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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17일 <오마이뉴스>에는 한국의료계를 비판적으로 검증한 안종주씨(한겨레신문 심의위원)의 책 <한국의사들이 사는 법> 서평기사가 실렸다. 이 기사에 대한 반응은 의외로 뜨거웠다. 서평기사로는 드물게 2만2천여명의 네티즌들이 기사를 읽었고, 관련된 독자의견만도 800여개에 달했다.

독자의견 가운데는 책의 내용에 공감을 표하는 의견들이 많았지만, '지나치게 의사들을 폄하하고, 한국의료의 현실을 오해한 측면이 있다'는 의견도 없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일산에서 개원의로 일하고 있는 김금미씨가 의사의 시각에서 <한국의사들이 사는 법>을 읽고, 글을 보내왔다. <오마이뉴스>는 '적극적 반론권 보장'의 차원에서 김금미씨의 글을 가감 없이 게재한다... 편집자 주


진료가 끝날 무렵, 심한 구토로 탈수가 된 여자 환자가 나를 방문했다. 직원들을 모두 퇴근시키고, 수액주사를 맞는 환자를 관찰하면서, 컴퓨터 앞에 앉아 이 글을 쓴다.

▲ 5월17일자 오마이뉴스 기사 ⓒ 오마이뉴스

기자로서, 의약분업 실행위원으로서 활동했던 사람의 눈에 비친 의료계의 문제점에 대하여 쓴 <한국 의사들이 사는 법>이라는 책이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나는 의료계와 가깝게 활동해왔던 기자의 눈에 비친 의사들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알기 위하여 책을 읽었고, 각 언론에 소개된 책의 평을 보았다. 숨쉴 틈 없이 펼쳐지는 의사에 대한 비난과 질타들…. 그 책과 책에 대한 언론의 평들을 모두 읽고 난 후, 한참동안 나의 얼굴은 엷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이 책에 대하여 공감을 하고 안하고는 온전히 독자의 몫이다. 단, 내가 우려하는 것은 이 책이 의사사회에 대한 건전한 비판보다는 극히 일부의 예를 전체로 확대 해석하는 일반화의 오류를 범함으로써, 모든 의사들이 다 부정하다고 단정했고, 이를 정의감을 가지고 공개하는 듯한 모양을 취했다는 점이다.

결국 그 책이 사람들에게 읽혀짐으로써, 의사를 믿고 건강을 맡기고 있는 국민들이 의사에 대하여 왜곡과 높은 불신의 벽을 다시 쌓게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하게 되었다.

안종주씨가 41개의 주제, 303쪽에 달하는 긴 내용에서 언급했던 의사에 대한 비판에 대하여 모든 것을 다 반론하기에는 내 자신도 책 한 권을 써야 할 것 같다.

다만 이 중에서 몇 가지 걱정스러운 부분들에 대하여 수정과 그 근거를 제시하고, 내 진료실을 찾는 환자들에게 동의를 구하고자 한다. 이 글은 내 입장에서 쓴 것이긴 하지만, 진료실을 지키고 있을 많은 나의 동료들도 나와 같은 생각들을 생각하고 있으리라 믿는다.

[관련기사]
한국, 의사에겐 천국 환자에겐 지옥?

1. '어떻게 해서라도 병원에 자주 오게 하거나 비싼 검사를 한다'

안종주 기자는 한국의 의사들이 돈을 버는 방법들에 대하여,

"어떻게 해서라도 환자가 자주 병원을 찾게 한다. 좀 더 비싼 약을 처방하거나 투약한다. 돈 받고 특정 병원에 교통사고 환자를 보내 준다.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시술법이나 기기를 쓴다. 의료 사고가 나면 진료기록부를 조작하거나 환자들에게 떠넘긴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환자들을 볼모로 집단 파업도 할 수 있다"

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전국의 개원의 수가 2만 명이 넘고 있다. 병원도 무한 서비스 경쟁시대이다. 내 환자들 중에서는 반 이상이 이미 인터넷에서 본인의 질병에 대하여 검색을 하고 정보를 구한 뒤 검사와 치료를 받고자 오는 환자들이다. 무작정 환자를 매일 오게 하거나, 의사의 마음대로 설명 없는 검사를 시행할 의사도 극소수겠지만,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하다.

이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면, 대한민국 국민의 수준을 무시하는 것이다. 내가 환자를 보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진료의 정확성과 환자의 편의이다. 나에게 매일 오는 환자들은 거의 없다.

인후염 등 간단한 질환은 2, 3일 정도의 처방으로 치료가 끝나거나 한 두 번의 경과만 본다. 환자의 경과를 관찰하는 것은 의사의 책임이다. 간혹 당뇨나 고혈압 환자 중에서 치료를 게을리하고 5,6개월 동안 안 오다가 많이 나빠져서 방문하는 환자들이 있다.

그럴 때면 나는 반성을 한다. 환자가 불필요하게 자주 올 필요도 없지만, 아무리 만성 질환 환자더라도 한두 달에 한번은 진찰과 경과관찰을 해야 정확한 건강의 유지가 가능하다. 이를 확실히 설명하고, 환자가 나를 방문할 의사를 갖게끔 교육하는 것도 나의 의무의 하나이다.

2.'의사는 부당청구, 과다청구로 돈만 아는 집단이다'

의사들의 부당청구는 예전에도 극히 소수였으나, 공단과 심사평가원의 과도한 검토로 거의 100% 불가능해진 지 오래 되었다. 또한 심사평가원에서는 수진자 조회를 통하여 전국의 의료보험가입자들에게 병의원 방문 횟수와 날짜에 대한 확인을 하고 있다.

요즘 환자들 중 상당수는 가계부에 그 방문 날짜를 기록하고 있고, 사용된 액수를 적고 있으며, 수첩에 발행된 처방전 내역을 적어서 보관하고 있는 환자들도 꽤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나는 부당청구나 날짜늘리기 등으로 하여 내가 경제적인 이득을 보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도 없다. 오히려 내가 정당하게 청구한 내역에 대해서 삭감이 되지 않기만을 바란다. 나의 당뇨환자 중에 캐나다에 가족이 거주하는 남자 환자가 있다.

그 환자는 한 번 나가면 캐나다에 6개월씩 있기 때문에 수개월 전, 내게 인슐린 주사 6개월치 처방을 받아서 병원에서 받아가셨다. 그런데 나는 그 6개월치 인슐린 약값을 고스란히 삭감당했다. 그 이유를 심평원에 알아보니, 직원이 하는 말, '너무 한꺼번에 많이 청구했으니, 일단 삭감하고 본다. 이유가 있으면 이의신청하라'였다.

당연히 정당한 이유가 있음에도 일단 삭감하고 보는 행정을 보니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나는 이의신청을 하려 했지만, 절차가 복잡하고 까다로워 포기하고 말았다. 일방적인 삭감에 대하여 그 절차가 까다로워서 이의신청이나 재신청을 포기해버리는 동료들이 매우 많다.

극소수의 부당한 청구를 하는 의사들보다 정당한 청구에도 불구하고 무분별하게 삭감을 당하여 병원 경영이 어려워지는 의사들이 많음을 국민들은 이해해주시리라 믿는다.

3.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시술법이나 기기를 일부러 쓴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양질의 시술법을 사용할 것인지의 여부는 환자가 택할 몫이다. 의사는 그에 대한 적절한 설명을 환자에게 해주어야 한다. 어느 국민이나 양질의 진료를 받을 권리가 있다.

정부가 국민의 기본적인 진료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 공공의료이다. 그런데, 그 이외에 더 편리하게 진료를 받아야 하는 부분에 관해서까지 정부가 세금으로 책임질 수는 없는 상황이다.

그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양질의 시술법을 사용할 것인지 사용 안 할 것인지에 관해서는 국민이 선택할 사항이다. 예를 들면, 담석제거 수술에서 고전적 수술법을 택할 것인지 복강경 수술을 택할 것인지 환자에게 설명을 하고, 수술 방법을 선택할 것을 맡긴다.

환자는 편리하고 부작용이 덜하고 흔적도 덜 남는 복강경 수술을 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위 내시경 검사에서 수면 내시경의 기술은 보험인정이 되지 않고 있고, 일반 내시경은 보험인정이 된다. 의사는 환자에게 수면 상태에서 편안하게 내시경 받을 수 있는 방법과 그렇지 않는 방법을 설명하고, 환자에게 선택할 권리를 부여한다.

획일화된 저수가 저질의 진료만을 강요하고, 선진의료를 외면하고 국민에게 시술하지 않는 것이 안종주 기자가 원하는 의료환경은 진정 아닐 것이다.

4. '우리나라가 사회주의 의료체제라는 의사의 주장은 거짓말이고 한국만큼 의사가 자유롭게 진료하는 나라도 드물다'

내가 보기에 우리나라는 명확히 말하여 완벽한 사회주의 의료체제도 자본주의 의료체제도 아니다. 한마디로 우리나라 의료를 규정하자면, 투자는 민간이 하고 통제는 국가가 하고 있다. 사회주의 의료체제 안에서는 국가가 병원을 세우고, 의사를 국가의 돈으로 고용하면서 국가가 의료를 통제한다.

공적의료가 발달한 서구 유럽의 상황이 사회주의 의료체제의 그것과 다른 이유는 사적의료를 인정함으로써 양질의 진료받고 싶어하는 국민이 선택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두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의사 개인의 자본으로 병원을 세우고, 의사가 병원을 경영하지만, 그 통제는 국가에서 전부 하고 있다. 획일적 의료시스템 안에서 정해진 규격 이외의 양질의 진료는 모두 인정하지 않고, 받을 수 없도록 하고 있다. 국민에게 양질의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선택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는 행위별 수가제인 상황에서 기본 병원투자에 대한 비용은 인정하지 않은 채 진료행위에 대한 수가에만 공단에서 획일적인 수가로 병원에 지급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강남에서 비싼 임대료에 개업한 의원과 시골에서 값싼 임대료에 개업한 의원의 수가가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고 있지 않는 현실이다.

5. 의사의 수입에 관하여

의사가 어느 정도의 수입을 받아야 하는가에 관해서는 사회 안에서 충분히 이견이 있을 것이다. 나는 내가 소신껏 나의 환자에게 진료할 수 있는 법적인 환경의 조성과 나의 의학적 지식의 제공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원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내가 사회에 정당한 기부와 봉사를 제공하는 것과, 양질의 진료에 대한 상응하는 대가를 받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그러나 안종주 기자의 '의사들이 적은 수입에 만족하도록 훈련받아야 한다'는 글에서는 '정당한 수입을 존중하는 선진 사회인의 모습'을 찾기 힘들다. 나는 구체적인 액수보다도 내가 환자에게 나의 의학적 지식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여 치료하고 그에 상응하는 정당한 대가를 받기를 원하며 그 대가에 따라 가지게 된 경제적 지위에 대해서는 존경과 인정을 받기를 원한다.

나는 지금도 작은 방법으로 사회로의 환원을 실천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나의 동료들이 그렇게 하고 있다고 알고 있다. 나는 의사의 수입에 관한 논란을 하면 할수록 '의사 집단은 돈만 아는 집단'으로 매도될 것임을 잘 알고 있다.

사회적으로 정당한 사회활동과 그에 상응하는 경제적 대가가 인정과 존경을 받는 분위기가 정착되지 않는다면, '의사의 수입에 대한 논란' 그 자체의 의미는 찾을 수 없을 것이다.

6. '의사들은 좀더 비싼 약을 투약하고 리베이트를 받는다'

의사들이 어떤 정책적인 주장을 하더라도 '돈으로부터 깨끗한 집단'이라는 인식을 받지 못한다면, 나는 그 정책적 주장의 설득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나의 진료실에는 제약회사 직원이 들어오지 못한 지 오래 되었다.

나는 아예 제약회사 직원을 만나지 않는다. 혹 신약이 개발되면 간호사를 통해서 그 약의 설명서와 논문만을 전해 받고 있다. 나에게 리베이트란 없다. 나는 대부분의 나의 동료들이 나와 같은 상황이라고 알고 있다. 의사들이 단순히 제약회사의 리베이트를 가지고 약을 결정하고 처방한다고 단정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생각이다.

15년 이상 의학을 배우면서 근본적으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익혀진 인술은 그러한 작은 대가에 흔들릴 만한 것이 절대 아님을 환자들에게 꼭 말씀드리고 싶다. 내가 약을 처방하는 근거는 나의 의학적 지식과 나의 진료 경험에서 비롯된다.

의약분업의 강행으로 인하여 의사가 약을 처방함으로써 얻는 이득은 완전히 없어졌다. 오로지 의학적 판단에 의할 뿐이다. 나는 환자들의 상태를 보아 꼭 오리지널약이 필요한 환자는 그렇게 처방을 하고, 경험상 질 좋은 카피 약품이 있는 약들은 카피약을 처방한다.

사실 나는 약의 사용에 대한 개인적인 금품 제공은 반대하지만, 어떤 의사회의 학회나 캠페인에 대한 제약회사의 정당한 협찬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일말의 잡음 없이 공정한 상태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며, 그 협찬은 제약회사의 사회적 지위와 국민의 이미지 형성에는 작용할 수 있어도 의사의 약의 선택에는 작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의사가 약을 처방함으로써 받는 이득이 없다'는 것은 국민의 건강을 위협하는 '성분명 처방 주장'을 근절하기 위해서도 꼭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져야 하는 일이다.

7. 성분명 처방인가, 상품명 처방인가.

최근 의보재정이 파탄나고 신약 개발에 따라 약국의 재고량이 늘어나면서 '성분명 처방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다. 아마 대부분의 국민들은 '상품명 처방'과 성분명 처방'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르실 것이다.

하나의 약에는 그 복잡한 화학명을 가지는 성분명이 있고, 판매하기 좋게 각 회사에서 만들어서 붙여주는 이름인 상품명이있다. 즉, 혈압 치료제 '아테놀올'을 예로 들어보겠다. 혈압치료제의 성분인 '아테놀올'은 전국 77개 제약회사에서 만들어내고 있으며, 그 중 오리지날인 H 회사의 '테O민'은 1정당 290원, K 회사의 A정은 244원, B제약의 B정은 41원에 판매되고 있다.

이렇듯 같은 성분이라도 만들어내는 회사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며, 약에 따라서 적게는 1.5배, 많게는 열배까지도 상품의 가격에 차이가 있다.

상품명 처방이란, 의사가 처방을 테O민 정 등 상품명으로 내서, 약사가 그 성분약의 제약회사를 임의로 바꾸지 못하게 함으로써, 약효를 믿고 확인할 수 있는 회사제품을 환자에게 복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성분명 처방이란, 의사가 처방을 그 성분명인 '아테놀올정'으로 낸 뒤, 약사가 알아서 제조 회사 상품을 선택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약효동등성 실험이 의료선진국의 조건을 따라가지 못하는 열악한 상황으로써 혈압약이나 심장약, 당뇨약 등을 일선 의원에서 사용하다 보면, 각 제약회사마다 그 약효가 균등하지 못하고 다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약을 사용할 때에는 그 상품명이 투약할 때마다 달라지지 않도록 주의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복지부에서도 성분명 처방 논란은 아직 시기상조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약국의 재고약 해결과 의보재정 해결 때문에 국민의 건강에 심각한 위협을 끼칠 수 있는 이러한 성분명 처방주장을 안종주 기자가 펼친 것에 대해서는 이해가 안간다.

그가 이러한 문제에 관하여 모르고 '성분명 처방 주장'을 펼쳤다면 의료전문기자로서의 자질에 이의를 제기해야할 일이겠고, 알면서도 이러한 주장을 썼다면, 그가 '한국의료'에서 진정으로 국민의 건강권을 먼저 생각하는가에 대한 강한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8. 처방전 1매 발행에 관하여

안종주 기자는 '환자의 알권리와 의사의 청구조작방지를 위하여 처방전 2매 발행을 반드시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처방전 1매 발행은 환자의 알권리 확보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

'처방전'이란 의사가 환자를 진료한 후, 어떤 약을 조제해야 하는지 그 내용을 약사에게 지시하는 '조제 지시서'이다. 나는 환자에게 처방전을 발부하면서 환자의 질병 상태와 어떤 약을 처방했는지에 대하여 자세하게 설명하고, 복용방법까지 꼼꼼히 알려드린다.

나는 처방전을 환자에게 드리고도 환자가 제대로 약을 조제 받았는지 항상 걱정이 되고, 환자 입장에서도 의사가 처방한 대로 정확한 조제를 받았는지 걱정하여 내게 다시 약을 가져오는 환자들도 있다.

이러한 환자의 알권리 해결과 정확한 조제 확인을 위한 해결 방법이 바로 '약국에서의 조제내역서의 발행'이다. 이것은 약사의 임의 대체조제나 변경조제를 방지하기 위한 예방장치로도 가능하다.

결국, 처방전 1매 발행과 조제내역서 1매 발행이 문제의 해결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병원에서만 처방전 2매를 발행해야 한다는 주장은 환자의 확실한 알권리 확보와 조제확인, 궁극적으로 국민의 건강권 보호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9. 무엇이 진짜 의원-약국간 '담합'인가

나의 병원 바로 옆에는 약국이 있다. 물론 나와 아무런 관련이 없고, 금품을 주고받음도 전혀 없는 약국이다. 나의 환자들은 다행히 그렇게 가까운 약국이 있어서 나이 드신 할머니나 어린이들 모두 내가 권하지 않아도 가까운 약국을 손쉽게 찾고 있고, 별다른 사고 없이 약을 정확하게 조제받아가고 있다.

그러면 처방전이 가까운 한 약국으로 몰린다고 하여 모두 담합인가. 안종주 기자는 '모든 가까운 약국은 담합의 가능성이 많으므로 국민들이 감시해야 한다'고 표현하고 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소비자에게 편리하고 찾기 쉬운 곳에 매장이 형성되는 것은 당연한 논리이다.

의약분업이라는 제도 자체를 문전약국이 들어설 수 밖에 없는 시장논리가 되도록 만들어 놓은 뒤, 의원 가까운 곳에 약국을 만들어져서 처방전이 몰리면 무조건 안 된다는 주장은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동네약국의 존재가 힘들어지는 것은 의약분업 제도 자체의 문제이지 문전약국의 존재의 문제가 아니다. 만일 극히 일부, 약국과 의원간에 경제적인 주고받음이 있다면 당연히 그것은 있어서도 안되고 제재받아야 한다.

그러나 무조건 가까운 곳의 의원 약국을 규제해야 한다는 것은 국민 재산권 침해의 위험이 있는 발상이고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잘 알고 있을 안종주 기자가 이러한 주장을 했다는 것은 아마도 어떤 잘못 투영된 '정의감'의 발로가 아닌가 한다.

10. '의사들이 약국의 치부를 들추기 위해 전직 경찰까지 동원한다'

의약분업의 목적은 약국의 불법진료 근절에 있었다. 정부는 의사들의 극히 일부에서 발생하는 부당청구를 알아내기 위하여 수 천만원을 들여 온 국민에게 수진자 조회를 하고 있고, 삭감을 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약국의 불법진료, 불법 조제에 대해서 정부는 어떤 근절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가?

나는 정부가 그러한 노력의 100분의 1이라도 약국의 불법진료 근절에 힘을 쏟는다면 의사들이 전직 경찰까지 동원하는 시도를 하겠는지 되묻고 싶다. 실제로, 고양시에서는 약국의 30%에서 불법 진료 행태가 적발되었고, 지난달 개원의협의회에서는 1800여개의 약국에서 불법조제를 녹취 등의 방식으로 적발하여 고발단계에 가 있다.

이는 바로 정부가 의지를 가지고 단속을 지속해야 하는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개의치 않고 있어 의약분업이 일선 약국에서부터 무너지고 전문약이 구분 없이 판매되는 현실로 와 있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의사들이 나설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선진의료국의 사례에서 보여지듯, 약사가 처방전 없이는 절대로 약을 조제하지 않는 그런 선진 의료사회라면, 의사협회가 전직경찰까지 동원할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다. 이는 국민의 건강과도 연결되는 중요한 사안이다.

12. '재정파탄의 주범이 의사이다'

안종주씨는 이 책에서 '의약분업후 의보재정 파탄의 주범은 오직 의사의 진료수가 인상에 있다'라고 단정지었다. 의약분업 이전, 의사들이 현실적으로 진료수가가 낮은 상황에서 약가 마진으로 병원을 유지했었다는 것은 정부나 언론 누구나 알고 인정했었던 사실이다.

그 상황에서 약가 마진으로 병원을 운영해야 했던 사실을 마치 부도덕한 집단의 표현인 양 언론에서 연일 매도하며, 의약분업의 당위성으로 몰아갔었다. 정부는 의약분업을 강행하면서, 이런 식으로 의사들의 도덕성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다.

우여곡절 끝에 의약분업이 강행되면서 의사가 가지고 있던 약가 마진에 대한 보상의 의미로 의약분업 전후 의사에 대한 수가인상이 22% 있었다. 그러나 분업 시행 후, 곧바로 의보재정은 의사들이 경고했던 대로 파탄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 그렇다면, 과연 안종주 기자의 말대로, 의사에게 수가인상을 해준 것만으로 의보재정 파탄이 발생한 것인가?

국민들 중 모르고 그 책을 읽게 되실 분들을 위하여 그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할 것 같다. 의약분업 후 의보재정 파탄의 실제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첫째, 현대사회 발달과 인구 노령화로 인한 의료 이용량의 증대이다.

둘째, 2000년도 지역과 공교 공단의 관리 운영비가 각각 20% 와 12%로 증가하는 등, 공단의 구조조정 노력이 미흡했었다.

셋째, 직장 재정통합 직전인 1999년 급여비는 의료보험징수 수입이 13% 증가에만 그쳤고, 조합이 통합되면서 미수 보험료에 대한 징수노력이 부족했다.

넷째, 약사의 조제료에 많은 비용이 들어갔다. 재정파탄 이후 인상된 의사의 수가는 2001년, 17%까지 다시 인하되어 거의 분업 전 수준까지 돌아가는 고통분담을 겪었고, 처방료와 진찰료도 통합되었다. 그러나 약사의 조제료는 아직도 혈압약 30알 주는 데에는 8450원의 조제료를, 60알을 건네주는 데에는 1만5110 원의 조제료를 지불하는 등 불합리한 비용이 부담되고 있다.

나는 이러한 원인에 대한 것은 대부분의 언론과 학계에서도 공감하고 있는 내용인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의료전문 기자로서 충분히 알고 있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의사의 수가에만 의보재정 파탄의 초점을 맞춘 것에 대하여 독자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13. 의사들의 파업에 관하여

미래의 건강한 의료사회를 위하여 일시적으로나마 국민을 불편하게 할 수 밖에 없었던 2000년 의료파업이 있었다. 의사들은 응급의료와 분만실의 문은 모두 열어놓았었으며, 현재 의료계의 극한상황을 덮어두려고만 하는 정부의 힘 앞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의사 표출의 마지막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을 떠나서 나는 개인적으로 나의 진료실 앞에서 되돌아갔을 환자들에게 사과드린다. 그러나 나는 그 기간 동안 국민과 의사들 모두 한국의 의료계에 대한 깊은 반성과 성찰을 하는 기회였으며, 정부로 하여금 의사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내가 아는 한 어떤 의사도 안종주씨가 쓴 대로 '국민이 더 죽어봐야 한다...'라는 식의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의사들이 만일 투쟁에 들어간다면, 그 목적은 항상 국민의 건강을 지키고 올바른 진료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함일 뿐이다.

나는 두 달 전부터 의약분업철폐 서명운동을 내 진료실에서 하고 있다. 대부분의 환자분들이 이에 공감하고 있으며 전국적으로 백만 명 넘는 환자분들이 이에 서명을 했다. 국민들이 의사를 적이나 범법자로 인식하고 있다면 이러한 서명운동에 동참하지 않으실 것이다. 나는 대한민국 국민의 높은 의식수준을 인정한다. 이제 모두 인정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바가 국민이 원하는 바와 같다는 것을.

수액주사를 맞던 환자분은 많이 호전되어서 늦게까지 남아서 치료해드린 내게 기분좋은 인사를 하시고 집에 가셨다. 이제 나도 이 글을 마치려 한다. 안종주 기자는 '몸이 아파도 병원 문턱을 넘지 않을 각오로 책을 썼으며 싸우는 의사가 아닌 치유하는 의사가 되길 바란다'라는 말을 했다.

나는 이미 치유하는 의사였고, 앞으로도 혼신의 힘을 다하여 환자를 치유하는 의사일 것이다. 그와 동시에 나는, 그리고 우리들은 올바로 환자를 치유하기 위한 의료환경을 만들어나가는 데에 최선을 다하는 의사이기도 할 것이다. 이러한 올바른 의료환경을 만들어나가는 데에는 국민의 목소리가 항상 함께 있게 될 것임을 믿는다.

병원을 안갈 각오를 하고 있다는 안종주 기자도 언젠가는 질병으로 나의 병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최선을 다하여 그를 진료할 것이다. 그가 의사를 비난했어도, 나는 그의 의사이고 그는 나의 환자이므로.



김금미(38)
이화여대 의과대학 졸업
이화여대병원 내과전문의 수료
고양시 의사회 정보이사
현재 일산에서 내과 개원의로 일함



한국 의사들이 사는 법

안종주 지음, 한울(한울아카데미)(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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