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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한 통의 이메일을 받았다. 외국에 거주하는 어느 독자가 중국에 거주하는 내게 보낸 영문편지였는데, 요지는 내가 글을 쓰고 있는 신문사의 인터넷 사이트가 최근 접속이 안 된다며 어찌된 일인지를 묻는 내용이었다. 기분좋았던 것은 내가 연재하고 있는 글을 애독하는 독자라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일주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의 그 애독자에게 답신을 보내지 못하고 있다. 왜냐고? 영어를 못하기 때문이다. 처음에 그 편지를 읽자마자 바로 '답장'을 누르고 자판을 바라보았다. 술술 나올 것 같던 영어문장이 단 한마디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도 딱 한 줄은 썼다. 'Thank you for your e-mail'이라고.

그러나 그 다음에 써야 할 내용들은 한 15분 가량 머리 속에서 뒤죽박죽이 되더니 결국 참담한 심정이 되어 손에 경련을 일으키며 '취소'버튼을 눌러야 했다. 써야 할 내용들이 영어와, 중국어, 한국어로 짬뽕이 되어 떠오르면서(사실 영어문장은 거의 생각나지 않았다) 언어를 관장하는 뇌에 갑작스러운 혼란을 일으키다 보니 나중에는 머리까지 아팠다.

그리고 오랫동안 나는 깊은 좌절감을 느꼈다. 도대체 내가 왜 한 통의 간단한 영문편지도 쓰질 못하는 것인지에 대해 그날밤 나는 무척이나 많이(?) 괴로워했던 것 같다. 중고등학교 6년에 대학 4년, 거기다 대학원 2년까지 마친, 가방끈 길이와 쏟아부은 등록금의 액수로만 따져도 나의 이 비참한 영어수준은 누구 말마따나 '접시물에 코박고 죽어야'하리라.

무릇 사람이란 궁지에 몰릴수록 더욱 더 자기합리화를 꾀하는지라, 한동안 자괴감에 젖어 있다가 어느새 나는 나를 위한 변명의 탈출구를 모색하고 있었다. 곰곰이, 내가 진지하게 영어를 공부한 횟수와 어떻게 공부했나를 더듬어본다. 생각해보니 아주 그럴 듯하고 정당한 변명이 나왔다. 결론은 '나는 영어를 공부한 적이 없다'였다.

진지하게 공부를 한 적이 없으니 내가 영어를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기분좋게 나를 용서(?)해 주기로 했다. 여기서 한발짝 더 나아가, 지금은 내가 영어를 필요로 하지 않으니 잠시 영어를 '버린 셈'치자고 위안까지 하고 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나는 그 슬픈 이메일의 아픔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할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중국인도 영어가 '괴롭다'

지난 토요일, 베이징대 부근에 있는 도서청(圖書城)에서 새로 나온 신간들과 할인하는 헌책들을 한 보따리 사들고 나오는 길에 집으로 가는 버스정류장까지 택시를 탔다. 행선지를 말하자 기사아저씨는 대답없이 고개만 끄덕이고 바로 출발한다. 출발 직후 아저씨는 카세트 테이프 플레이 버튼을 누르더니 다시 말없이 그 소리에만 열중하며 운전을 한다. 카세트 테이프에서 흘러나오는 '잡음'은 바로 영어다. 들어보니 기초 영어회화 내용인 듯했다.

2008년 올림픽 유치 확정 이후 베이징 택시기사들 사이에 영어회화 배우기 열풍이 분다더니 아니나 다를까 틀림없는 사실인 것 같았다. 사실 영어회와 테이프를 듣는 베이징 택시기사들을 본 건 그날이 처음은 아니다.

요즘 누구든지 베이징 거리에서 택시를 타게 되면 거의 반수 이상의 기사들이 영어회화 테이프를 듣고 있는 걸 목격할 수 있다. 비단 택시기사들뿐만 아니라 백화점 팬매원이나 관공서 직원들까지 영어회화에 열을 올리고 있어 베이징에는 바야흐로 본격적인 영어공부 열풍이 불기 시작한 것 같다.

외국인들 입장에서는 베이징인들이 영어공부에 박차를 가하는 모습이 그리 이상할 게 없는 자연스러운 올림픽 준비 과정처럼 느껴지겠지만, 정작 영어회화를 공부해야만 하는 그들에게는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영어회화 열풍은 시 정부에 의한 반강제적인 면도 있기 때문이다.

베이징시는 현재 베이징에서 정식 직업을 가지고 있는 60만 명의 주민들을 대상으로 기본적인 영어회화과정을 이수해야만 하는 새로운 규정들을 만들었는데, 이 60만 명 중에는 택시기사와 각종 판매원, 정부관료들도 포함되어 있다. 이들 중 이러한 시의 영어회화 학습과정에 가장 크게 '고뇌'를 하고 있는 부류들은 바로 택시기사들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이 외국인들과 가장 직접적이면서도 베이징을 들어서는 외국인들과 처음 대면할 가능성이 가장 많은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시정부에서는 이들에게 '강제적인' 영어화화 학습을 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택시기사들은 시가 지정한 일정한 기간 내에 기본적으로 터득해야 할 영어회화 시험을 봐야만 하고, 만일 이 시험에서 정부가 요구하는 최저 수준에 다다르지 못했을 경우에는 그만 밥줄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고 한다. 이로 인해 최근 베이징의 택시기사들은 그야말로 '죽지 못해' 영어회화 테이프를 줄기차게 듣고 있고, 학습능력이 없는 일부 택시기사들은 심각하게 이직을 고려하고 있다는 뉴스도 나온다.

베이징의 택시기사들이 이러할진대 대학생들이나 외자기업의 직장인들, 공무원들은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특히 젊은 학생들이나 직장인들의 영어열풍은 우리나라의 그것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

이들은 거의 영어에 미치다시피 하면서 영어와의 열애를 하고 있다. 이들에게 영어는 미국인의 언어가 아니라 세계시민이 갖춰야 할 당연한 준비물이기 때문이다. 영어를 잘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월급과 연봉액수가 달라지는 판인데 한번쯤 영어에 미쳐서 공부한다고 한들 손해볼 게 있겠는가?

영어가 운명을 바꾼 중국인들

영어가 중국인들 사이에 21세기에 갖춰야할 필수 지식 중의 하나가 되면서부터 중국에서 영어실력은 곧 자신의 몸값과 동격인 가치를 가지고 있다. 결코 과장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영어를 번드르르하게 잘한다고 하면 일단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최근 중국에서는 유학파들이 서서히 귀국을 하면서 이들 입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유창한 영어가 사회적 열등감을 유발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기도 하다. 성공한 유학파 창업자 중의 한명인 쏘후닷컴(sohu.com.cn)의 총재 장차오양의 일상생할을 그린 TV다큐멘터리를 보면, 일반인들이 느낄 열등감의 무게는 훨씬 더할 것이다.

미국식 스타일에 다소 경도된 듯한 그의 자유분방한 사고방식과 생활패턴, 그리고 외국인들이 주로 모이는 싼리툰 주점가에서 유창한 영어로 '양코쟁이들'과 얘기를 하는 그의 모습은 중국 젊은이들에게는 바로 미래의 '나'다.

물론 장챠오양은 영어뿐만 아니라 탁월한 사업감각과 경영능력으로 성공을 한 사람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가 유학을 가지 않았던들, 그리고 그렇게 영어를 잘하지 못했던들 오늘날의 장챠오양이 되어 있기는 힘들었을 게 분명하다.

중국에도 우리나라처럼 영어가 운명을 바꾼 사람들의 일화들이 꽤 있다. 이 중에서도 신동팡(新東方)학원의 창업자 이야기는 이미 중국에서는 전설로 자리잡고 있다. 그는 물론 지금도 살아 있는 사람이다. 아마도 매일 어마어마한 '현금'을 긁어모으고 있는 중일 것이다.

신동팡학원은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전통을 가진 영어학원이다. 중국의 어느 유명 대학보다도 더 높은 명성과 실력을 자랑하고 있다. 마치 우리나라의 모 영어학원과 동급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영어권으로 유학을 가려고 하는 중국인들의 90%는 반드시 이 신동팡학원에서 혹독한 수업을 거친 다음에야 유학시험의 관문을 통과한다. 유학준비생들이 보는 '성경'은 이 학원에서 편집출판한 '홍빠오'(紅寶)라는 책이다. TOEFL이나 GRE의 기출문제들과 기출 단어들이 모두 이 홍빠오 안에 담겨 있다고 한다. 홍빠오 한 권과 신동팡학원의 다년간의 경험들을 머리 속에 주입만 하면 미국이든 영국이든 유학은 '따논 당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이 학원 창립자는 과거에 서너 번의 유학영어 시험에서 낙방을 한 소위 '영어에 한이 맺힌' 사람이다. 베이징대 출신인 그는 80년대 초반 미국으로 유학을 가기 위해 동료들과 더불어 죽도록 TOEFL공부에 매달렸으나 같이 공부하던 친구들이 모두 한두 번만에 통과를 하고 유학을 가는 동안 그만 매번 실패를 했다고 한다.

이를 보다 못한 그의 아내마저 "당신은 이제 글러먹었으니 정신차리고 다른 직장이나 구하라"고 구박까지 하는 통에 그의 자존심은 땅으로 떨어지고, 급기야 그는 주먹을 불끈 쥐고 "그래, 내가 유학을 못가면 다른 사람이라도 쉽게 가게 만들자"라는 결심을 하고 그 당시 중국에서는 최초로 영어학원이라는 것을 차리게 되었다는 일화다.

그가 지금은 영어를 얼마나 잘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남 유학보내고 돈버는데 바빠서 나처럼 영어를 '버리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어쨌든 그는 영어로 운명을 바꾼 사람이니 평생 영어에 감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또 한 명. 최근 중국언론의 초점인물이 되고 있는 리시앙(李響)이라는 여기자도 어떻게 보면 영어덕에 성공을 한 경우이다. 거기다 미모까지 겸비했다. 그녀는 중국의 축구전문 기자인데, 이번 월드컵 예선 10강전과 관련된 그녀의 원고료는 무려 3OO만 위안(1위안은 한화 약 160원)에 달했다는 보도들도 나오고 있을 정도로 중국 언론계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천문학적인 대우를 받고 있는 여기자다.

그녀의 원고료가 이렇게 고액인 까닭은, 사실 다른 기자들에 비해 원고를 탁월하게 잘쓴다기보다는 중국 남자대표 축구팀의 감독이자 44년만에 월드컵 본선진출의 신화를 만들어낸 유고출신의 밀로세비치 감독과 '제로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막역한 사이이기 때문이다. 즉 중국축구에 관한 모든 중요한 소스를 장악하고 있는 유일한 기자인 셈이다.

그녀는 최근 자신의 성공스토리라고 할수 있는 '제로거리-리시앙과 밀로세비치와의 영혼의 대화'(零距離-李響與米盧的心靈對話) 라는 책을 출판했는데, 그 시기도 아주 절묘하게 중국이 월드컵 본선진출에 성공한 직후이다.

그녀의 '벼락성공'에 대해 중국언론에서는 말들이 많다. 같은 기자 입장에서 사실 배가 아프기도 할 것이다. 축구전문 기자로 나설 때만 해도 축구의 '축'자도 몰랐던 축구문맹이었던 그녀가 오늘날 이렇게 대기자로 성공한 요인에 대해 대부분의 언론들에서는 공통적으로 두 가지를 들고 있다. 영어실력과 그로 인해 밀로세비치 감독과의 교통이 수월했다는 점이다.

당시 축구대표단 수행기자단 중에 유일하게 영어를 유창하게 할 수 있었던 기자가 바로 그녀였다는 점과 이로 인해 밀로세비치와 언어장애 없이 취재를 할 수 있었고 여기자 특유의 친화력, 그리고 축구문맹이었기에 더 용감하게 쓸 수 있었던 것이 오늘날 중국에서 '리시앙 현상'을 가능하게 했던 비결이라고 말한다.

들리는 뉴스들에 의하면 이 '리시앙 현상'으로 인해 최근 중국의 주요 언론사들에서는 영어와 미모를 갖춘 여기자들을 집중적으로 투입하고 있는 새로운 추세가 나타나고 있다고까지 한다. 어쨌든 그녀도 영어가 운명을 바꾼 중국인 중의 한 명임엔 틀림 없다.

'영어병'에 시달리는 나의 벗들이여

영어로 성공을 한 중국인들의 얘기를 늘어놓고 있자니 다시금 그 슬픈 이메일의 아픔이 되살아온다. 솔직이 그 사이에도 몇 번 답신을 보내려고 시도하다가 그것이 맞는 어법인지, 단어는 제대로 쓴 건지 골치를 썩다가 또 '때려 치웠다'.

나의 영어문제는 사실 내 인생에 있어서 큰 장애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잘하면야 좋겠지만, 아직까지는 잘하고 싶다는 욕구가 간절한 것도 아니고 필요성도 그다지 느끼지 못하고 있으니 그저 글 읽고 대강의 뜻만 이해하는 정도에 만족한다. 내가 영어로 성공할 팔자는 아니라는 걸 이미 눈치채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주변의 적지 않은 벗들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영어와의 결전을 하고 있다. 게다가 중국까지 와서도 영어로 고통받고 있다고 하면 이 얼마나 모진 영어와의 악연이란 말인가.

일주일에 한두 번씩 전화로 안부를 주고받거나 가끔씩 만나 술 한잔 기울이는 나의 베이징 후배도 그 중 한 명이다. 중국대학의 MBA과정을 준비하고 있는 그녀는 매일 영어와 중국어 공부가 피를 말리는 일상이 되고 있다. 두 개 언어를 동시에 공부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다들 알 것이다. 그러나 그녀에게 영어는 중국어보다 더한 '웬수'이다.

중국어는 중국에 와서 처음 배웠는데도 이제 그럭저럭 의사소통에 불편함이 없을 정도로 말하고 쓰고 읽을 수 있는 반면, 영어는 나처럼(?) 몇십 년씩 돈을 쏟아부으며 공부를 했는데도 중국어처럼 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전화할 때마다 우는 소리로 '영어 때문에 미치겠다'고 하소연을 한다. 더군다나 최근 중국에 영어열풍이 불면서 중국인들의 영어가 날이 갈수록 유창해지는데 대한 심리적 부담도 상당한 듯하다. 얼마전에는 농담으로 "중국 얘네들, 왜 이렇게 영어 가지고 맨날 날뛰는 거야! 나도 날뛰고 있지만 너무한 거 아냐?"라는 말을 해 한참 배꼽을 잡고 웃었다.

그 MBA과정이라는 것이 죄다 영어로 수업하고 영어로 말하고 영어로 논문을 써낸다고 하니 그녀의 그 고충도 이해가 간다. 그러나 그녀가 '우는 소리'를 한다고 해서 내가 딱히 도와줄 일은 없다. 다 그 망할 '교육탓'이라고 욕하면서 위로하는 수밖에.

영어로 속편한 건 나밖에 없는 것인지, 아니면 그녀 말을 뒤집어서 생각하면 나야말로 영어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세상물정 모르고 날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날뛴다한들 나는 속편한 쪽을 택하기로 했다. 언젠가 영어가 내 운명을 바꾸는데 필요하다는 사명감이 생기면 그때는 나도 이 중국의 영어족들처럼 '날뛰면서' 공부하지 않을까.

그래도 아직 속편하지 않은 과제가 남아있긴 하다. 어찌되었든 나의 그 애독자에게 영어로 답신을 보내줘야 할 것 같은 사명감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두렵긴 하지만 또 다시 한 문장을 추가하는 용기를 발휘해야 할 것 같다. 매일 쉬엄쉬엄 한 문장씩만 추가하면 며칠 뒤 완성된 답장을 보낼 수 있을 것도 같다.

그래서 오늘 나는 한문장을 더 추가한다. "My English Not So Good"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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