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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하늘에 정부의 교육정책을 비판하는 교사들의 외침이 드높이 메아리쳤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이하 교총, 회장 이군현) 소속 교사들의 대규모 집회가 10일 여의도 광장에서 열렸다. 이는 지난달 26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위원장 이수호)의 연가투쟁이 있은 지 2주만이다.

약 2만 명이 참석한 교총 집회의 제목은 '교원 자존심 회복 및 교원파탄정책 철폐를 위한 전국교육자대회'. 교총으로서는 현 정부 들어서 98년 11월과 2000년 10월에 이어 세 번째로 서울에서 개최한 대규모 도심집회였다.

전교조와 미묘한 입장 차 드러낸 교총

ⓒ 오마이뉴스 손병관


공교롭게도 이날 한국교총의 집회장소는 전교조의 '연가투쟁' 장소와 같았고, 드러난 요구사항 또한 '공교육 강화와 교육시장화 반대'로 같았다. 그러나, 모든 단풍나무의 뿌리가 서로 다르듯 집회의 성격과 질적 차이가 컸다는 것이 두 집회를 모두 지켜본 이들의 분석이다.

이날 집회장 곳곳에서 나눠준 전국교육자대회 투쟁 속보에는 다음과 같은 요구사항이 적혀 있었다.

'엽기적인 교육정책 선거에서 심판하자'
'교단 황폐화 초래 교원정년 환원하라'
'교원 및 교원단체 정치활동 즉각 보장하라'
'초등교육 무시 중초임용 철회하라'
'교직 특성 무시 성과급제 전면개선하라'

'교원 정년 환원' 등의 구호들은 지난 전교조 집회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문구들. 물론, 전교조도 교총의 '교원의 정치 활동 보장'이라는 주장에는 뜻을 같이 하고 있지만 서로 미묘한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특히 교총은 이날 집회의 퍼포먼스에서 '정년 단축' 문제를 4대 교육 파탄 정책 중 최우선으로 꼽아 '정년 환원'에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김종필을 연호한 주최 측

이날 오후 2시 57분, 본 행사를 시작하기 직전 연단 의자에 앉아 있던 한국교총 이군현 회장 이하 16개시도 회장들이 약속이나 한 듯 일어섰다.

이날 사회를 맡은 이원희(서울 경복고 교사) 씨는 "영원한 교육계의 선배님이신 자민련 김종필 총재와 한나라당 이규택 국회교육위원장님이 들어오십니다. 김 총재는 우리 교육계의 선배님이십니다"라고 소개했다. 연단 바로 아래에는 '교육자대회를 축하합니다 자민련 총재 김종필'이라는 문구의 화환이 놓여 있었다.

이날 김 총재는 격려사에서 "선생님들이 잘 알다시피 정치, 안보, 경제, 사회 모든 분야에서 분열과 혼돈, 위기의 시대를 살고 있다. (학생들한테) 지식 위주의 교육만 하다보니 진정한 교육 개혁을 이끌어갈 리더십이 없어졌다. 그리하여 무엇이 정의이고 무엇이 불의인지, 무엇이 참이고 거짓인지 모르게 됐다. 무엇보다 인성교육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김 총재는 "정부는 긴 안목을 갖고 일해야 한다. 65세가 되면 선생님들이 나이 많아서 가르칠 수 없는가? 교원정년단축은 재고해야 한다...(중략)... 학급당 학생수 35명은 2005년까지 연기해야 하고, 사립학교법 개정도 찬성할 수 없다...(중략)... 자립형 사립고는 확대 실시하는 방향에서 모든 여건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5분 여의 연설 동안 24차례의 박수가 터져 나오고 사회자의 선창에 맞춰 '김종필' 연호가 대회장에 울려 퍼졌지만, 교육대학협의회 소속 대학생들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교대협의 관계자는 "교대협 학생들은 양대 교원단체 중 전교조와 보다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다. 교총의 교원 정년 단축 등의 주장에 대해서 교대협 내에서도 이견이 만만찮았지만, 선배 교사들과 고민을 같이 한다는 취지에서 집회에 참석했다"고 설명했다.

'김종필' 연호 속에 시큰둥한 대학생들

▲국회 교육위원회 이규택 위원장(한나라당)과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의 연설.
ⓒ 오마이뉴스 손병관
국회 교육위원장을 맡고 있는 한나라당 이규택 의원도 "이회창 총재를 대신해 여기에 오게 되었다"고 소개한 뒤 현 정부의 교육정책을 한껏 비판했다.

이 의원은 "교사들의 억장이 무너지고 홧병에 걸린 것은 김대중 정권과 이해찬 전 교육부 장관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데 맞습니까? 우왕좌왕하는 교육정책 속에 김대중 정권의 무식이 탄로났다"고 정부를 맹비난했다.

이어 이 의원은 "한나라당에서는 이해찬 전 장관을 교육청문회의 증인으로 세울 것이다. 자민련과도 협조해서 이번 회기 내에 교원정년을 반드시 연장하겠다...(중략)...한나라당이 집권하면 교육재정을 현행 4.5%에서 6%로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이 의원은 "이곳에 오기 전 교육부와 협의하여 '중초 임용' 실시를 일시 유보토록 했다"고 공개했다.

교총은 과연 '무엇을 위한 정치 참여'를 소리높이고 있을까. 이날 대회장 입구엔 '무너진 교원 자존심, 정년으로 극복하자'란 현수막이 참석자들을 맞았다. 정년을 앞둔 교장·교감들 주도로 만든 교원정년원상회복 비상대책위원회에서 내건 것.

교원정년원상회복 비상대책위원회 강호봉 위원장(서울 잠신고 교장)은 "교원들이 현실 정치에 뒷짐을 져서는 현실을 변화시킬 수 없다. 이제는 선거 때마다 운동원이 되어 뛰어다녀야 한다"고 '교총의 정치참여'를 역설해 눈길을 끌었다. 강 위원장은 그러나 구체적인 정치 참여 방안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아 차기 대선을 앞둔 교총의 진로에 대해 여운을 남겼다.

황석근 한국교총 대변인은 대회 말미에 "13일 정치활동위원회가 발족하기로 한 이상 교총은 정치 활동을 본격화할 것이다. 올바른 교육정책의 수립을 위해 교총은 내년 선거에도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고 말했다. 황 대변인은 "이제 교총도 드러내놓고 정치 활동을 한다는 의미냐"는 물음에 그는 고개를 끄덕여 긍정을 표시했다.

이날 연단 뒤에서 집회를 말없이 지켜본 전교조 정책실의 핵심관계자는 이번 집회에 대해 "사견이지만 교육부가 정신을 차려야 한다. 신자유주의 시장 정책에 따른 공교육의 황폐화교육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교총 집회는 '공교육 붕괴'의 본질적인 문제보다는 정년단축을 환원하라는 요구에 초점을 맞춘 것 같다. 교원 집회가 보수정치권의 선전장이 된 것 도 눈에 거슬린다"고 논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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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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