선주들은 황금어장을 코 앞에 두고서 욕심을 버릴 수 없었을 것이다. 특히 일부 선주들은 10톤 이하로 제한이 돼 어선의 규모도 전혀 지키지 않고 어선은 대형화되고 있는 추세다. 그만큼 배의 성능도 좋아지고 있다.

또 배에서 쓰는 어망의 규모도 원래 배 한척당 200미터짜리 15개를 설치하게끔 돼 있다. 하지만 이를 지키는 경우는 거의 없다. 500미터 짜리도 있고, 이러다 보니까 정해진 어로 한계를 넘는다. 성능이 좋아진 만큼 배의 속도도 엄청나게 빨라졌다. 그래서 해군과 숨바꼭질이 가능하다.

특히 월선을 해서 어업하는 과정에 많은 선원들이 안전사고로 다치는 등 희생들도 많다. 당연히 정부의 통제와 감시, 경고 등을 피해서 어업행위를 하다 보니까 안전은 항상 뒷전으로 밀려난다.

예를 들어 보통 닻을 통해서 그물을 고정시켜 놓는데 밀물이나 썰물 때에는 그물이 굉장히 팽팽해진다. 팽팽해진 그물에 부딪히거나 하면 거의 병신이 되거나 죽는 경우도 생긴다. 나 자신도 이 때 사고를 당해 다리 한 쪽을 거의 못쓰고 있다.

이번 서해교전을 보고 참 안타깝다고 생각했다. 99년 북한과의 교전 당시에도, 많은 보도진들이 섬에 들어왔을 때 이런 이야기들(월선 등)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남쪽 해군이 북쪽에 피해를 입히면서 승전에 도취돼 이런 구조적인 이야기들이 묻혀 버렸다.

사실 이것은 이미 곪을 때로 곪아버린 고름과 같은 것이었다. 이번에 그 고름이 터진 것이다. 이번에 우리 해군이 희생을 당했고, 원인을 따지다 보니까 예전 승전때에는 돌아보지 않았던 이야기를 끄집어 내 알려지게 된 것이다.


[제1신: 3일 오전 11시 30분] 내외신 취재진으로 북적이는 인천 연안부두

<오마이뉴스> 특별취재팀은 당초 3일 오전 10시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에서 배로 연평도로 향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10시에 출발하기로 돼있는 연평도 행 정기여객선 <실버스타호> 출항시간이 짙은 안개로 인해 오후 1시로 연기됐다.

연평도는

이번 서해교전으로 국내외 관심을 끌고 있는 연평도는 주(主) 섬인 대 연평도를 포함해 소 연평도와 당도(當島) ·구지도(求地島) 등으로 이뤄져 있다. 대 연평도의 면적은 6.95 평방 킬로미터로 지난 94년말로 1090명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으며 당도와 구지도 등에는 사람이 살고 있지 않는 무인도다.

북서쪽으로 휴전선에 가까운 연평도는 황해의 어업중심지로 알려져 있으며 특히 이 일대 해역은 한국의 대표적인 조기 어장이다. 해마다 4∼6월의 조기잡이 철에는 파시(波市)가 열리면서 1,500∼1,700여 척의 어선이 몰려든다.

섬의 동쪽으로 고정 잔교와 856미터 길이의 방파제가 설치된 연평도항이 있고 북서쪽 끝에는 등대가 설치돼 있다. 또한 이 섬의 임경업 장군각에서는 출어 하기에 앞서 풍어제를 지내는 관습이 있다. 행정구역상으로 인천광역시 옹진군 연평면 연평리. / 내용 출처 : 두산세계대백과사전
/ 김종철 기자
연평도까지 가는 데 4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취재팀은 오후 5시 30분 경에 섬에 도착할 예정이다. 오늘 아침 배로 연평도에 들어가기로 한 언론사 취재진은 <오마이뉴스> 취재인력 4명을 비롯해 한겨레, 한겨레 21, 월간 말, MBC, SBS 등의 국내 취재진과 일본의 아사히신문 등 20여명이다.

인천항에서 연평도로 가는 배는 월, 수, 금, 토요일 오전 10시에 한 번뿐이며, 연평도에서 나오는 배는 화요일과 목요일 오전 10시, 금요일과 일요일 오후 1시에 출발한다. 연평도까지 편도 요금은 1인당 2만4700원, 차량은 6만원이다.

지난 주에는 토요일 배가 연기돼 일요일에 출발했으며, 정원 315명에 70여명이 탑승하는 평소와는 달리 140여명이 연평도로 떠났다. 여객터미널 측은 이중 40여명이 취재인력인 것으로 보고 있다. 오늘은 70명 정도 탑승할 것으로 보여 평소 수준이다.

▲ 인천항 1시에 출발
ⓒ 오마이뉴스 공희정
이번 서해교전 관련, 가장 돋보이는 보도를 해온 MBC는 지난 일요일 두 팀이 연평도에 들어간 데 이어, 오늘 추가로 두 팀이 파견된다. SBS도 추가인력이 들어간다. 정기여객선은 차량 20대 정도를 실을 수 있으나, 방송 중계차량이 너무 커 정기여객선에는 실을 수 없어 두 방송사는 별도로 240만원을 주고 화물선을 빌려 중계차량을 들여보냈다.

여객터미널 관계자는 "지난 일요일에 대부분의 기자들 들어갔다"며 "어제 국민일보 차량이 섬에서 나왔을 뿐, 다른 언론사 사람들은 나오지 않고 현지에서 취재를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안개 때문에 출항이 지연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인천 연안부두의 풍경은 일상적인 모습 그대로다. "서해 교전 때문에 매상에 영향 없느냐"는 질문에 터미널 낚시 백화점 주인은 "손님이 줄거나 하지 않았다. 별 신경 안 쓰고 있다". 또 다른 가게 주인 "매상이 조금 줄었다." 전체적으로는 무신경한 분위기.

터미널 대합실에서 만난 최 아무개씨 가족. 휴가를 맞아 연평도에서 군인으로 복무하고 있는 동서 가족을 찾아가는 길이라는 최 씨는 "교전난 곳에 휴가가느냐"는 질문에 "전쟁난 것도 아니고 교전에 대해 별 신경 안 쓰고 간다. 동서에게 꽃게 흉년이라는 얘기 많이 들었다."고 무덤덤한 투로 대답했다.

▲ 연평도 전망대에서 바라본 연평도 전경
ⓒ 오마이뉴스 공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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