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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 총재, 모스크바 동포 리셉션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가 21일 (현지시각) 모스크바 슬라뱐스카야 호텔에서 열린 동포리셉션에서 참석자들과 건배하고 있다. - 국회사진기자단 ⓒ 연합뉴스


특별취재팀: 모스크바/ 이진숙 기자
서울/ 황방열·공희정 기자


주 러 한국대사관이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 일행의 모스크바 방문 때 한나라당의 요구를 받고 필요 이상의 과잉 서비스를 한 것으로 알려져 평소에 '미지근한 서비스'를 받았던 현지 교민들로부터 불만을 사고 있다.

이재춘 대사를 포함한 주 러 대사관 외교관들 상당수는 이 총재 일행이 모스크바에 머물던 11월 21일부터 24일까지 '지원'을 위해 동원됐으며 심지어 참사관급 외교관들은 "한나라당 의원의 요청으로" 수행 기자와 수행 국회의원들이 어울려 단란주점에서 심야까지 술을 마시는 자리에도 동행해 '도움'을 줬다.

모스크바 세레메치예보 공항 VIP실에 이회창 총재 일행이 도착한 것은 11월 21일.

이 총재의 이번 러시아 방문에는 부인 한인옥 여사를 비롯, 김진재(부총재), 정재문(국제위원장), 권철현(대변인), 김무성(총재 비서실장), 박명환(국회 통일외교통상위 위원장), 임태희(정책위원회 제2정조위원장), 전재희(정책위원회 제3정조위원장), 남경필(총재실 부실장) 의원 등 8명의 국회의원과 12명의 당직자가 수행했다.

또 중앙일간지-방송사의 한나라당 출입 1진(일부 2진) 기자 25명과 국회 국제부 직원도 동행했다. 주 러 대사관측은 이들의 일정을 위해 전체 직원 40여 명 가운데 절반 이상을 동원, "일상 업무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고 일부 대사관 직원들은 밝혔다.

단란주점 가는데 참사관 도움이 필요?

이 총재를 수행한 한나라당 출입기자 상당수와 8명의 국회의원은 모스크바에 도착한 첫날 저녁 모스크바 시내 단란주점에서 밤늦게까지 술을 마셨다.

모스크바에는 한국인이 주인이면서 러시아 아가씨가 서비스하는 한국식 단란주점이 모두 4개인데 방문단으로 온 기자(일부 불참)와 의원들은 3개조로 나뉘어 이들 단란주점에 갔다. 권철현 대변인 등 한나라당 국회의원은 3개조에 나뉘어 편성됐다. 이들의 술자리는 심야까지 계속되었는데 이 자리에도 참사관급 외교관 3명(러시아대사관의 전체 참사관 수는 6명, 참사관은 서기관 내지 부이사관 급으로 3-4급 공무원)이 동석했다.

술자리에 참석한 한 기자는 "러시아 아가씨들과는 간단한 영어밖에 되지 않아 동석한 참사관이 술자리 대화를 러시아말로 통역해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술자리에 참석한 한 참사관은 28일 전화통화에서 "기자가 25명이나 왔는데 인발브(involve)가 안될 수도 없고... 우리 문화가 그런 것 아니냐"면서 "저녁을 같이 먹다보니까 거기까지 가게 됐다"고 말했다.

▲29일 새벽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한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가 당직자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이 총재 방러일정 지원실무를 총괄한 최 아무개 참사관은 29일 전화통화에서 "술자리까지 가게 된 것은 대사관에서 조직적으로 배치한 게 아니었다"면서 "한나라당 의원들이 인맥을 통해서 아는 범위에서 개별적으로 도와달라고 해서 술자리까지 가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최 참사관은 "서울에서 온 사람들이 지리도 모르고 언어도 모르고, 또 기자나 국회의원들이 상당히 국내적으로 비중 있는 이들이기도 해서 도와준 것"이라면서 "그 사람들이 도와달라는데 '당신들 알아서 하시오'라고는 할 수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최 참사관은 또한 "술집 안내 정도는 여행사나 유학생 아르바이트를 통해 하면 되지 굳이 고급 외교관까지 동원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여기 와서 갑자기 아르바이트생을 구할 수는 없고 제일 쉬운 것이 대사관 직원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지 않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참사관 3명의 술자리 3개조 참석이 대사관측의 주장처럼 한나라당 의원의 요청에 의한 개별적 선택이었는지, 대사관측의 과잉서비스의 일환이었는지는 최종적으로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단란주점 현장을 목격했다는 한 러시아 교민은 "러시아라는 대국에 외교한다고 온 국회의원들과 외교관들이 심야까지 술집에서 기자들의 시중을 들고 있는 꼴불견을 보면서 우리나라가 어디로 가는 것인가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교민 대상 리셉션 초청장 발송도 대사관에서 대행

첫날 저녁 7시 이 총재는 모스크바 교민 2백여 명을 슬라뱐스가야 호텔로 초청해 리셉션을 가졌다. 이 행사의 성공을 위해서도 적지 않은 대사관 직원들이 이 총재 방문 전부터 동원됐다.

한 참사관은 "한나라당에서 이총재 교민리셉션에 참석할 교민들을 모아달라는 부탁을 받은 것은 사실"이라면서 "일주일 전쯤 리셉션 참석 예정자를 정해 초청장을 우편발송하는 일은 대사관에서 대신해줬다"고 말했다.

그 참사관은 "그런 일은 교민단체에서 알아서 하는 것이 좋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게 가장 바람직하지만 한인회가 그만한 역량이 안된다"고 말했다. (91년 가을 김대중 총재의 방러 때는 고려인연합회라는 한인단체가 교민간담회를 주최했고 모든 준비를 했다)

이번에 초청장 발송 대행이라는 선례를 만들어낸 주 러 대사관은 한화갑 씨 등 앞으로 줄을 이을 대권주자들의 방러 때에도 그런 '잡일'을 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 모스크바대에서 연설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가 22일 (현지시각)오전 모스크바 국립 국제관계 대학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 국회사진기자단 ⓒ 연합뉴스


이 총재 강연 장소 긴급변경 성사시키려 진땀

한나라당은 이번 방문이 "초당외교" 차원에서 마련됐다고 했다. 그러나 한 수행 기자의 표현처럼 "초당외교가 아닌 이 총재의 국제적 지위 생색내기 측면이 강했다". 23일 강연 장소를 급히 변경해 대사관에게 '또 하나의 일'을 시킨 것도 그러한 측면을 보여줬다.

애초에 한나라당은 강연장소를 이 총재 초청 당사자인 러시아 의회에 부탁했고 의회는 러시아국립대학을 강연장소로 지정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서울대학격인 국립대학에서는 학교차원이 아닌 학부(저널리즘 단과) 차원에서 강의를 준비했고 강의실도 그 차원에서 수수하게 마련했다. 그러나 이 총재보다 3일 앞선 18일 모스크바에 온 정재문 의원은 장소가 이 총재의 위상과 맞지 않아서인지 이 대사에게 '긴급민원'을 제기했고 대사관은 이를 즉시 해결하는 데 시간을 보내야했다.

한 참사관은 "미리 온 한나라당 정재문 의원이 강연현장을 돌아보고 안되겠다고, 바꾸자고 했다"면서 "그래서 이재춘 대사가 모스크바 국립 국제관계대학 총장에게 급히 부탁해 그곳으로 옮겨 하기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강연현장에는 평일인데도 대사는 물론, 공사, 정무참사 등 중견외교관 10여 명이 참석했고 다른 직원들은 유학생 등 청중동원에 시간을 보내야 했다.

이재춘 대사, 취침시간 제외하고 이 총재 수행

이 총재가 모스크바에 도착하기 몇 주 전부터 준비를 위해 동원됐던 대사관 직원들은 이 총재가 페테르부르크로 떠난 24일(금요일)에야 해방됐다. 주말은 건진 것이다. 그러나 이재춘 대사와 한 정무참사는 예외였다.

두 고위 외교관은 모스크바에서 8백km 떨어진 상트 페테르부르크까지 1박2일 동안 이 총재를 수행했다. 한 동행기자는 이 대사가 이 총재의 러시아방문 "4박5일 동안 취침시간을 제외하고는 이 총재와 함께 있었다"면서 "정부 대표로 파견된 대사가 만사를 제쳐놓고 러시아측과의 회담뿐 아니라 단순관광까지 수행하는 열의를 보인 데 대해서는 이 총재 일행들조차 민망해했다"고 지적했다. (경향신문 11월 27일자)

이 총재 일행 지원 실무총책 참사관
"비중있는 인물이고 처음 방문이어서 도왔다"


이 총재 일행 지원을 실무적으로 총괄한 최 아무개 참사관은 "일정지원에 직접 참여한 외교관은 대사를 제외하고는 3인 이내의 범위였기 때문에 교민대상 업무에는 지장이 없었다"면서 전체 직원의 절반 이상이 동원됐다는 일부 교민과 대사관 직원의 말을 부인하고 "다만 교민리셉션은 주무부서인 영사관 직원 3명이 추가로 지원됐고, 참석을 원하는 대사관 직원들이 자율적으로 참석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최 참사관은 "내부적으로도 이번 이 총재 일행을 도우면서 정치적으로 해석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했지만 외교는 여야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하나의 국익을 위한 것인 만큼 돕기로 했다"면서 "이 총재가 비중이 있는 인물이고 개인적으로는 러시아를 처음 방문하는 것이어서 러시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것으로 판단돼 우리가 지원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 참사관은 또 "과거 디제이가 (92년에) 러시아를 야당총수로 방문했을 때 대사관에서 냉담했는데 그게 결과적으로 국익에 보탬이 안됐다"면서 "우리 사회가 이제는 민주화도 됐고 여야 편가르기에 외교부문이 끼어들어서는 안되니까 도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감사원장도 왔다 갔고 다른 대권주자도 왔다 갔고 워낙 많이 와서 그들을 돕는 것이 일상의 업무 중 하나가 됐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가 29일 새벽 러시아, 핀란드 방문을 마치고, 인천공항 귀빈실에서 당직자들에게 귀국 인사를 한뒤 공항을 나서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교민들, "우리들에게도 그런 화끈한 서비스를"

일부 교민들은 주 러 대사관이 이 총재 일행에 대해 "철통 서비스를 했다"면서 "우리들에게도 그런 서비스를 해달라"고 비판하고 있다.

한 교민은 "주 중 대사관이 교민 사형수가 처형된 것도 모르고 있다가 언론의 지탄대상이 됐었는데, 러시아에서도 작년과 올해 교민들이 살해되거나 숨졌지만 아직까지 미궁에 빠진 의혹사건이 있다"면서 "외교관들이 국내에서 온 정치인이나 기자들에게 '관행'이라면서 과잉서비스를 하고 있는데 그럴 시간이 있다면 차라리 이런 미제사건(아래 주석 참조) 해결이나 교민 서비스 강화에 관심을 보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교민은 "대사관에서 근무하는 직원이 40여 명인데 1인당 1년 주재비가 10만 달러선은 될 것"이라면서 "연간 최소한 50억을 쓰는 공관이 교민들을 위한 봉사에는 미지근하고 국내에서 오는 정치인들에 대한 서비스는 화끈하니 교민들이 섭섭하지 않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이 교민은 "그러나 열심히 근무하는 외교관들도 적지 않다"면서 "대사 등 몇몇 정치권 눈치보는 고위외교관들 때문에 이들이 한꺼번에 욕을 먹어서는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미궁에 빠진 두 러시아 교민 사망, 살해 사건

러시아 교민과 관련된 대표적 미제사건은 액세서리 가게 주인 이근배씨 사건과 어학연수 여자 유학생 이 아무개씨 사건. 

이근배 씨는 악세사리 가게를 하면서 근근히 살아오다 작년 9월 모스크바 경찰 3명으로부터 검문을 받던 중 사망했다. 유가족 측에서는 경찰의 집단구타에 의한 사망이라고 주장했지만 모스크바 경찰은 "평소 간이 나빠 사망한 것"이라며 우리 대사관측에 지난 5월 18일자로 사건종결처리를 통보해와 교민들의 분노를 샀다. 

여자 유학생 이 아무개씨는 어학연수차 러시아에 왔다가 지난 6월 세인트 피터스버그 대학 기숙사에서 목졸려 살해당했다. 러시아 경찰과 검찰은 이씨 사건을 공동수사하고 있지만 5개월째 진척이 없어 교민들을 애타게 하고 있다.

주 러 대사관측에서는 이 사건에 대해 "지속적 관심을 가지고 러시아당국과 이야기하고 있다"고 하지만 교민들 사이에서는 '미지근한 대응'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한 교민은 "2년 전에 미국대사관 초병인 미해병대 흑인 병사가 외출을 갔다가 러시아 스킨헤드들에게 폭행을 당해 앞이빨이 부러진 사건이 있었는데 이때 미국 대사관은 외교채널을 통해 끝까지 범인을 색출해줄 것과 재발방지책을 러시아에 촉구했고 결국 모스크바시의 루슈코프 시장이 스킨헤드 소탕령을 내려 잠시 잠잠해지기까지 했다"면서 "우리 대사관에서는 교민신문에 '조심하세요' 한마디뿐이어서 교민들 사이에서는 우리가 편하려면 미국애들이 가끔 스킨헤드들에게 맞아야 한다는 농담이 오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교민은 "스킨헤드들에 의해 구타당한 우리 교민이 올해에만 10여명도 넘는다"면서 "이 총재가 이번에 러시아 외무장관을 만났을 때, 이총재든 대사관측이든, 이런 교민안전문제와 미제사건에 대해 한마디 해야 했던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 총재의 러시아 외무장관 만남때 이런 이슈에 대한 문제제기는 전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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