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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노순택/공희정 기자
사진: 노순택 기자


▲ 명동성당에서 출발해 조계사를 들러 청와대 앞까지 '삼보일배'를 하며 새만금간척사업의 '반 생명성'을 알리겠다고 나선 문규현 신부와 수경 스님
ⓒ 오마이뉴스 노순택
삼보일배(三步一拜).
"세 걸음마다 한 번 큰 절을 올린다."

오체투지(五體投地).
"신체의 다섯부분, 즉 머리와 두 팔, 두 다리를 땅에 맞댄다."


삼보일배와 오체투지를 한 마디로 묶어 말하면 '고행(苦行)'이다. 쉽게 말해 '고생길'쯤이 된다.

2001년 5월 24일 오전 10시.
두 성직자가 이 고생길을 자처하고 나섰다. 30도를 웃도는 초여름의 땡볕에서 6시간 동안 이어진 고행이었다.
왜? 진리를 얻기 위해서?

"오로지 생명 때문"이라고 두 사람은 입을 모은다. "갯벌은 생명의 보금자리이며, 성직자라면 종교의 차이를 뛰어넘어 함께 생명을 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삼독(三毒)을 뛰어넘어야 한다. 생명을 살려야 한다."

정부가 새만금사업에 대한 최종결정을 내일(25일) 발표할 예정인 가운데, 문규현 신부와 수경 스님은 24일 오전 10시 명동성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새만금사업에 대한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 오마이뉴스 노순택

"정부는 새만금사업을 '단군 이래 최대의 간척토목사업'라며 강행의지를 천명하고 있지만, 이는 돌이킬 수 없는 환경재앙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두 종교인은 말했다.

▲ 초여름 땡볕을 맞으며 큰 절하고 걷기를 반복한 문규현 신부와 수경 스님의 얼굴엔 비오듯 땀이 쏟아졌다.
ⓒ 오마이뉴스 노순택
이들은 기자회견을 마친 뒤 "우물쭈물하는 정부당국자의 현명한 판단을 돕기 위해 삼보일배의 기도순행을 드리려 한다"며 "민주화의 성지인 명동성당에서 새만금 사태의 결자해지 당사자가 계시는 청와대까지 삼보일배를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곧바로 '세 번 걸음에 한 번 절'을 시작한 두 종교인이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롯데백화점 명동점 앞까지 나오는데 걸린 시간은 1시간남짓. 보통사람의 걸음이라면 10분도 걸리지 않는 짧은 거리다.

초여름 땡볕으로 뜨겁게 달아오른 두 성직자의 얼굴엔 땀이 비오듯 쏟아지기 시작했다.

ⓒ 오마이뉴스 노순택

"우물쭈물만할테요? 여기, 내 절을 받으시오!"

- 왜 하필 세 걸음인가?

"삼보(三步), 즉 세 걸음은 우리 사회를 뒤덮고 있는 '탐진치'(불교에서는 사람의 착한 마음을 해치는 '탐욕, 진에, 우치'의 세 가지 번뇌를 삼독이라 말한다)를 극복하자는 상징행위이며, 이어 대지에 엎드려 올리는 한 차례의 절은 생명경시에 대해 책임없다 할 수 없는 우리 모두의 참회를 촉구하고, 또한 그 참회의 몸짓을 스스로 시민 여러분과 함께 체현하기 위해서다."

▲ 환경단체 활동가가 수경 스님의 머리 위로 물을 붓고 있다. 환경단체에서는 두 성직자의 탈진을 막기 위해 소금과 얼음, 물을 준비했다.
ⓒ 오마이뉴스 노순택
이들 뒤에는 환경운동연합 최열 사무총장을 비롯 임삼진 녹색연합 사무처장, 최성각 풀꽃세상 사무처장, 문정현 신부 등 30여 명이 플래카드를 들고 "새만금사업 중단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함께 했다.

10시 20분경 명동성당을 출발한 이들은 광교, 종각을 거쳐 정오가 다 돼서야 조계사에 도착했다. 문규현 신부와 수경 스님은 대웅전 앞 계단에 올라 한 마음으로 부처님을 향해 삼배를 올렸다.

명동성당에서 '하느님'께 올렸던 기도가 다시 조계사의 '부처님'께로 이어지는 순간, 참석자들은 표정에는 숙연함이 흘렀다.

작열하는 땡볕 아래 온몸이 땀으로 젖은 두 성직자를 조계사 주지 지홍 스님은 미안함으로 맞았다.

지홍 스님은 "두 분은 치열하게 하시는데 정말 부끄럽다"며 얼음으로 차게 한 물수건과 마실 물을 건넸다. 하지만 두 종교인은 지친 듯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들은 잠시 대웅전 앞뜰에서 5분 가량 휴식을 취한 뒤 다시 고행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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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흐를수록 이들의 고통도 심해졌다. 행진속도도 명동을 떠나올 때와는 판이하게 느려졌다. 땅바닥에 머리를 대고 기도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십여통의 생수도, 염분을 채워 줄 소금도 이들의 지친 몸을 달래주지는 못했다. 이미 온 몸은 젖은 소금이었다.

환경운동연합 장지영 생태보전팀장은 "종교인들까지 나서서 이렇게까지 하는데 '새만금간척사업'이 지속된다면 정권퇴진운동밖에 다른 길은 없다"면서 "수행자들까지 나서서 이 사업을 막으려는 이유를 정책결정자들은 깨달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삼보일배를 막는가, 홀로라도 가겠다"

▲ 종로구청 앞, 미대사관 주변이라는 이유로 경찰이 막아섰다. 문규현 신부는 계속 절을 올리며 "홀로라도 지나가게 해달라"고 말했다.
ⓒ 오마이뉴스 노순택
12시 30분경, 종로구청 앞에 도착했다. 하지만 경찰이 이들의 고행을 막아섰다. 미대사관 주변이라는 이유다.

일행은 집시법을 피해가기 위해 '나홀로 시위'로 방법을 바꿨다. 뒤따르던 일행들은 모두 종로구청 앞에 자리를 깔았고, 문규현 신부만이 '삼보일배'를 이어가기로 했다. 하지만 경찰은 문신부마저도 통행을 허락하지 않았다.

행사 참가자들이 "합법적인 1인 시위를 막는 것은 위법"이라며 "경찰은 법을 지키라"고 소리쳤지만 소용 없었다. 참다못한 수경 스님이 "종교인들이 평화행진을 하면서 목소리를 내려고 하는데 이를 불법적으로 막아선다면, 이제는 정권퇴진 운동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두 종교인은 미대사관 앞길을 포기하고 종로구청 뒷길을 이용해 청와대로 향했다. 경찰의 봉쇄를 피하기 위해 이번엔 50미터 간격을 둔 '삼보일배'가 이어졌다.

수경이 앞서고 규현이 뒤따른다. 다시 긴 고행의 시작이다.

문정현 신부, 경찰 패트롤카에 오르다

▲경찰 순찰차에 오른 문정현 신부
ⓒ 오마이뉴스 노순택
문규현 신부와 수경 스님이 YTN 앞에 이르렀을 무렵, 뒤따라오는 줄 알았던 문정현 신부가 종로구청 앞 경찰 순찰차 위에 올라가 시위를 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문정현 신부는 순찰차에 올라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냐"며, "나라가 죽어가고 있는 마당에 성직자가 나라를 위해 수행기도를 하고 있는 걸 경찰이 보호해줘야지 되려 앞길을 막고 있다"고 고함을 치고 있었다.

다행히 경찰이 문 신부를 강제로 끌어내리지 않았고, 문신부도 10여 분 후 스스로 차에서 내려왔다.

허나 경찰의 경계태세가 잠시 느슨해진 틈을 타, 이번엔 문정현 신부가 삼보일배를 하며 미대사관 앞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종로경찰서 형사가 "이런 데서 절을 하고 다니면 어떻게 하냐"며 문 신부를 말리려다 되레 뺨을 맞을 뻔했다.

▲ 종로경찰서 형사가 문 신부에게 "왜 길가에서 절을 하고 다니냐"며 말리려다 되레 뺨을 맞을 뻔했다.
ⓒ 오마이뉴스 노순택
문 신부가 미대사관 앞 10여미터 근방에 이르자 경찰이 막고 나섰다. 잠시 심한 몸싸움이 벌어졌고, 경찰은 문 신부와 일행을 에워싼 채 고착작전에 들어갔다.

15분 뒤 경찰이 광화문 쪽으로 길을 터주자, 문신부 일행은 광화문 지하도를 건너 정부종합청사로 향했다. 유신시절 군부에 저항하다 다리를 다쳤던 문정현 신부는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면서도 삼보일배를 멈추지 않았다.

▲ 문정현 신부가 삼보일배로 미대사관 옆길을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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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 문규현 신부의 온몸을 범벅으로 만들었던 땀줄기가, 이번엔 형 문정현 신부의 온몸을 적시고 있었다.

30도를 웃도는 후텁지근한 더위는 성직자라고 비켜가는 법이 없었다.

노 신부의 고행은 정부종합청사에 이르러서야 멈췄다. 경찰이 더 이상 길을 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신부는 정부종합청사를 향해 절을 올리며 "국무총리님, 백성들 좀 살려주십시오. 대통령님, 백성들 좀 살려주십시오"라고 울먹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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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YTN 쪽으로 향했던 문규현 신부와 수경 스님 일행은 광화문시민공원 앞을 지나, 지하도를 건너 정부종합청사 앞으로 왔지만 지하도 출구에서 경찰이 막아서는 바람에 계단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종로구청 앞에서 헤어졌던 일행은 그렇게 다시 만났다. 형 소식을 몰랐던 문규현 신부는 그제서야 땀범벅이 된 문정현 신부를 보고 손을 건넸다.

시간은 훌쩍 오후 3시 30분을 넘어서고 있었다.

문규현 신부와 수경 스님은 계속해서 청와대 앞까지 삼보일배를 강행하려 했지만, 경찰의 완강한 방어를 뚫지는 못했다.

▲ 무엇이 여기 노 신부를 편치 않게 하는가. 동생을 따라 삼보일배에 나선 문정현 신부의 머리에 한 카톨릭사제가 물을 뿌려주고 있다.
ⓒ 오마이뉴스 노순택

30여분 동안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경찰과 대치한 '삼보일배' 일행은 '내일'을 기약하며, 6시간 동안의 고행을 마무리했다. 명동성당에서 조계사를 돌아 정부청사에 이르는 4Km를 행진하는 동안 이들은 각각 2천여 번 자신의 몸을 길바닥에 '던졌다'.

환경운동연합 윤준하 중앙상임위원장은 문규현 신부에게 "너무 고생하셨다"며 절을 올리기도 했다. 당황한 문규현 신부가 맞절로 '응수'하자 참석자들은 세찬 박수갈채를 보냈다.

한편, 환경단체들은 내일(25일) 정부의 최종결정 발표에 맞춰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가질 예정이다.

정부의 발표에 하루 앞선 세 성직자의 땀내나는 고행이 그들의 소망대로 "새만금에 진정한 생명평화"를 가져다 줄지, 내일의 발표가 걱정스럽다.

▲ '삼보일배', '오체투지'에 나섰던 세 성직자. 왼쪽부터 수경스님, 문규현, 문정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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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5일 속보> 정부, 새만금사업 결정놓고 막판까지 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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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같은 남자. 산소같은 미소가 아름답다. 공희정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기자단 단장을 맡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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