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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김종철 공희정 임경환 기자
사진-권우성 이종호 기자


▲ 세종로 차도를 점거한 시위대가 LPG 가스통에 불을 붙이자, 20여 미터이상 화염이 치솟아 올랐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제5신: 15일 오후5시> 회원들 200여명, 광화문 지하차도까지 거리행진 후 자진해산

북파공작특수임무동지회 전국연합 소속 회원 200여명은 오후 4시 40분 서울 종로구 광화문 지하차도까지 평화적 거리행진을 벌이고 자진 해산했다.

이동안 회장은 "북한까지 가서 죽지 않고 살아온 목숨이며 조국을 위해 끝까지 바치겠다"면서 "우리의 정당한 요구가 받아들여질 때까지 끝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파공작원들의 격렬한 시위- 공희정 기자


이 회장은 이어 "정부는 하루빨리 북파 공작원의 실체를 인정해야 한다"면서 "동지회 소속 모든 회원들이 국가 유공자로 등록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주장했다.

회원들은 마지막으로 애국가와 만세 삼창을 외치며 집회에 사용했던 깃발과 머리띠 등을 수거했으며 각 지역별로 흩어졌다.

한편 거리 행진 주변에는 10여개 중대 500여명의 전경들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으며 충돌은 없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H.I.D의 실체는?

북파공작원 동지회 소속 회원들이 '인간적인 삶을 살지 못했다'고 주장하는 H.I.D라는 곳의 실체는 무엇일까.

지난 1950년대 후반 군 첩보부대 일종으로 만들어진 H.I.D(Head quarter of Intelligence Detachment)는 실체는 있지만 정부도 인정할 수 없는, 남북 분단 상황이 가져온 '사생아'인 셈이다.

우선, H.I.D에 복무한 회원들의 경우 보통 군 정보사로부터 포섭돼 들어간 경우가 많았으며 최근 90년대 들어서는 '군 특수부대 모집'이라는 공개적인 방법을 통해 모으기도 한 것으로 나타났다.

강원도 속초에 위치한 이른바 '설악산 개발단'이라는 이름의 부대에는 70년대 중반이후 최근까지 해마다 보통 봄과 가을, 2차례에 걸쳐 사람들이 입소했다. 보통 한번 입대할 때마다 30~40여명이 기수 동기로 이뤄지며 매년 320명 정도가 이곳에서 훈련을 받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이들에게는 특별한 군복이나 군 계급이 주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이들은 주로 기수별 선후배로 구분된다. 제대는 인근 부대로 들어가 병장부터 중사, 상사 등으로 전역을 하고 있다.

이들 주장 가운데 심각한 문제는 과거 냉전시대에 존재했던 이같은 군 특수임무 부대가 남북정상이 만나는 등 긴장이 완화되고 있는 현재까지 존재하고 있고, 수많은 젊은이들이 여전히'인권'을 포기한 채 살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정부는 이에 대한 정확한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4신:15일 오후 4시> "우린 동료를 때려죽였다" "개발단에는 위안부도 있다"

북파공작특수임무동지회 전국연합 소속 회원들은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경찰에 둘러싸인 채 3시40분경 기자회견을 마쳤다. 이들은 4-5명이 돌아가면서 핸드마이크를 들고 기자회견을 했다.

이들이 밝힌 HID의 실상은 충격적인 것들이다.

"지옥 훈련 속에 인간 살인마 강요"

15일 도심 시위를 벌인 '북파공작특수임무동지회 전국연합회'소속 회원들은 '자신들은 죄수나 짐승보다도 못한 인권 유린실태'를 고발했다.

국군정보사(이하 정보사)가 포섭과정에서 이들에게 내건 조건(상당한 금전 보상과 직장 제공)은 달콤했다. 그러나 대북 특수공작을 위해 '살인기계'로 개조된 이들은 24시간 365일 쉴 새 없이 진행되는 가혹한 훈련을 버텨내지 못하고 자살하는 동지들을 목도해야 했다. 국군정보사는 죽은 이들을 겁장이나 배신자로 매도했다.

생존 공작원들은 "정보사는 나아가 간혹 탈영하다 잡힌 사람들을 배신자 처리의 본보기로 발가벗긴 채 족쇄와 올가미를 씌워 끌고 다니며 동료들로 하여금 소꼬리 채찍이나 싸리나무, 몽둥이로 때려죽이게 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입사에서 퇴사까지 단 한번의 외출, 외박, 면회, 휴가가 없었던 24시간 완벽한 통제 속의 생활을 떠올리며 성적인 욕구도 "가끔 산속 창고에서 위안부와 관계를 맺는 것으로 해결해야 했다"고 토로하고 있다. 이용가치가 떨어지자 이들은 몇 푼 안되는 돈과 함께 사회로 내던져졌다. 그러나 보안이라는 족쇄는 사회에서까지 이들의 행보를 옥죄었고, 이들은 목숨의 위협을 받기까지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지난 5일 정보사에 대통령 면담신청서를 제출했지만, 12일 자정까지 아무런 회신도 받지 못해 면담 신청서가 대통령에게 제대로 보고됐는지 의심스럽다. 아무래도 청와대에 직접 가서 대통령과 면담을 가져야겠다"며 북파공작원들의 인권유린 실태 파악 공동조사위원회의 구성과 인권유린 책임자 규명, 처벌을 요구했다.
김아무개(40) 씨 82년 10월에 설악산에 있는 개발단에 들어갔다. 당시에 40여명의 동기가 있었는 데 이중 복아무개라는 동기가 탈영을 했다가 잡혀온 적이 있었다. 부대에서는 복 씨를 감금한 채 온갖 고문을 자행했다. 나중에는 '배신자'라는 간판을 목에 걸고 동기들로 하여금 3시간 동안 끌고 다니면서 때려죽이게 했다. 나는 동기를 때려죽였다는 죄책감에서 아직도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동기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맞아죽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정아무개(43) 씨 "83년도 12월에 개발단에 들어갔다. 우리에게 거부는 곧 죽음이었다. 24시간 통제 속에 살아왔으며, 부모가 죽어도 알 수 없었다. 정부가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다. 인권대통령이라고 하지만 북파공작원의 인권은 없다. 정부는 개처럼 부려먹다가 사회에 내팽개쳤다. 우리가 얼마나 한이 맺혔으면 이렇게 했겠느냐. 우린 죄인이 아니다. 선량한 백성일 뿐이다."

차 아무개(50) 씨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의 운동선수에 지원했는데 실수로 싸움을 벌이다가 경찰에 끌려갔다. 그 때 경찰은 나에게 '형무소 갈 것인가, 군인으로 갈 것인가'라고 물어와 군인으로 간다고 했다. 나는 아직도 국가정보원 소속 국군 정보사령부의 상사로 돼있다. 하지만 정부는 우리의 요구를 아무 것도 받아주지 않았다. 속초 개발단 안에는 위안부도 있다."

김 아무개(28) 씨 "94년 '설악산 개발단'에 1차로 들어갔다. 96년 8월에 제대했는데 거기의 상황은 삼청교육대 보다 훨씬 힘들고 상상을 초월하는 생활이었다. 개발단에 들어가서 탈영을 한 적이 있는 데 잡혀온 뒤 반성실에서 6주동안 하루 한끼 주먹밥을 먹으면서 맞고 살았다. 그들은 또 나가 '배신자'라면서 개처럼 끌고다녔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마친 뒤 해산집회를 열고 쇠파이프를 수거해 경찰에 넘겨줬다. 이어 이들은 세종로 조선일보사 앞까지 거리행진을 벌이려고 하고 있으나 이를 막는 경찰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한편 이날 집회 초반에 가슴과 왼쪽팔을 칼로 자해했던 임대열(90년 2차년도 입대) 씨와 경찰과 충돌 과정에서 부상당한 회원 등 모두 3명명은 적십자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 경찰이 진압을 시도하자 북파공작원 동지회 회원들은 불붙은 가스통을 휘두르며 강하게 저항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 LPG가스통에 불을 붙이는 위험한 상황이 정부종합청사와 주한미대사관에서 불과 50여미터 떨어진 곳에서 연출됐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3신:15일 오후 3시 10분> "지금도 국정원 산하에 '우리같은' 사람 있다"

"HID 부대서 '위안부' 운용"

HID 북파공작 대한민국 첩보대 연합회 소속 회원들은 "지금도 부대 안에서 위안부를 두고 있다"고 폭로했다.

82년 10월부터 85년 4월까지 30개월간 군복무를 했다는 김 아무개씨는 "우리들은 준 전시상황 속에서 활동을 했고, 반강제적으로 성 관계를 가졌다"면서 "이는 과거 일제가 운영했던 위안부와 다를 것이 뭐냐"고 주장했다.

김 씨는 "우리를 관리하던 안기부 사람들이 일명 '속초 3번지' 골목 윤락가에서 3개월에 한번씩 8-9명의 윤락녀들을 들여보내 부대원 전원(150여명)을 한번에 상대하게 했다"면서 "하기 싫어도 (성관계를)해야 했으며, 만약 관계를 거부하면 상관들이 수갑을 뒤로 채운 채 각목으로 죽지 않을 만큼 때렸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우리 부대원들 가운데 대부분이 임질이나 세면발이 등 성병에 걸리지 않았던 친구들이 없었다"며 "우리가 바로 인권 유린의 대상"이었다고 말했다.
북파공작특수임무동지회 전국연합의 도심 격렬시위는 잠시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한때 도로를 점거하기도 했던 이들은 현재 경찰에 둘러싸인 채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집회를 계속하고 있다.

이들에 따르면 연합회 소속 회원들은 전국적으로 1200여명 정도 있는 것으로 밝혔다.

지난 73년부터 80년까지 HID에서 근무했다는 김아무개(50) 씨는 "북파공작원들에 대해서 정부는 온갖 거짓말만 해왔다. 정부는 북파 공작원들에게 가정의 생활비를 지원하고, 임무가 완수된 뒤에는 정착금을 보장하기로 했다"면서 "하지만 하나도 지켜지지 않았고, 정부는 하루빨리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현재도 국가정보원 아래 정보사 산하에 아직까지도 이런 요원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 물대포가 불붙은 가스통을 향해 물을 내뿜고 있다. 청와대 본관의 푸른색 지붕이 물대포 뒤로 보인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 오마이뉴스 이종호




<2신:3월15일 오후 2시40분> 진압 시도하자 가스통 불붙여

오후 2시 30분경부터 시위대가 세종문화회관 앞 도로를 점거했다. 이들은 들고 있던 3-4개의 이동식 가스통에 이미 불을 붙인 채 무력시위를 벌이고 있다. 세종문화회관 앞은 흡사 전쟁터를 방불케하고 있다.

40분경 경찰이 이들을 급습해 진압하려 했지만 시위대가 5-6개의 가스통에 일제히 불을 붙이는 바람에 다시 물러났다. 현재 소방차가 불이 붙은 가스통에 물을 뿌리면서 진화하고 있다.

이들 시위대 200여명의 손에는 쇠파이프가 쥐어져 있다. 경찰은 정부종합청사 앞과 시위대의 뒷편에서 이들을 에워싸고 있다.

이들은 또 돼지 2마리를 끌고 나왔다. 한 관계자는 "우리는 점심식사를 하지 못했다"면서 "즉석에서 잡아 요기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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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말할 수 있다> 조국은 '북파공작원'을 버렸다

▲ 명예회복과 보상을 요구하며 집회를 열던 북파요원 동지회 회원들은 광화문 사거리에서 LPG가스통에 불을 붙이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 오마이뉴스 이종호

<1신:3월15일 오후 2시20분>"우리의 한맺힌 인생을 보상하라"
북파요원들 서울 도심 격렬시위


북파공작특수임무동지회 전국연합소속 200여명의 회원들이 15일 오후 2시부터 세종문화회관 앞 인도에서 LPG가스통 20여개를 일렬로 세워놓고 공작원들의 인권유린 실태 조사와 책임자 처벌 등을 주장하며 격렬 시위를 벌이고 있다.

집회장에 배치된 LPG가스통에는 화염방사기 장치가 설치돼있으며, 100여명의 손에는 쇠파이프가 쥐어져 있다. 이들은 HID부대마크에 '잔인한 응징과 무자비한 훈련'이라는 글씨가 새겨져있는 티셔츠를 입고 있다.

이들은 현재 정부의 북파공작원 실체 인정과 명예회복 보상을 외치면서 김대중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이 내건 플래카드에는 '기만술의 귀재 국정사를 응징하자' '김대중 대통령은 북파 공작원의 현실을 직시하라' '국방부 장관 정보 사령관은 북파 공작원의 한맺힌 인생을 보상하라'라는 글귀가 적혀있다.

▲ 연설도중 식칼로 오른쪽 가슴부분을 자해한 북파공작원동지회 회원. ⓒ 오마이뉴스 권우성

ⓒ 오마이뉴스 권우성

▲ 피켓에 '우리는 조국을 지킨 인간폭탄이었다' '김정일아 어서와라 황천길로 보내주마'라는 글이 적혀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연단에 오른 한 인사는 연설 도중 웃통을 벗고 식칼로 오른쪽 가슴을 그어 곧바로 병원으로 실려갔다.

이들은 'HID북파공작특수임무설악동지회' 명의로 배포된 전단에서 "우리의 생활 신조로서 무자비하고 잔인하고 악랄해지는 것이 국가에 충성하는 길이라고 세뇌받았다"면서 "우리는 목숨으로 보국했지만 조국은 우리를 버렸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인간백정이 되어야만 가능했던 임무수행과정에서 처절하게 파괴된 인성으로 아직도 사회적응을 못하여 갈등하고 있다"면서 ▲인권대통령과의 면담 ▲인권유린 실태파악 공동조사위 구성 ▲인권유린 책임자 규명 및 처벌 등을 요구했다.

한편 경찰은 이들이 청와대쪽으로 향하는 길을 막기 위해 정부종합청사쪽에 병력을 배치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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