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한나라+자민련의 힘이 발휘되는 순간. 21일 조부영 자민련 의원이 교원정년를 63세로 연장하는 데 찬성한다는 기립 표결을 하고 있다. 민주당 의원들은 집단 퇴장해 옆좌석은 텅 비었다.
ⓒ 오마이뉴스 이병한
교원 정년을 현재 62세에서 63세로 연장하는 내용의 교육공무원법 개정안이 21일 국회 교육위 전체회의에서 민주당 의원들이 강력히 반발, 퇴장한 가운데 한나라당과 자민련에 의해 표결로 통과됐다.

개정 법률안은 법사위와 본회의를 거쳐야 하지만 한나라당과 자민련이 과반수를 넘고 있어 이달 말이나 다음달 초에 통과가 확실시된다.

이에 따라 지난 99년 1월 여야 표결을 통해 62세로 낮춰진 교원 정년이 3년만에 정치지형이 바뀌자 또 다시 여야 표결에 의해 63세로 높아지게 돼, 어느 분야보다 장기적이고 치밀한 계획에 의해 추진돼야 할 교육분야가 정치적인 이해관계로 인해 조변석개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관련기사
아버지의 한숨 "학교 그만둘란다"/ 박수원 기자
'교원 정년 1년 연장'을 둘러싼 논쟁들/ 손병관 기자

또한 이날 표결에 민주당은 강력히 반발하고 한나라당은 공식적으로 "우리 당의 당론은 65세"라고 밝히고 있어, 교원 정년 문제는 여전히 불씨로 남게 됐다.

이날 법안이 국회 교육위를 통과함에 따라 김대중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는 한, 교육공무원법은 DJP공조 붕괴와 거대야당 출현 이후 현 정부가 취한 주요 개혁조치 중 첫 후퇴 사례로 기록되게 됐다.

또한 검찰총장 국회 출석, 인사청문회 대상 확대 등 여야간 첨예한 대립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교육공무원법의 통과는 야당의 '수적 우위에 의한 독주'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신호로 해석돼 향후 정국의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교총은 교원 정년이 1년 연장됨으로써 초등학교의 경우 2002년 1142명, 2003년 1488명이 혜택을 볼 것으로 주장하며 "전문직으로서의 교원의 자존심 회복과 교원의 사기 진작으로 교육력 향상에 기여할 것"이라며 즉각 환영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이미 단축된 정년에 따라 퇴직한 교원들의 반발과 교장·교감 승진 적체, 중고등 교원 임용고사를 준비하는 졸업생들의 취업문이 더 어려워지는 등 일선 현장에서의 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시작부터 고성이 오간 국회 교육위원회

"이제 교육은 죽었어요! 이렇게 교육을 하는게 아닙니다!"

21일 오후 4시40분 이재정 민주당 의원은 이렇게 외치고 국회 406호를 퇴장했다. 약 2시간30분에 걸친 지리한 공방 끝에 이규택(한나라당) 국회 교육위원회 위원장이 교육공무원법 개정법률안의 표결을 상정하는 의사봉을 두드리자 이재정 의원은 일어서서 말렸으나 역부족이었다. 이어 민주당 의원들은 모두 퇴장했고 약 1분만에 교육공무원법 개정안은 전체위원 16명 가운데 9명(한나라당 8명, 자민련 1명)의 찬성으로 통과됐다.

"연기합시다" "무슨 소리" 민주당 교육위원회 간사를 맡고 있는 이재정(오른쪽) 의원이 한나라당 간사인 황우려(가운데) 의원에게 표결 처리 연기를 설득하고 있다. 이날 교육위원회는 시작부터 여야간에 고성이 오갔다. ⓒ 오마이뉴스 이병한

이날 국회 교육위원회는 시작부터 고성이 오갔다. 한나라당이 당초 일정과 달리 다른 사안보다 교원정년 연장 법안을 먼저 처리하려 하자 민주당 의원들이 강력히 반발했다.

"공청회를 바로 어제 했습니다. 처리를 연장합시다."
"의사일정을 다 합의해놓고 무슨 소립니까. 이제까지 가만히 있다가 기자들이 오니까 쇼하는 겁니까."
"쇼라니요? 무슨 말을 그렇게 합니까."
"위원장, 나는 오늘 처리 안하면 63세에 찬성하지 않겠으니 그렇게 아세요."


교육위원회는 약 50분이 지연된 후에야 개회됐고 대학수능시험 관련보고 등 다른 사안을 처리하는 동안에도 장외에서 여야간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교육위원장실에서 임종석 민주당 의원은 이재오 한나라당 총무를 설득했다.

"왜 이거 가지고 이러십니까. 다른 거, 정치적인 거 많은데 왜 이런 정책적인 것 가지고 그럽니까. 이거 해봤자 교원 수급은 해결 안되고 일선 현장에서의 혼란은 불을 보듯 뻔한데, 차라리 검찰총장 해임 건의안 같은 정치적인 것, 밀어붙일 것 많잖아요. 이게 단지 교총 안고 가기 외에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다른 안건이 끝나자 임 의원은 재차 "제 양심을 걸고 이 표결에 응할 수 없다"면서 연기를 주장했다. 김화중 민주당 의원은 "한나라당이 의석수가 많아졌다고 해서 교원정년이 다시 연장되면, 다음 총선에서 의석이 바뀌면 다시 줄어도 되는가. 이렇게 국회의원 수로 교육정책이 바뀐다면 국민들이 불안해 한다"고 말했다. 전용학 민주당 의원은 "이것은 서두를 문제가 아니다"면서 "단 1주일이라도 검토해보자"고 말했다.

▲ 교육위가 잠시 정회한 사이 한나라당 의원들이 숙의를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병한
이에 대해 김정숙 한나라당 의원은 "99년 통과 이후 지금까지 다시 환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면서 "교육문제이기 때문에 표결은 안된다는 것은 하지 말자는 이야기다, 민주주의란 필요할 때는 최후에 다수결을 쓰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특히 박승국 한나라당 의원은 지난 99년 교원정년을 62세로 낮추게 된 과정을 설명하며 표결을 요구했다.

"당시(99년 1월) 3당이 63세로 합의하려는데 (여당) 간사에게 (어디론가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그후 나갔다 한참 지난 후에 오더니 '안되겠다, 62세로 가야겠다'고 했어요. 우리가 약속이 틀리다고 하니 '안되면 표결이라도 해야겠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항의했지만 결국 표결에 임했습니다. 그 당시 여야간의 합의는 63세였습니다. 그래서 오늘 표결로 처리하게 된 것이니 이것을 자꾸 왈가왈부하면 점점 혼란만 가중됩니다."

박 의원의 발언이 끝나자 이규택 위원장은 "박 의원의 말에 의하면 역시 역사는 반복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가장 많은 발언을 했던 이재정 의원이 마지막으로 주장했다.

"저는 한나라당이 거대 야당이 된 이후 제일 첫 번째 가결하는 안이 이 법안이라는데 가슴이 답답합니다. 학부모와 교원간의 깊은 갈등을 그대로 놔둔 채 일방의 주장에 편들어 이 문제를 결정한다면 훗날 커다란 비극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다시 한번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표결하기 전에 국민적 합의를 위한 노력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의사봉을 쥐고 있던 이규택 위원장의 의사는 확고했다. 이 위원장은 "나도 할 말은 많지만 '남아일언중천금'이므로 참겠다"면서 표결을 강행했다. 여당 의원들 사이에 물리적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99년 여당에 의해, 2001년 야당에 의해 : 수(數)에 따라 변하는 교육

▲ 법안이 한나라당과 자민련에 의해 단독 표결 처리된 후 민주당 의원들은 미리 작성한 성명서를 발표하면서 야당을 강력히 비판했다. ⓒ 오마이뉴스 이병한
법안 통과 직후 민주당 교육위 의원들은 옆 위원장실에서 미리 작성한 '국민에게 드리는 글'을 통해 "교원정년연장은 교원부족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적 처방이 결코 아니며, 교원의 사기진작을 위한 본질적 대안이 될 수도 없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오히려 안정적이고 정착되고 있는 교육개혁의 후퇴로 인하여 교육현장은 물론이거니와 일반 국민들에게까지 혼란을 가중시킬 것"이라며 "'백년지대계'인 교육을 '삼년지소계'로 만들어 버렸다"고 비난했다.

반면 이재오 한나라당 총무는 1층 원내총무실에서 "교육공무원법 표결처리는 거대야당의 수적 횡포도 아니고 국민을 의식하지 않은 것도 아니라 99년 당시 3당 합의대로 되돌린 것"이라며 "앞으로 교원수급이 나아지고 교단의 자존심이 설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오늘 잘못된 교원정책을 바로잡는 첫 번째였다"면서 "앞으로 우리 당은 기회있을 때마다 바로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법안이 통과되자 민주당 이낙연 대변인은 유감을 표하고 "두 야당이 현명한 판단을 되찾아 교육공무원법 개정안이 본회의까지 통과되지 않기를 기대한다"고 논평했다.

반면 장광근 한나라당 수석 부대변인은 "이로써 그간 교육망국정책으로 인해 피폐된 학교와 교육을 정상화시키는 단초가 마련됐다"면서 "역사적 필연이며 국회 본회의에서도 연장안을 반드시 통과시킬 것"이라고 다짐했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