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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는 끝났고 승패는 정해졌다. 세상은 한 사람은 승리자로, 한 사람은 패배자로 기록했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최종평가는 아직 이르다. 이들은 젊고 패기에 차 있으며 여전히 꿈과 희망을 신뢰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주시장 당선자 신정훈'과 '서울시장 낙선자 김민석'. 대학은 달랐지만 학번 동기이자 동일 사건의 '공범'이었던 두 사람. 이들이 내민 6·13지방선거 성적표는 승패를 떠나 두 사람이 살아온 시대와 고민을 보여준다.

▲'낙선자 김민석'(왼쪽)과 '당선자 신정훈'(오른쪽) ⓒ 오마이뉴스

학번 동기, 미문화원 점거농성사건 공범...김민석과 신정훈의 대학시절

김민석과 신정훈은 한 살 터울로 82학번 동기다. 김민석은 서울대 사회학과 82학번이고 신정훈은 고려대 신문방송학과 82학번이다. 전남 나주가 고향인 신정훈도, 서울 토박이인 김민석도 기자를 꿈꾸며 대학에 진학했다.

그러나 기자의 꿈은 '광주학살'이라는 상처투성이 현실 앞에서 접게 된다. 85년 이들은 서울 미문화원을 점거하고 미국에게 광주학살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농성을 벌인다. 이름하여 서울 미문화원 점거농성 사건의 공범이 된 것이다. 이 사건으로 두 사람은 3년여의 감옥살이를 했다.

감옥에서 출소한 이후부터 두 사람의 길은 조금씩 벌어지기 시작한다. 제도권 정치와 기층 민중운동. 당시만 하더라도 두 영역의 간극은 천국과 지옥의 차이를 무색케 할 정도였다.

신정훈은 87년 7월 출소하자마자 고향 나주로 내려와 배 농사를 지으며 농민운동에 뛰어든다. 그는 '나주수세폐지대책위'를 조직해 수세거부운동을 전개하여 일 년에 1천억원씩 징수하던 부당한 수세를 완전히 폐지시키는 데 성공했으나 아내 주향득과 함께 89년 또 다시 8개월 동안 옥고를 치러야 했다.

신정훈이 나주수세투쟁의 성과를 밑천 삼아 '나주 농민회' 결성을 주도하던 90년, 김민석은 '야권통합 추진회의의 청년대표'로 제도정치권의 문을 두드린다. 한때 공범이었던 두 사람은 기층 민중운동가와 제도권 정치인이라는 생경한 관계가 되고 만다.

감옥 출소 후 신정훈 "고향으로"...김민석 "제도정치권으로"

김민석이 27세의 나이로 당시 부총리였던 나웅배씨와 서울 영등포을에서 자웅을 겨루며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던 92년. 신정훈은 여전히 나주 농민회를 지키며 조직부장, 민원실장, 사무국장 등을 역임한다.

▲92년 중앙정계에 입문한 김민석의 선거 포스터. 당시 통합야당이었던 민주당의 '위탁관리자 이기택' '실질적 오너 김대중'과 함께 찍은 사진은 김민석의 정치입문과 그 이후 행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 김민석 홈페이지

비록 200여 표 차로 지긴 했지만 김민석에게 92년은 '스타 정치인'으로 발돋움하는 결정적 계기가 된 해였다. 그에겐 현실성 있는 도전의 기회가 이미 예정돼 있었고 94년부터 95년까지 미국 유학을 통해 잠시 호흡을 가다듬은 그는 96년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31세의 나이로 16대 최연소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것이다.

95년 농민운동가 신정훈에게도 새로운 도전의 기회가 주어졌다. 그 스스로 '본가(本家)'라고 부르는 나주농민회가 지방선거에 '농민후보'로 출마하라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무소속으로 전남도의원 선거에 나선 그는 최연소 도의원에 당선됐다.

시기 차이가 있지만 미 문화원 점거농성 사건 공범들이 십년만에 '정치인'으로 조우한 것이다. 국회의원과 도의원이 된 김민석과 신정훈은 재선 고지를 점령하며 각각 촉망받는 정치인으로 부상했다.

똑같이 최연소로 당선...탄탄한 지지기반 속 재선가도까지 똑같아

그리고 마침내 2002년 6·13 지방선거에 두 사람은 한 무대에 나타났다. 서울시장과 나주시장 후보 자격으로 지방선거 무대에 함께 오른 것이다. 김민석은 집권여당이었던 민주당 후보로 나서 싸늘한 민심을 부여잡기 위해 안간힘을 썼고, 신정훈은 그런 민주당을 심판하겠다며 민주당 텃밭에서 무소속 후보로 나섰다. 결과는 신정훈 당선, 김민석 낙선이었다.

"불효만 하다가 보내드린 아버지가 생각났어요. 그리고 손들만 생각나는 거예요. 선거 기간 동안에 내 손을 꼭 잡아주던 어른들의 손... 이쁘고 고운 손이 아니라 트랙터에 잘려나간 손, 농사일에 못이 박힌 주민들의 손이 가장 크게 떠올랐어요. 정말 고마운 손이고 감사한 손들입니다."(16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당선 확정 후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무엇이었냐"는 질문에 대한 신정훈의 답변 중에서)

"그 동안 기대를 걸어주신 분들 생각도 나고, 일찍 정치 시작하면서 주변을 실망시켰던 일들 생각도 나고, 정말 초심으로 돌아가 잘해보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도 가슴에 가득하고, 그러저러한 생각들 때문에 그렇게 눈물이 많이 났습니다. 어쩌면 그 눈물들로 해서 저는 어제 이미 이번 선거의 승패와 상관없이 마음에 정화되어 위로를 받을 만큼 받은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정치를 시작하던 초심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만으로 감사한 일이었으니까요."(낙선 직후인 14일 지인들에게 보낸 김민석의 편지 중에서)

갈린 승패만큼이나 두 사람의 소회에도 약간의 차이가 있다. 신정훈의 소회가 '손'으로 구체화된 점이 무척 이채롭다. 이는 신정훈과 김민석의 정치행로의 차이일 수 있겠다.

우선 정치입문 과정에서부터 두 사람은 차이가 있다. 김민석은 "주변사람들과의 상의"를 통한 '나 홀로 결정'의 성격이 짙다. 또한 김민석은 92년 당시 통합야당으로 탄생한 민주당의 '실질적 오너'였던 김대중의 막강한 정치적 후원을 배경으로 삼고 있었다.

▲수세싸움을 승리로 이끈 뒤 나주 농민회 사람들과 기뻐하고 있는 신정훈(가운데 팔 벌린 이). 이 한 장의 사진으로 신정훈의 '든든한 정치배경'을 알 수 있다. ⓒ 신정훈 홈페이지

신정훈과 김민석의 차이

반면 신정훈은 "농민회라는 운동조직의 결정에 따라" 정계에 입문했다. 그의 정치적 후원자는 농민회인 셈. 그가 전남도의원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나주시청 앞에서 추곡수매 투쟁을 벌이던 농민들과 "배지를 떼놓고 날밤을 샐 수 있었던 것"도 그 스스로 농민회가 의회에 파견한 일꾼이라는 '조직적 사고'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차이는 정치활동 무대와 방식에서 찾을 수 있다. 김민석의 정치무대는 서울이라는 한국의 '중앙'이다. 이곳엔 정보와 권력, 돈이 집중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사람들간의 관계는 느슨하다. 그가 정치활동 방식에 있어서 구체적 관계를 확대해나가는 방식보다 '이미지 활용'에 주력할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신정훈은 '고상하고 세련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보다 한 사람의 '손'을 더 잡는 것이 유익했다. 여전히 '변방'으로 머물고 있는 그의 정치적 무대는 이미지나 기호의 조작보다는 구체적 인간관계의 형성이 변화의 물꼬를 트는 데 유리했던 것이다.

세 번째 차이는 정치적 파트너십을 공유한 대상이 누구인가도 이들의 중요한 차이점이다. 김민석은 김대중으로 대표되는 한국 정치의 상층부와의 우호적 교류를 통해 정치적 성장을 거듭해왔다. 민주당이 정풍 파동에 휩싸여 있을 때 그가 동교동 구파가 아닌, 개혁세력과 대립각을 형성했던 점은 이와 무관치 않다.

신정훈은 김민석과는 정반대의 파트너십을 형성해왔다. 그의 파트너는 현장의 농민들이었고, 농민회였다. 상층이 아닌 하층에 천착함으로써 그는 힘을 발휘했다. 그 힘은 신뢰의 힘이었다.

낙선자 김민석은 "뭔가 다시 태어나듯이 새로 시작해보고 싶다"며 "피곤한 몸도 쉬고 공부도 하고 싶고, 오랜만에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기도 하고, 우리나라 구석구석 다니며 사람들 사는 것도 보고 싶다"고 했다.

당선자 신정훈에게 "낙선한 공범에게 해줄 말 없느냐"고 물었다. 그는 잠시 말을 놓았다. 그리곤 매우 담담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말했다.

"어떤 기자가 '김민석과 무슨 관계냐'고 묻길래 '과거엔 좋은 친구이자 동지였지만 현재엔 우정을 나누는 친구'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길은 달랐지만 다들 열심히 살았고 또 언젠가 함께 갈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문제는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 입니다. 그러나 저는 386방식의 비판적 개혁주의도, 장기표 선배 식의 깃발 든 진보주의도 아니라고 봅니다. 민심에 뿌리를 두고 밑으로부터 근거지를 만들고 자기역량에 맞게 시험하고 도전하면서 상층작업을 병행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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