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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1일 삼성그룹노조가 남구청으로부터 교부받은 설립 신고증 사본 ⓒ 이승욱
63년만에 설립된 삼성그룹의 '16명 노조'가 삼성그룹과 대구시의 협공을 받으면서 존립이 위협받는 위기에 처해 있다.

삼성그룹 노조가 출범한 것은 지난 8월 1일.

대구 남구청이 이날 삼성그룹 노조의 설립신고증을 교부함에 따라 삼성의 63년에 걸친 '무노조 경영'의 신화가 깨진 것이다. 지난해 퇴출된 삼성상용차에도 노조가 설립됐지만 지금은 유명무실해진 상태이기 때문에 삼성의 노조설립은 향후 삼성그룹 내에서 민주노조 설립 운동이 활발해지는 촉진제로 작용할 전망이다.

하지만 삼성의 노조 설립이라는 '역사적 사건'은 처음부터 순탄치만은 않을 것을 예고하고 있다. 벌써부터 설립증을 교부한 대구 남구청과 대구광역시가 노조설립의 적법성을 둘러싸고 팽팽한 논란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대구시는 남구청의 삼성 노조 설립 신고증을 직권으로 취소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주목된다.

대구 남구청(구청장 이재용)은 '삼성그룹노동조합'(대표 정지찬)의 노조 설립 신고증을 교부하는 과정부터 각종 우여곡절을 겪었고, 지난 3일에는 대구시가 남구청의 설립 신고증 교부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는 바람에 설립과 동시에 '간판을 내려야 하는' 첫 위기를 맞고 있다.

5개 계열사에서 '강제해고' 주장 16명 노조설립

△삼성노조 설립 과정=지난달 24일, 삼성전자, 삼성SDI 등 5개 삼성 계열사에서 '강제해고 당했다'고 주장하는 삼성상용차 전 직원 16명이 남구청에 노조설립 신고서를 제출했다.

남구청, "노조설립 신고증 교부는 적법한 절차였다" ⓒ 이승욱
현재 단위노조 설립은 노조 사무실이 소재하고 있는 관할 구청에 설립 신고서를 제출하고 신고증을 교부받는 것으로 가능하다. 노동부에서 각 광역지방자치단체에, 그리고 광역단체는 기초자치단체에 설립신고 업무를 위임해 놓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당시 노조 설립 신고서를 접수한 남구청 지역경제과는 삼성노조의 설립인가 여부에 대한 판단을 위해 논의를 거듭했고, 상급기관인 대구시에까지 질의를 했다고 한다. 대구시는 지난 4월 서울 관악구청에서 같은 건에 대해 '반려'한 점을 근거로 '설립 불가' 답변을 내렸다.

하지만 남구청은 설립 신고가 접수된 후 6일이 흐른 지난 1일 삼성노조가 신청한 설립 신고를 받아들였고, 이에 따라 설립 신고증을 교부했다. 남구청 지역경제과 한 관계자는 "노조 설립 신고서를 제출한 근로자들의 자료와 관련 법적 근거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했을 때 이상이 없었기 때문에 교부해줬을 뿐"이라고 밝혔다.

대구시, "상하관계 무시한 행정처리"
삼성, 감사원에 감사 요구 등 강경대응

△남구청, 대구시와 삼성으로부터 협공당해=하지만 이런 남구청의 입장과는 달리 대구시는 남구청의 행정처리에 대해 불만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대구시는 남구청의 노조설립 신고증 교부를 한마디로 '행정기관의 상하관계를 무시한 행정처리'라고 비난했다.

ⓒ 이승욱
대구시 실업대책반 관계자는 "만약 남구청에서 질의하지 않았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도 있었다"면서도 "남구청의 질의에 따라 관악구청에서 있었던 사례를 들어 설립 불가 입장을 보였는데도 상급기관의 의견과 배치되는 행정처리를 했는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고 발끈했다.

또 '시가 나서서 구청의 판단에 너무 신속하게 대응하는 것 아니냐'는 일부 지역에 대해 "시로서도 상급기관으로서 책임이 있기 때문에 당연한 일 처리"라고 답했다.

이와 관련 삼성전자 등 삼성그룹 차원에서도 남구청으로 지난 7일 신고증 교부 취소를 요구하는 진정서를 제출하는 등 적극적인 공세를 펴고 있다. 삼성전자는 또 최근 감사원에 감사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지난 13일 감사원은 대구시에 이 건과 관련한 감사를 위탁한 상태이다.

△갈등 양상=대구시와 삼성그룹 그리고 남구청과 노조 측으로 대별되는 양측의 입장 차이는 현행 노조설립과 관련 법률을 해석하는 차이로 볼 수 있다.

현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조에는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를 예시하고 있는데 "해고된 자가 노동위원회에 부당근로행위의 구제신청을 한 경우에는 중앙노동위원회의 재심판정이 있을 때까지는 근로자가 아닌 자로 해석하여서는 안 된다"라는 대목이 있다.

대구시와 삼성그룹 측은 "이번에 남구청에 노조설립 신고서를 제출한 16명이 이미 지난해 말 삼성계열사에 '자진'으로 사직원을 썼기 때문에 '해고된 자가 아닌 퇴직자'로 봐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삼성, "그들은 자진해서 사직원 제출한 퇴직자"
VS 노조, "계열사에서 일할 수 있다는 약속 어겼다"


삼성전자 인사담당 한 관계자는 "노조설립 과정을 지켜보면서 배신감까지 느꼈다"면서 "삼성상용차가 퇴출 되는 과정에서 희생당하는 근로자들을 위해 배려를 한다고 나름대로 애썼는데 이제 와서 해고자 운운하면서 노조를 설립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삼성측 입장=삼성그룹에서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채권단에 의해 삼성상용차의 퇴출이 결정된 후 상용차 노동자들에게 여러 차례 계열사에 대한 전출 희망자와 희망퇴직을 묻는 조사를 했다고 한다.

이에 따라 상용차 1220여명 가운데 871명이 관계사로 전출을 희망했고, 이번에 노조 설립신고서를 제출한 16명을 포함한 나머지 노동자들은 그 후 퇴직위로금을 수령하는 조건으로 희망퇴직을 선택했다는 것이 삼성그룹측의 주장이다. 삼성그룹측은 이러한 주장의 근거로 16명이 지난해 12월 26일자로 작성된 사직원(16명 중 3명 계열사 표기 없음)을 제시했다.

△노조측 주장=하지만 삼성그룹 측의 이런 주장과는 달리 삼성노조 관계자들은 '자진 희망퇴직' 부분에 대해서 극구 부인하고 자신들은 '강제 해고자'임을 강조했다.

삼성노조 홍보담당 전재형 씨는 "사직원을 쓴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은 상용차에서 퇴직위로금을 받기 위해서 작성해야 한다고 했기 때문에 작성한 것"이라면서 "하지만 당시에는 회사 쪽에서 계열사로 보내줄 것이라고 약속했다"고 주장했다.

삼성노조측의 주장은 삼성그룹 측에서 자진 희망퇴직의 근거로 삼고 있는 '사직원'은 퇴출 당할 위기에 처한 삼성상용차가 노동자들의 퇴직금을 지불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계열사 통해 퇴직금을 주기 위해 회사측이 제안한 것이고, 노조원들은 이를 수용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선 삼성그룹측도 부분적으로 인정을 하고 있다. 삼성그룹 한 관계자는 "상용차가 퇴직위로금을 지불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계열사로 일단 전배시킨 후 퇴직한 것으로 서류 상 '편법 아닌 편법'을 쓸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 부분에 대해선 부당내부거래 등 법적으로 저촉되는 부분이 있다면 회사 쪽에서도 책임을 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따라서 삼성노조측은 삼성상용차 퇴출 결정의 부당함과 '적절한' 퇴직금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의 저항이 장기화되자 회사 쪽에서 상용차 퇴직위로금과 함께 계열사로 보내주겠다고 약속했다가 지키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자진 희망퇴직이라고 볼 수 없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삼성 노조의 전망=출범하자마자 노조설립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는 삼성노조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현재로선 그리 밝지만은 않다.

삼성노조가 만든 인터넷 홈페이지(www.samsungunion.ce.ro) ⓒ 이승욱
삼성노조 운명, 다음초 '첫번째' 고비 될 듯

우선 최대 위기는 내주 초까지 결정될 것으로 보이는 대구시의 직권취소 여부. 16일까지 대구시는 각 이해당사자들에 추가자료를 요구했고 앞으로의 감사결과를 지켜본 뒤 다음 주까지 취소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특별한 이변이 없는 이상 직권으로 취소할 태세이다.

노조 설립이 취소된다 하더라도 노동자들에겐 희망은 남아있다. 취소일로부터 15일 이내 해당 관청인 남구청에서 대법원에 직권취소에 대한 이의신청을 제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구청에서 시의 압력과 삼성측의 강력한 반발을 무릅쓰고 이의신청을 할 것인지 관심거리다.

만약 시의 직권취소를 피한다 할지라도 삼성 노조원들의 '근로자성'을 판단하는 행정기관의 판단도 노조에겐 부담이다.

삼성노조와 삼성그룹측의 상반된 주장에 대해 서울, 경기지방노동위원회 등 지노위(지방노동위원회)에서는 일차적으로 삼성그룹의 손을 들어주고 있는 상태이다. 물론 노조측은 중노위(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청구해 놓고 있는 상태이다.

"새로운 노조원들이라도 삼성노조 깃발을 지킨다"

삼성노조 관계자는 "지노위나 중노위의 판단이 공정할 것이라고 보고 있지 않기 때문에 큰 기대를 하고 있지 못하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이 관계자는 "앞으로 일단 노조설립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신중하게 노조원들의 추가가입을 받은 후 우리(16명)가 아닌 새로운 노조원들이라도 노조를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삼성노조는 지난 7일 '해직자 원직 복귀 및 미지급 임금 지불'에 대한 의제를 가지고 단체협약을 체결하기 위한 회의를 삼성그룹측에 요구했지만 이에 대해 회사측은 "충분한 시간도 주지 않고 회의를 요구하는 일방적인 '삼성 흠집내기'"라면서 불응해 무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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