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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대로 김대중 대통령이 스웨덴 한림원이 주는 2000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여기서 '예상대로'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준비된 대통령' 김대중이었던 것처럼 '준비된 수상자' 김대중이었다는 점에서다. 그 만치 이번 수상은 김대중 대통령이 14번 노벨평화상 후보자 선정 끝에 수상한 것이어서 네 차례의 대권도전 끝에 대통령이 된 사실과 맞물려 묘한 감회를 갖게 한다.

(수상자선정 이유서에 나와 있겠지만) 거칠게 회고해 보자면, 71년 대통령 선거와 3단계통일론 제안, 73년 유신치하의 김대중납치사건, 80년대 일련의 민주화 투쟁, 94년 '일괄타결 카터 방북 제안', 98년 집권 후 햇볕정책(대북포용정책)의 추진, 99년 서해교전 등의 사태 속에서의 일관성 있는 대응, 2000년 6·15 남북합의서 등에 이르는 도정이 이번 수상의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흔히 노벨상의 백미가 노벨평화상이라고 한다. 이 말은 노벨상에서 가장 정치적인 상이 노벨평화상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64년 미국 마틴 루터 킹 목사, 71년 서독 빌리 브란트 총리, 79년 마더 테레사, 89년 티벳 달라이라마, 91년 미얀마 아웅산 수지 여사, 93년 인종차별정책에 반대해서 투쟁한 남아공 넬슨만델라와 데클레이트 대통령, 94년 라빈 이스라엘 총리와 아라파트 당시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의장, 페레스(3인), 96년 벨로 주교 등 주요한 수상자 목록만 보더라도 이 노벨평화상이 주는 상징성이 압축되어 있다.

알려진 대로 노벨상은 노벨이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해서 번 돈으로 제정한 것이다. 이 사실은 다이너마이트와 평화라는 이 '극단의 20세기'와 맞물려 있는 상징성이 압축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노벨평화상의 탄생은 역설적이게도 국제사회가 얼마나 폭력과 전쟁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는가를 주지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이 노벨(평화)상에서 지난 세기 동안 자본(주의)이 얼마나 평화와는 거리가 먼 길을 걸어왔는가를 읽어내고 싶다는 말이다. 이번 김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도 한반도의 비극에 기반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어찌 기쁠 수만 있겠는가.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결코 간과해서는 안될 것은 진정한 평화의 의미이다. 평화(平和)는 말 그대로 (단순한 전쟁에 반하는 PEACE의 개념이 아닌) 밥(禾)이 공평(平)하게 입(口)에 들어가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점, 즉 생존의 문제를 넘는 평화는 없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번 김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의 의미를 깎아 내려서도 지나치게 높여서도 안될 일이다. 축하와 덕담을 아끼지 말아야 할 일이다. 다만, 차분하게 오늘의 현안들을 따지고 이를 해결하는 데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김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으로 김 대통령의 대내외적 위상이 높아질 것이다. 그리고 이는 대체적으로 남북한 및 국제 관계를 진전시키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반면에 내실과 내치(內治)라는 말로 아울러지는 각계의 성명에 담긴 뜻을 보더라도 산적한 내부적 문제 ― 특히 국가보안법 등의 인권과 민생 등의 현안 ― 를 어떻게 해결하는가에 따라서 이번 수상의 의미가 빛날 수도 퇴색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김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이 일관된 개혁과 통일, 그리고 무엇보다도 국민대중과 사회적 약자 중심의 인권과 자유 민주주의를 진전시키는 데 지렛대가 되어야 한다.

멀리 갈 것 없이 10월 20일 열리는 아셈을 앞두고 있다. 전지구적으로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는 시민과 다중들의 싸움이 격렬해지고 있는 이 때 마침, 이번 아셈 대회를 전후로 한 시민 단체 등의 시위를 원천봉쇄한다는 반갑지 않은 소식이 전해진다. 거기에 경찰은 각 시민단체에 '조용히 있으라'는 협박성 경고까지 서슴치 않고 있다 한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국제적인 축제요 이벤트로 이번 아셈을 치르고 싶은 정부와 경찰의 마음이야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이것이 온전한 의미의 평화와는 거리가 있음을 지적해야 할 것이다. 통일음악회로 예정되었던 행사를 평화음악회로 바꾼다고 평화가 가까워지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이번 경사가 미봉을 합리화하는 수단이 되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는 그러한 맥락에서 나오는 것이다.

94년 라빈 이스라엘 총리와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지도자 등이 공동 수상한 바 있는데, 바로 어제 (시차가 있기는 하지만 거의 비슷한 시기에) 미국에서 북미관계가 평화를 향해 급진전을 보이고 있을 때 이스라엘의 전투헬기는 팔레스타인 아라파트의 관저를 공격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제5차 중동전쟁으로 번질 가능성마저 보이고 있는 것은 역설적인 시사점을 전해 준다. 세계에는 아직 증오와 반목, 반평화와 야만, 미망의 시대가 계속되고 있다.

그 만큼 평화상을 받기 위한 도정 그보다 더 길고 험난한 평화에의 도정이 우리 앞에, 남아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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