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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들의 '반란' 한완상 부총리의 이례적인 담화에도 불구하고 서울 여의도에 연가투쟁을 위해 모인 전교조 교사들. ⓒ 오마이뉴스 이종호


글 이병한/홍성식 기자
사진 이종호 기자


그 동안 교원 성과급제, 자립형 사립고, 7차 교육과정 등 교육정책 전반을 놓고 교육인적자원부와 심각한 갈등을 빚어온 전국교직원노동조합(위원장 이수호)은 10월 27일(토) 교사들이 집단적으로 연가를 신청하는 '연가투쟁'을 강행했다. 이날 연가투쟁에는 전국 15000여 명의 교사들이 참여해 일선 교사들의 교육정책에 대한 불신이 심각한 수준임을 드러냈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지난 25일 한완상 부총리의 담화를 통해 '연가투쟁 불가, 참가자 징계'의 방침을 분명히 밝힌 바 있어, 향후 정부의 대응이 주목된다.

전교조 소속 교사들은 10월 26일 밤부터 여의도 공원에 집결했다. 특히 지방지역의 교사들은 27일 새벽 1시와 2시 사이에 대부분 여의도 공원에 모여, 철야농성을 진행했다.

이날 철야농성은 근래 보기 드문 최대 규모였다. 수많은 전교조의 깃발이 여의도 공원의 밤을 덮던 날, <오마이뉴스>는 과연 교사들이 왜 모였는지 그 목소리를 듣기 위해 그 속으로 들어갔다. 다음은 10월 26일 밤부터 27일 오전까지 연가투쟁을 위한 철야농성 기록이다.


[1신 : 10월 26일 밤 11시] 전교조 깃발 여의도의 밤을 덮다

"여러분, 제주지부 동지들이 도착했습니다!"

밤 10시 45분 제주도에서 올라온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깃발이 서울 여의도 공원에 들어서자 수많은 전교조의 깃발이 박수와 함성으로 맞았다. 여의도 공원은 전교조 교사들의 열기로 그야말로 '들썩'이고 있다.

한완상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25일 오후 "집단연가 집회는 명백히 실정법에 위배되므로 법과 원칙에 따라 상응하는 조치가 있을 것"이라고 강경한 자세를 취했지만 26일 밤 11시 현재 서울 여의도 공원에는 '연가투쟁'을 위해 경찰 추산 8000여 명의 교사들이 모여들었다. 아직 서울·경기와 제주 등 일부지역의 교사들만 집결해 있는 상태라 버스를 타고 올라오고 있는 전국의 교사들이 모두 집결할 경우 1만5000명에 가까울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0월 24일 집단 연가를 통해 집회에 참여했던 전교조 소속 교사는 약 4000여 명. 1년 뒤 그 숫자는 약 세배를 넘을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의 강력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전교조 교사들이 일종의 '반란'을 하고 있는 셈이다.

"교육시장화 저지하고 공교육을 사수하자"
"교육주체 총력투쟁 신자유주의 교육정책 막아내자"
"교육환경 개선! 살맛나는 학교!"

현재 여의도 공원 곳곳에는 이런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이들은 이곳에서 밤을 샌 뒤 27일 오전 9시 '전국교육주체결의대회'를 열고 서울시내 곳곳으로 흩어져 대국민 홍보전을 하고, 오후 2시 30분 다시 여의도 공원에 모여 '교육시장화 저지와 교육재정 확보를 위한 제2차 국민대회'를 열 계획이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2신 : 10월 27일 새벽 0시] "나는 왜 연가를 냈는가"

"솔직히 아직 연가투쟁에 대해 갈팡질팡 갈등하는 면도 많아요. 저는 이전에는 소위 모범교사였어요. 아직도 집회장에서 팔이 안올라가고 아는 노래가 없어요. 하지만 현재 교육의 위기가 심각하고 이를 어떻게든 알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교육부의 정책입안에 반영시켜야 한다고 봐요."

지난 25일 서울 중앙여고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조기연(37) 씨가 기자에게 한 말이다. 집회장에서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핸드폰 저편에서 같은 노래소리가 들렸다.

"연가를 내셨습니까?"
"예."
"사유 부분에 '전교조 집회 참석'이라고도 쓰셨어요?"
"예."

ⓒ 오마이뉴스 이종호
그는 학교에서 봤던 단정한 모습 대신 잠바 차림에 핀으로 머리를 찔끈 묶은 채였다. 그는 "지금 분위기가 좋다"며 "매번 전교조 집회에는 비가 왔는데 오늘은 날씨도 도와주는 것 같다"고 웃었다. 그는 교육부가 추진하고 있는 7차 교육과정을 반대하는 이유에 대해 현실성이 전혀 없으며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신자유주적 정책이라고 말했다.

"7차 교육과정대로만 된다면 정말 꿈같은 이야기죠. 하지만 현실화 가능성이 거의 없어요. 또한 그 이면에는 소수가 다수를 이끌어가는 엘리트주의를 교육 분야에서부터 정착시키겠다는 신자유주의적 철학이 깔려 있습니다. 그 마각이 들어난 것이 자립형 사립고 정책이라고 봐요."

- 교육의 효율성도 높여야 한다는 반론도 있습니다.
"자꾸 효율성 문제를 이야기하는데 교육이야말로 가장 공적인 영역입니다. 이제는 실패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신자유주의적인 교육정책을 폈던 영국도 탄탄한 사회복지의 토대가 형성된 위에서 실시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토대가 거의 바닥인 상태입니다. 우리 사회는 기본적으로 평등한 시스템이 아니라는 거죠. 그런 상태에서 교육마저 시장논리로 간다면…."

- 그래도 어떻게 수업을 쉬면서 집회를 하느냐는 '학생 볼모론'에 대해서는요.
"남의 일이라면 충분히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겠죠. 하지만 해야 할 때는 해야 한다고 봅니다. 어떤 이벤트를 통해서라도 교육부가 대화의 반대편에 오게 해야 한다고 봐요."

교사들은 확실히 '동요'하고 있었다. 다른 한 교사는 작년에 비해 이번 연가투쟁에 일선 교사들의 참여가 높은 이유에 대해 "이전부터 꾸준히 신자유주의적인 교육정책이 추진돼왔지만 올해는 성과급 지급, 자립형 사립고 등 일선 교사들이 몸으로 직접 느낄 수 있는 정책들이 하나둘 실시되기 시작했고, 전교조에서도 적극적으로 이에 대한 반대입장을 교육했다"고 말했다. 또한 교육부의 일선 교사들의 의견을 무시한 밀어붙이기식 정책 추진도 교사들의 반발을 불러온 것으로 보인다.

전국에서 올라온 교사들은 모두 앞면에 '공교육 쟁취', 뒷면에 '평등교육쟁취, 교육재정 확충'이라고 쓰여진 노란색과 빨간색 몸 플래카드를 입고 있다. 전교조는 정부의 교육정책을 '신자유주의적인 교육 시장화 정책'으로 규정하고 1) 7차 교육과정 중단 2) 자립형 사립고 시범운영계획 철회 3) 교원 성과급과 계약제 도입 폐지 4) 졸속적 고교학급 증축과 중초 임용 방침 중단 5) 학급당 위원 감축은 체계적 교원수급 계획을 마련한 후 학교신설 방식으로 할 것 6) 사립학교법 개정 등을 주장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3신 : 10월 27일 새벽 4시] 이수호 위원장 "전교조 역사 이래 처음"

새벽 2시가 넘으면서 지방에서 올라온 교사들이 속속 도착하고 있다. 반면 서울-경기 지역에 사는 교사들은 꽤 집으로 귀가했다. 이들은 내일 오전 9시에 이곳에 다시 모일 예정이다.

새벽 4시 현재 경찰 추산 인원 약 12000명. 지방에서 올라온 교사들 덕분에 철야 집회 인원은 5시간 전보다 훨씬 늘었다. 최종 연가투쟁 참여 교사 인원은 오전 9시에 교실이 아닌 여의도 공원에 모이는 교사들의 숫자다.

시종일관 무대 바로 옆에서 집회를 지켜보고 있던 이수호 전교조 위원장은 "15000명은 될 것 같다"면서 "전교조 역사 이래 처음"이라고 말했다. 그는 "교실을 비우면서까지 올라온 데 대해 교육인적자원부는 정확히 봐야 한다"면서 "교육의 시장화 반대와 교육재정 확보가 주장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새벽 4시 여의도 공원 찰야농성장에서 가진 일문일답이다.

- 지금 느낌이 어떻습니까.
"정말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얼마나 절실했으면 이렇게 많이 모였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여기 모인 선생님들은 모두 성실하신 분들입니다. 이 분들이 교실을 비우면서까지 올라온데 대해 교육인적자원부는 정확히 봤으면 합니다. 명확히 잘못된 정책에 대해 이제는 고집을 버려야 합니다."

- 26일 협상 테이블은 어땠습니까.
"정부가 많이 진지해지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내부 조율이 안됐다면서 안을 못가지고 나왔어요. 오늘 교사들의 이 모습을 보면 달라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 25일 한완상 장관은 연가 집회는 명확히 실정법에 위배되므로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겠다고 강경한 입장을 표했는데요.
"강경이라기보다는 그 입장에서 그렇게밖에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봅니다."

- 경고 메시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뜻입니까.
"경고일 수도 있겠지만 교육부로서는 그런 말 외에는 어쩔 수 없겠죠. 하지만 이 많은 교사들을 어떻게 징계하겠습니까. 이건 막지 못합니다."

- 현재 전교조가 주장하는 것이 상당히 많은데요, 정부와 하나하나 사안의 대립보다는 근본적인 교육에 대한 철학의 대립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핵심 쟁점은 무엇입니까.
"묶어서 이야기하면 '교육의 시장화 반대, 교육재정 확보'입니다. 그것이 구체적인 정책으로 나타난 것이 7차 교육과정이나 자립형 사립고, 성과급제, 교사임용문제 등인데요. 철학 이야기를 하셨는데 근원적으로 이야기하면 국가의 투자를 줄이고 민간화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이 교육계에서 불어닥치고 있는데 이것을 저지하려는 것입니다."

- 하지만 그런 근본적인 교육정책의 전환을, 지금 정권 말기의 정부에서 실시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우리도 근본적이라기보다는 수정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현실에 맞도록 하자는, 점진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어요. 한꺼번에 다 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 현재 전교조는 단체행동권이 보장되지 않고 있는데요, 하지만 지금 이런 모임이 실질적인 단체행동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죠.
"그렇죠. 하지만 법적으로는 노동자의 권리인 연가를 신청한 것이고, 연가를 신청한 이후 무엇을 하는가는 개인의 자유입니다. 지금 모여서 집단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실질적인 단체행동을 하고 있지만, 형식적으로는 연가를 내고 왔으므로 법적으로 파업 등 단체행동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 문제는 국민의 인식입니다. 그래도 어떻게 교사가 수업을 빼먹고 이러느냐는 비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번에는 그 부분에 대해서도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왜 이럴 수밖에 없는지 홍보를 많이 했습니다. 날이 밝으면 또 대규모 선전전을 벌입니다. 일부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평등교육, 공동체 교육으로 나아가야 하고,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교육은 불평등교육이라는 것을 국민들에게 적극 알릴 것입니다."

- 과거 전교조가 이렇게 많이 모여 집회를 한 적인 언제였죠?
"전교조 역사 이래 처음입니다. 그것도 밤새워 하는 농성이고, 개개인이 연가를 내고 참여하는 것이기 때문에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4신 : 10월 27일 오전 10시 30분]
최종 연가투쟁 참가 교사 15000여명, 한 노교사의 눈물


날이 밝았다. 오전 9시 서울 여의도 광장 집결 인원은 15000여 명. 이들이 토요일 수업에 연가를 내고 이번 '연가투쟁'에 참여한 최종적인 인원이다. 전교조 이래 가장 많은 교사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 수많은 교사들 중에서 한 노 교사와 중년 교사가 만났다. 시인이자 숭문고 국어교사인 정희성 씨(57. 민족문학작가회의 부이사장, 숭문고)와 광문고 국어교사인 차주원 씨(42). 정씨는 차씨가 스승의 날마다 편지를 보내는 스승이다. 어느덧 제자는 눈가에 주름이 잡히기 시작하는 중년이 돼있었다.

"선생님, 하필이면 이런 데서 만나다니요."
"그래, 젊은 사람들이 고생이 많지."

제자는 안타까운 얼굴로 늙은 스승의 손을 잡았고 스승은 제자의 어깨를 다독였다. 둘의 얼굴에는 기쁨보다는 서글픔의 감정이 엿보였다.

오전 집회가 끝나고 서울 시내 18개 지역에서 가두 선전전을 펴기 위해 교사들이 흩어지기 시작하자 차씨는 정씨에게 깍듯이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제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스승의 눈가가 붉어졌다.

"후배교사들에겐 신중하게 행동해야 한다고 했지만... 이 방법밖에 없다면 어떡하겠어. 비록 늙었지만 젊은 사람들만 다치게 할 순 없잖아."

정씨의 목소리가 안개 낀 하늘인 양 착 가라앉았다.

인천에서 올라온 한 교사는 "땀 흘려 일하는 부모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아이들을 만들겠다는 전교조의 설립 취지가 전혀 실현되고 있지 못한 지금의 상황이 우리를 이렇게 싸울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참석한 교사는 "돈 있는 자만을 위한 교육제도를 입안하고 있는 한국의 교육관료들은 그나마 없는 교육복지마저 팔아먹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교조는 12시 30분까지 서울 시내 가두 선전전을 마치고 2시 30분 여의도공원에 재집결 2차 결의대회를 가질 예정이다. 이경희 대변인은 "오후 집회에는 사정에 의해 연가를 내지 못한 교사들까지 결합해서 더 많은 인원이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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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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