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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일보 4월 29일자 사설.


전국 초등학교 조회시간. 친구가 상을 받으면 어김없이 아이들은 운동장이 떠나가라 뜨거운 박수를 쳐준다. 전국 학교의 교무회의 시간. 교육감이나 교육부장관 표창이 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동료교사들이 교무실이 울릴 정도로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상을 받지 않은 아이들과 교사, 어느 누구도 상을 안 받았으니 '나는 못난 아이냐' 또는 '나는 나쁜 교사냐'고 따지지 않는다. 최소한 생각이 정상이고 상식을 지닌 사람이라면 주변 사람이 상을 받거나 인정을 받으면 박수를 치는 시늉이라도 낸다.

상 받은 사람한테 날아온 몽둥이

전교조 해직교사들의 민주화운동 인정 이틀 뒤인 29일. 조선·중앙·동아일보를 펼쳐보면 박수는커녕 질투와 몽둥이가 어지럽게 뒹군다. 29일 이 세 신문은 이 문제를 갖고 사설 한 켠을 장식했다.

이들의 반대 논리는 크게 네 가지로 정리된다.
(1) 민주화 운동 인정하면 나머지 교사는 민주화 반대세력이냐(조선·동아) (2) 권익을 위한 노동운동 단체는 민주화운동 단체가 아니다.(동아) (3) 당시 법을 위반한 행위는 민주 법질서를 어지럽힌 것이다.(조선·중앙) (4) '찜찜한 표차로 굳이 결판'지은 표결.(조선·동아·중앙)

나는 이 논리 가운데 (3)번 항목을 빼곤 '아주 어처구니없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말꼬리 잡는 것처럼 보일까봐 되도록 사설 내용을 먼저 자세히 보인 다음 생각을 적어 보겠다.

▲ 지난 해 10월 27일 교사결의대회를 마친 전교조 소속 교사들이 시민들과 만나기 위해 대회장을 나서고 있다. ⓒ 윤근혁


(1) 민주화 운동 인정하면 나머지 교사는 민주화 반대세력이냐

"지금 학교에서는 전교조 운동으로 해직됐다가 복직한 교사들과, 그들의 노선에 반대하거나 방법론에 회의를 가지고서 한발 물러나 있던 다수의 교장·교감·교사들이 섞여 있다. 따라서 어느 한쪽을 민주화 운동 관련자로 인정한다는 것은 곧 법의 테두리 안에 머물러 있던 다른 한쪽을 '민주화의 반대쪽에 선 집단'으로 규정짓는 '갈등의 소지'가 매우 크다."(조선 사설)

"전통적 교육관을 신봉해 교사를 노동자로 규정하는 노동조합운동에 참여하지 않았던 대부분 교사들의 자긍심에 손상을 주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동아 사설)


'민주화 운동 인정'도 일종의 명예 표창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앞에서 썼듯 상을 받지 못한 초등학생도 '내가 못난 아이냐'고 항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박수를 친다. 전교조 해직교사 민주화 인정을 보고 '나머지 교사는 민주화의 반대쪽에 선 집단'이냐고 항변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나는 3·1절에 독립운동 유공훈장을 받는 사람 옆에서 '그럼 나머지는 친일파란 얘기냐'하고 따지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독립운동 유공훈장을 받는 이는 보통 사람보다는 좀더 독립을 위해 희생했기에 당연히 받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를 따진다면 얼마나 유치한 행동인가.

그런데 조선은 사설 앞부분의 많은 지면을 이 문제에 할애하고 있다. 전교조 해직 교사들도 유공훈장을 받은 이들처럼 '민주화를 위해 희생을 했냐 아니냐'를 판가름하면 될 일을 갖고 말이다(반대논리 (3)번에 나와 있긴 하다).

물론 보도를 보면 일부 교원단체 대변인과 일부 교장이 '그럼 가만히 있던 우리는 반 민주화 집단이냐'는 말을 한 걸로 나와 있다. 이런 사람들이 학교에서 '칭찬의 미학'을 어떻게 가르칠지 두려울 따름이다.

(2) 권익을 위한 노동운동 단체는 민주화운동 단체가 아니다.

"전교조의 근본적인 성격은 교직자들의 권익을 지키기 위한 노동운동이며 이것을 민주화 운동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지나친 논리의 비약이다. …민주화 유공자로 인정받은 1139명 전교조 해직 교사들은 그 후 거의 모두 복직이 됐지만 아직도 복직되기 전 호봉을 인정하지 못해 연금 등에서 불이익을 받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호봉 인정 문제를 별도로 해결하는 방안을 찾아야지 교사들의 노동조합운동 자체를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하는 것은 무리라고 본다."(동아 사설)

이 문제는 동아 사설에서만 다뤘다. 하지만 전교조 해직교사 민주화 운동에 반대표를 던진 심의위원들도 같은 말을 한 것으로 들었다.

전교조의 기본 이념은 민족·민주·인간화교육이다. 이 이념 속에 어느 하나 '교직자들의 권익'이 들어 있지 않다. 아니다. 나는 이 이념을 실현하는 것이 교직자 최고의 권익이라고 생각하는 수많은 전교조 교사들을 보아왔다.

내가 만난 해직 교사들은 이 이념을 실정법에서 보장한 장치(단체교섭)로 만들기 위해 '노동조합을 만들게 되었다'고 말했다. 모든 노동운동이 다 민주화운동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노동운동일 뿐'이라는 동아일보 말은 '지나친 논리의 비약이다'. 민주화 운동 차원으로 노동운동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동아일보가 좋아할 만한 예를 하나들면 폴란드의 자유노조운동을 떠올릴 수 있으리라.

동아일보가 '호봉인정 문제를 별도로 해결하는 방안을 찾아야지'란 표현을 썼는데 이건 해직 교사들을 무시하는 소리로 들린다. 돈 다발로 해결될 수 없는 문제도 있는데 이게 바로 해직 교사들의 아픔이라고 본다. 학교 민주화와 참교육만이 이들의 상처를 아물게 할 수 있다. 이렇게 이익과 돈 문제로 접근하는 태도는 7·80년대 동아일보 해직 기자들도 지팡이를 들 소리라고 생각한다.

참고로 교육부와 교원노조 사이 단체교섭에서 최고의 승강이는 교사 권익문제가 아니라 바로 교육정책 문제에서 생긴다. 교육부는 교육정책은 논의사항이 아니라고 우기고, 교원노조는 학교민주화와 참교육을 위한 방안을 들이미는 형국이 몇 년째 연출되고 있다.

혹시 교육부가 이 교육정책을 전교조와 교섭한다면 지난해 12월 동아일보의 사설 제목인 '교육부는 전교조의 하수인인가'가 다시 등장할 것이 뻔한 일 아닌가.

(3) 당시 법을 위반한 행위는 민주 법질서를 어지럽힌 것이다.(조선·중앙)

"'교육현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든 전교조를 민주화운동 세력이라고 하는 것은 국민을 우습게 보는 처사(사학법인연합회)'라고 비난하는 층도 있다."(조선 사설)

"교육현장을 벗어나 거리투쟁에 나서고, 당시 법으로 금지된 교원노조 설립과 노동3권 쟁취운동을 벌인 것이 과연 국민 정서에 맞으며 민주적 법질서에 합치되는가."(중앙 사설)

이 문제가 바로 민주화운동심의위원회에서 민주화 운동 인정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가르는 핵심 쟁점이었을 것이다. 당시 전교조의 운동이 민주화에 기여했냐, 아니냐를 따져보는 일은 의미가 있다.

이런 점에서 이들 신문이 이 문제에 대해 반기를 드는 일 또한 이해가 간다. 이 문제에서 대표 보수 신문인 조선·중앙이 '그렇지 않다'고 걸고 들어오는 행동은 일관성 있는 태도라는 것이다.

조선은 말을 따오긴 했지만 '교육현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든 전교조를 민주화운동 세력이라고 보면 안 된다'는 주장을 하는 듯하고, 중앙은 '전교조의 운동이 국민정서와 민주 법질서를 합치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 같다.

89년 전교조 결성 당시 한두 신문을 빼곤 모두 위의 말보다 심한 보도를 일삼았다. 더구나 조선과 월간 조선은 의식화 교사 문제를 정면으로 거론한 데다, 같은 해 5월 28일 쯤엔 전교조 결성 소식과 맞붙여 인공기 사진(평양학생축전 대학생 준비사진) 등을 이틀 연속으로 배치하여 편집하기까지 했다.

결국 이 문제에 대해 민주화운동심의위원회 위원들은 '민주화운동'에 손을 든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나는 지금 심의위원들의 결정에 박수를 치고 있다. 사설에서도 적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전교조 교사들이 1980년대 권위적이고 비민주적인 교단에 맞서 참교육을 주장, 교육계에 새바람을 일으킨 공로는 인정할 만하다."(중앙 사설)
"전교조 해직 교사들이 권위주의 시대에 교육 개혁에 힘쓰고 사학재단과 용기있게 싸운 노력 등은 인정돼야 한다."(동아 사설)

다만, 앞의 칭찬과는 달리 '민주법질서를 어지럽힌다'는 이들 신문의 주장을 그대로 따르자면 4·19혁명이나 광주민주화운동이란 이름도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말을 덧붙이고 싶다. 아마 민주화운동심의위원회 존립 근거 자체가 필요 없게 될지도 모른다.

탈세 등 경제사범은 시대변화에 아랑곳없이 법의 잣대가 분명할 듯하다. 하지만 정의적 요소의 법은 어느 시대나 똑같은 잣대를 들이댈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실정법이 인권과 민주 등 인류의 가치를 위반하면 법의 실효가 무의미한 것'이란 주장에도 귀기울일 만하다.

(4) '찜찜한 표차로 굳이 결판'지은 표결.(조선·동아·중앙)

"이런 예민한 문제를 불과 9명의 심의위원들이, 그것도 찬성 5·반대 3·기권 1이라는 찜찜한 표차로 굳이 결판지어야 할 화급한 이유가 무엇인지도 분명하지 않다. …이(동의대 관련자 민주화 운동 인정)조차 찬성 5·반대 3·기권 1의 똑같은 비율로 결정이 난 것은 단순한 우연의 일치인지, 아니면 위원회의 어떤 정치적 지형으로 짜여 있는 것인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조선 사설)

"민주화운동심의위원회가 사회 각계의 의견을 충분히 경청하지 않고 성급한 결정을 내린 느낌을 준다."(동아 사설)

"위원회 논의과정에서 찬반 의견이 대립해 3명이 사퇴하고 표결까지 가는 등 진통을 겪었다고 한다. 민주화운동에 대한 가치판단이란 주관적일 수 있고 정권과의 이해관계도 예상된다. 따라서 이런 평가작업은 총리실 직속기관보다 국회를 통해 충분한 의견 수렴을 거쳐 시간을 두고 정리할 사안이라고 본다."(중앙 사설)


이 문제는 길게 말하고 싶지 않다. 그 까닭은 다음과 같다.

우선, 자기가 반대하던 법률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었는데 의원이 많았느니 적었느니 투덜대는 모습과 다를 바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 나는 심의위원회가 어떤 의결방법을 취해야 합법적인지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조·중·동의 사설만 보면 표결행위가 마치 문제가 있는 것처럼 생각하게 되기 십상이다. 혹시 이번처럼 표결을 하면 안 되는 것일까. 하지만 이 의결행위가 내규에 따른 합법적인 일이었다면 이는 '딴지 걸기' 이상의 의미가 없다.

덧붙이는 글 | *과거 전교조와 현재 전교조를 보는 국민의 시각이 일부 바뀐 게 사실이다. 이렇게 된 데는 합법화 이후 기대에 못 미친 학교민주화와 참교육 교사상에 기인한 바가 크다. 사실 합법 전교조는 일부 언론 보도와 달리, 학교민주화와 참교육 실현을 위한 방안을 끊임없이 연구해왔다. 이제 교육민주화 인정을 발판 삼아 좋은 학교, 올바른 교사를 만들기 위한 섬세한 계획이 발표돼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전교조로선 지게에 무거운 짐을 하나 더 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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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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