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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들이 알찬 과학교육을 받길 원하신다면 과학 조교들의 현실을 외면하지 말아 주십시오. 우리 과학 조교들도 정당한 대우를 받으며 보람되게 일하고 싶습니다.”

최근 전체 노동자들 가운데 60%가 비정규직이다는 통계가 나온 이후로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용보장과 처우문제가 우리 사회의 ‘뜨거운 감자’로 부각되고 있다. 이와 관련 지난 5월 27일 노사정위원회는 '비정규직 보호입법'을 추진하기 위해 특별 위원회를 설치한다고 밝혔다. 노사정위는 비정규특위를 구성, 비정규 노동자 보호입법과 기간제 계약 노동자 정규직 전환 등을 논의할 계획이다.

이번 노사정위의 발표에 내심 기대를 갖고 반기는 이들이 있다. 바로 '과학 실험 보조원'이다. '과학 실험 보조원'이란 과학 교사를 도와 교재와 장비 정리, 수업진행 보조 업무를 수행하는 일용직 노동자를 말한다. 흔히 ‘과학 조교’라고 부른다.

<과학실험실습보조원에 대한 서울시교육청의 답변보기>

과학 조교 2개월차 A씨의 하루 일과 – 금붕어 밥 주고, 커피 심부름까지

지금까지 한번도 실험에 참여해 본적이 없다는 A씨의 하루는 오전 8시 30분에 시작된다.

"먼저 행정실에 가서 기사님, 실장님, 사무 언니의 커피를 타야 돼요. 저희 학교에 어항이 3개 있거든요. 금붕어 밥을 주고 표지판 전등도 켜요. 1, 2, 3, 4교시에는 과학실에서 과학 수업 보조를 합니다. 하지만 이때 교무실이나 행정실에서 부르면 업무를 도와주러 가야 해요. 교장 선생님의 손님이 오실 때는 커피 심부름까지 합니다. 그러면 점심 시간이 돼요."

그는 자신이 과학 조교인지 사환인지 심부름꾼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러고 나면 과학실에서 비커 같은 실험기구들을 씻고 정리해요. 그걸 3시까지 하고 나면 허리가 부러지죠. 3시에는 서무실에 가서 접수된 공문을 분류하고 선생님들에게 나눠 드리는 일을 합니다. 1시간동안 선생님들을 찾아 학교를 헤매고 다녀요. 그리고 교무실에서 워드작업을 하구요. 퇴근 시간이 원래 5시지만 다음날 실험 준비하고 청소하고 정리하며 어느새 시간은 5시 30분을 훌쩍 넘어가요. 학교에서 행사나 감사가 있으면 저녁 늦게까지 일해야 해요. 당연히 시간외 수당도 없죠. 일용직이니까."

A씨는 학생들이 자신을 'A양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가장 속상하다며 "제발 교장 선생님이 다방 아가씨 부르듯 'A양'이라고 부르지 말았으면 좋겠다"며 말꼬리를 흐렸다.

과학 조교의 자리는 과학실 구석 책상 하나

5년차 과학 조교 B씨의 자리는 과학실 구석 한켠에 있는 책상 하나가 전부다. 과학 준비실이 없기 때문이다. 과학 준비실이 있는 학교는 전체 초등학교의 20~30%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과학 조교들은 과학실에 비치된 캐비닛 뒤나 과학실 구석에 책상 하나를 마련하고 업무를 본다.

B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제가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과학조교를 하시던 분은 등나무 밑에 앉아 계시다가 교장 선생님한테 근무 태만으로 찍혀서 그만두셨습니다."

학부형 가운데 가장 열성적으로 과학 교육을 한다고 소문이 나있던 B씨는 여러 선생님의 추천으로 과학조교가 되었다.

"원래 과학 조교들이 하는 일은 수업시간에 교사들의 실험 수업을 보조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어떤 선생님들은 수업하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해요. 나가달라고 하죠. 그러면 어디에 갑니까? 서무실이나 교무실에 가면 여러 가지 잡일을 시키죠. 컵도 씻어야 하고 워드도 쳐야 하고 공문서 수발도 해야 하고... 갈 데가 없죠. 등나무 밑 말고는."

B씨는 5월까지는 두터운 점퍼를 입고 다닌다고 말했다. 난로 하나 없는 썰렁한 과학실 구석에 혼자 앉아있다 보면 늘 감기를 달고 다니기 때문이다.

올해로 과학 조교 5년째라는 C씨의 5월 월급 명세서이다.

<월급명세서보기>

일당 2만4510원. 이 금액은 타 지역인 서울, 부산, 경남 지역 과학 조교 일당 2만5040원에서 500원 정도 모자라는 돈이다. 그나마 3년째 일당이 동결된 충북 지역 과학 조교의 일당 2만1000원 보다는 조금 나은 편이다. 시간당 3063원. 강남 지역 커피숍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과 같은 금액을 받고 있다. 더구나 학교에서 근무하는 일용직이다 보니 방학 때는 월급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과학 조교 C씨는 정해진 일당이라도 제대로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한다.

"지난해 저희 학교에서 과학 조교에게 책정된 예산이 제 월급보다 적었어요. 12월이 되니까 학교에서 그러더군요. 예산이 없으니까 13일 동안 학교에 나오지 말라고. 학기 중에 말입니다."

C씨는 학교측의 이런 지시에도 불구하고 13일 동안 무급으로 출근해야 했다.

"그래도 학생들 생각해서 학교에 나왔어요. 다음 해에 계약이 갱신되지 않을까 봐 겁나기도 했구요."

또한 앞서의 2001년 5월 월급 명세서를 보면 식대 소급분 25만4650원이 나와 있다. 그 사연은 이러하다.

"얼마 전까지 저는 학교장 내부결재로 식대를 내지 않고 학교 급식으로 점심을 해결했습니다. 따로 식대가 나오지 않으니까요. 인근 학교에서 이 일이 감사에 걸린 거에요. 그러자 저희 학교에서도 98년부터 먹은 밥값을 내놓으라는 거예요. 결국 두달 동안 25만4650원씩 나누어 냈습니다. 월급에서 밥값 빼고 차비 빼면 얼마 남지도 않습니다."

출산해야 한다고? 그럼, 학교에서 나가라!

2000년 2월 노동부에서 각 학교로 발송한 공문에는 출산 휴가와 관련해 이렇게 명시되어 있다.

근로기준법 제 72 조 '사용자는 임신중의 여자에 대하여는 산전후를 통하여 60일의 유급 보호휴가를 주어야 한다. 다만 유급 보호휴가는 산후에 30일이상 확보되도록 한다.' 사용자가 이를 위반했을 때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내야 한다.

D씨의 출산 무용담을 들어보자.

"출산 예정일이 작년 8월말이었어요. 방학 전에 미리 교감 선생님께 말씀 드렸죠. 부장회의를 하더니 퇴직하라고 하시더라구요. 다시 임용을 하겠다고 말씀하시기는 했지만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가요."

D씨는 당장 그만 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른 과학 조교들에게 선례를 남기는 것 같아서 참았다고 한다. 여기저기 수소문을 했다. 다행히 노동부가 서울 모 초등학교에 보낸 공문(문서번호: 여원68247-33)을 구할 수 있었다.

"제가 이 <산전후 휴가에 관한 협조 요청 공문>을 학교에 보여줬어요 서울은 서울이고 여기는 서울이 아니라서 전혀 효력이 없다고 그러시더라구요. 분명히 받는 곳이 특별시장, 광역시장, 도지사, 시.도 교육청 이라고 명시되어 있는데도 말입니다. 그래서 노동부에다가 해당 공문이 있는지 문의를 했죠. 제가 아는 노무사에게 도움을 받아 노동부에서 인천으로 보낸 문서 번호를 알려주고 찾아 달라고 했습니다. 그제서야 공문이 있다고 하시더군요. 그걸 행정 실장에 제출했어요. 마침 방학 때라 30일 유급 휴가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D씨는 출산 휴가 뿐 아니라 주차, 월차, 생리 휴가조차 제대로 보장 받지 못하는 전국의 과학 조교들이 홈페이지(http://shouse.hihome.com)에 그들의 고민을 털어놓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 문제가 단순히 특정 지역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닌 전국적인 문제라고 강조했다.

<과학조교 처우사례 - 계약서를 편법 이용하는 학교>

2001년 2월 말, 경북 지역에서 근무하는 과학 조교 C씨가 서명한 '근로 계약서'는 사용자가 계약서를 어떻게 편법 이용하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1.계약 기간 2001년 3월 1일 ~2002년 2월 28일 (방학 기간 제외)

노동부의 행정해석에 따르면 계약서상에 방학 기간 등을 명시하여 그 기간에는 미임용한다는 <특약 사항>을 정해 놓은 경우 퇴직금 산정에 있어서 미임용 기간을 공제할 수 있다. 또한 연차와 유급 휴가(연차 수당)를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

일부 학교에서는 퇴직금이나 연차 수당을 지불하지 않기 위해 3개월이나 6개월 단위로 계약을 체결하는 편법을 동원하고 있다.

“전문성 위해 우리끼리라도 연수를 하겠다”

지난 5월부터 전국의 과학조교들은 근무지 교사를 대상으로 '과학 조교 처우개선'에 관한 서명을 받기 시작했다. 과학 조교 D씨는 이 서명 운동에 상당수의 교사들이 지지하고 있다며 학교 내부에서도 대체로 이 문제에 대해 공감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몇 달 전 D씨는 담당 장학사에게 과학 조교 연수가 필요하다고 요구한 적이 있다. 그에게 돌아온 답변은 ‘예산이 없다’였다. 그래서 다시 한번 장학사에게 자체적으로 연수를 실시하겠다는 제안을 했다. 그러나 그 제안도 바로 묵살당했다.

"7차 교육 과정 변경으로 초등학교 과학 수업에서 실험 실습 비중이 대폭 늘어났습니다. 방학 중 사전 연수 제도가 없기 때문에 학기가 시작되면 실험을 제대로 수행할 수가 없어요. 교사들이 방학 한달 동안 받는 연수로는 모든 실험 수업을 완벽하게 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격무에 시달리는 교사들도 실험을 준비할 시간이 부족하구요. "

7년차 과학 조교 E씨가 유리에 베인 자국이 선명한 손바닥을 내밀었다. 실험이 서툴렀던 몇 년 전 시험관을 깨트려서 생긴 상처였다.

"과학 실험이라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초등학교에서 과학 실험을 제대로 하려면 과학 조교들의 실험 실습 연수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교육청에서 예산이 없다면 저희끼리라도 연수 교육을 실시할 생각입니다. 다른 건 몰라도 실험 실습에서는 최고인 사람이 과학실에 있어야죠. ”

과학조교는 기능직 전환을 원한다!

7년차 과학 조교는 자신의 경험치에서 '과학 조교 처우 개선에 관한 대책'을 풀어 놓았다.

"제가 350개나 되는 실험 기구를 제대로 다루는데 1년이 걸렸습니다. 약품만해도 한 두 가지가 아니죠. 몇년씩 노하우가 쌓일수록 더 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일당 2만5000원의 파리 목숨인 이 일을 능력 있는 젊은 사람들이 오래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좋은 자리가 생기기만 하면 옮길 생각들을 하죠. 교육은 입시 제도만 바꾼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학생들에게 올바른 과학 교육을 하려면 '과학 조교'를 기능직으로 전환하고 고용을 보장해야 합니다. 처우 개선도 뒤따라야 하구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기초 과학 확립은 먼나라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들은 인간적인 대접도 받지 못한다는 '과학 조교' 일을 계속하는 것일까?

아무말 없이 앉아 있던 4년차 과학 조교는 "제가 일을 그만두고 다른 사람이 와서 일한다고 해도 교육 현실이나 근무 조건이 변하는 건 아니죠'라며 과학 조교라는 일은 하면 할수록 사명감이 생기는 직업이라고 대답했다.

그는 "과학 조교가 한번 잘못된 실험 지도를 하면 그 학생은 평생 잘못된 지식을 가지고 살아갈 수도 있다"면서 학생들을 위해서라도 과학 조교의 처우 개선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한편, 한국 비정규노동센터에 근무하는 이혜수 상담부장은 과학 조교 처우 개선과 관련해 "학교장과 행정실이 가진 채용과 해고 재량권 때문에 과학 조교들이 불이익을 받고 있다"면서 교육청에서 일괄적으로 채용과 관리를 담당하도록 제도가 개선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지하철이 끊길 무렵 서둘러 취재 자료를 챙겼다. 눅눅하니 조금 묵직했다. 습한 바람 때문이었다. 그날 기분은 정확히 그 자료 뭉치 같았다. 과학 교사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고 실험을 진행하는 과학 수업, 제대로 된 실험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원래는 이런 답이 나와야 하는 거야'라며 바로 정답을 가르쳐 주는 과학 실험. 초등학교 시절 기자도 그렇게 ‘실험을 위한 실험’을 했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상황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기자가 만난 본 과학조교들은 모두 6명이었다. 이들은 00교육청 관할 각 초등학교에 근무중이었다. 모두 고용불안에 시달리면서 ‘과학과 아이들에 대한 애정’으로 많게는 7년째 과학조교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아직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당당하게 싸움에 나설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이런 사실이 해당학교에 알려지면 바로 ‘짤리는’ 해고의 공포에 떨고 있었다. 모두가 아름다운 이름을 지닌 ‘과학선생님’이었지만 동시에 이름을 밝힐 수 없는 ‘비정규직 일용직 노동자’였다. 

과학조교들의 처우와 고용문제가 여론화되고, 개선되어 그들이 마음 놓고, 아이들과 함께 과학강국의 든든한 기초를 놓는 참다운 ‘과학선생님’의 역할을 할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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