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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전, 마광수 교수가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는 책을 내서 사회적인 반향을 일으켰던 것이 아득하게 느껴진다. '야한 여자가 좋다'는 책을 냈다는 이유만으로 법정시비에 휘말리고 대학에서 쫓겨나야 했던 마광수 교수의 해프닝이 정말 존재하기는 했던 것인지조차 가물가물하다.

이제는 모든 남자들이 너도나도 '야한 여자가 좋다'며 자신의 성적 취향을 자신있게 밝히고 있으며 여자 역시 '너 야하다'는 말을 불쾌하게 생각하지 않고 칭찬으로 받아들이는 지금 이 때에 마광수 교수가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는 제목의 책을 냈다면…어땠을까? '자기만 야한 여자를 좋아하나? 뭐 저런 뻔한 소리를 하는 거지?'하는 시큰둥한 반응이 나오지 않았을까?

마광수 교수의 해프닝이 일어난 지 12년 후, 그의 사건이 이제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 되어버린 지금 한 여인이(우연치고는 기묘하게도 그녀는 마광수 교수의 제자이다) '나는 미소년이 좋다'는 제목의 책을 냈다. 여기서 미소년이라 함은 '샤워 중이거나 자고 있을 때나 혹은 아무 때나 덮치고 싶은, 즉 가지고 싶고 어루만지고 싶고 귀여워서 깨물어 주고 싶은 존재'를 말한다.

언제부터 여자가 남자를 '가지고 놀 수 있는'대상으로 보기 시작했을까? 남승희의 <나는 미소년이 좋다>는 그녀의 개인적인 성적 취향을 말해주는 책도, 미소년에 대해 찬양하는 책도 아니다. 적어도 이제는 여자가 미소년이 좋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권력을 가졌다는 것, 그리고 여자에게 사랑받을 만큼 예쁘장한 미소년이 길거리에 많이 있다는 것…, 그런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려주는 일종의 선언이다.

<나는 미소년이 좋다>를 단순히 미소년을 좋아하는 한 여자의 성적 취향에 관한 이야기라 치부하거나 혹은 미소년에 대해 그리고 미소년을 좋아하는 여자에 대해 쓴 감각적인 이야기라 생각했던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으면서 조금의 지루함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섣부른 흥미만을 가지고 달려들었다가는 '어? 이게 뭐야'하는 실망스러운 기분으로 책을 놓지 않을 수 없을 테니까.

'나는 미소년이 좋다'라는 흥미진진한 제목의 이 책은 사실 내용도 흥미진진하지만 그 흥미진진함을 느끼려면 꽤 인내심을 갖고 책을 읽어야 한다. 작가는 일반적인 사회의 시각도 아닌, 페미니즘적인 성향도 아닌, 그렇다고 페미니즘에 무작정 딴지를 거는 것도 아닌…정말로 알 수 없는 관점을 가지고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가의 말은 일단 다 일리가 있다. 무엇보다도 여성이 권력을 가져야 야한 남자가 어깨를 펼 수 있으며 그들의 야함이 일종의 아름다움으로 부각될 수 있다는 이야기는 읽으며 무릎을 칠 정도로 공감이 간다.

나 역시 미소년이 좋으며 그보다도 더 야한 남자가 좋다. 하지만 '나는 야한 남자가 좋아'라고 말을 하면 일순간에 나는 색을 밝히는 여자가 되거나, 사람의 진면목을 보지 못하고 양아치를 좋아하는 여자로 전락하게 되거나 그것도 아니면 아직 덜 커 사람을 보는 눈이 없다는 질타를 듣게 될 것이다.

왜 야한 남자를 좋아한다고 말하면 안 되는 걸까? 일차적으로 그것은 아직 우리 사회에는 야한 남자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무작정 야함을 드러내야만 먹고 살 수 있는 에로배우나 성인 스타가 아닌 다음에야 남자들은 자신의 야함을 드러내는 데에 인색하며(익숙치 않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것을 천박하다 생각하고, 남자는 육체적인 매력보다는 능력이나 심성으로 승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미소년이 좋다>를 읽으며 나는 벌써부터 누군가가 '나는 야한 남자가 좋다'고 선언할 때를 기다려 본다. 물론 그러한 일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야한 남자들이 많아져야 한다. 단순히 가만히 있어도 섹시함이 풍기는 남자 혹은 야한 농담을 즐기는 정도의 남자가 아닌 육체나 패션이나 태도를 통해서 '야함'을 풍기는 남자, 스스로를 욕망의 대상으로 인정하고 그것을 즐기는 남자 말이다.

여자에게 시선을 주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여자의 시선을 기다리고 즐기는 남자들이 대거 등장한다면, 그리고 육체적인 아름다움을 양아치적인 매력으로 치부해버리는 남자들의 시각이 달라진다면 언젠가는 남자와 여자가 공평하게 서로를 보고 즐기며 유희의 대상으로 여길 수 있는 때가 올 것이다.

남승희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고 전 한국적인 차원에서 말하기 위해서는 경제 성장과 개인주의, 물질적 풍요 속에 떠받들리며 자란 신세대가 필요했듯이 나는 야한 남자가 좋다고 온 나라를 들쑤시기 위해서는 관능적으로 해방된 남성들과 그런 남성들을 원하는 여성들이 자립할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토대가 절실하다"로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다. 물론 나 역시 동감이다. 빨리 그런 때가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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