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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의정부 한마음 수련장. 4월 2일(일) 저녁 8시부터 <2000년 총선시민연대>(이하 총선연대) 활동의 중요한 분수령이 될 낙선대상자 명단 선정을 위해 전국에서 약 150여명이 모여들었다.

자리가 자리인 만큼 중앙 총선연대가 가장 신경을 쓴 것은 보안이었다. 운영국 상근자와 자원봉사자를 중심으로 보안팀을 꾸려 혹시나 명단이 누출되는 것을 막는데 신경을 곤두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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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장 안팎의 풍경들

보안을 유지하라. 보안팀의 치밀한 활동

보안팀은 회의가 진행되는 수련원 1·2층 안에는 핸드폰전파 방해기를 설치, 건물에 들어서는 순간 핸드폰은 무용지물이 되었다. 그래도 안전을 기하기 위해 모든 참석자로부터 핸드폰을 수거하였고 승용차 키도 일괄 보관하였다. 핸드폰은 기자회견장인 정동 이벤트홀에 도착해서야 원 주인에게 지급되었다.

보안팀은 정문을 제외한 모든 출구를 봉인하였고, 정문에는 양세진 운영국장이 상주하여 출입을 통제하였다. 4인이 일조가 되어 한시간씩 교대로 밤새 불침번을 섰으며 창문을 통한 정보 유출에 특히 신경을 썼다.

이러한 보안활동에 대해 지역 총선연대 관계자는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너무하는 것 아니냐", "우리를 못 믿겠다는 것이냐",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 하지만 지난번 2차 공천반대인사 발표때 MBC에 명단이 유출되어 오해를 샀던 총선연대로서는 보안상 어쩔 수 없었다는 설명이다.

보안팀으로 밤새 한시간 정도밖에 자지 못했다는 자원봉사자 최일(20, 호서대 경영산업심리학부)씨는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어 힘들었다"면서도 "정말 보람이 있었다"고 말했다.

치열한 회의, 무슨 논쟁이 있었나

3월2일 밤 9시가 다 돼서야 시작한 회의는 3일 새벽 3시가 넘어서까지 계속됐다. 낙선대상자 선정에서부터 집중 지역 선정, 집중 지역 공개여부, 납세 부정자 포함 여부 등에 대해 뜨거운 논쟁이 계속되었다.

중요한 논쟁점 중 하나가 이인제, 이한동 등 지역구에 출마한 당 지도부를 명단에 넣느냐는 것이었다. 치열한 논쟁이 오간 결과 정치지도자에 대해서는 낙선대상자 명단에는 포함시키지 않는 대신 공개서한을 통해 강력한 문제제기를 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총선연대는 기자회견에서 <여·야 정치지도자들에게 보내는 서한(낡은 정치에서 벗어나 정치개혁에 앞장서십시오)>을 발표, 김대중·김종필·김영삼·이회창·이한동·이인제 등 여야 정치지도자의 실명을 거론하며 정치개혁을 촉구했다.

논쟁이 됐던 다른 하나는 납세, 재산관련 대상자의 명단 포함 여부였다. 문제는 4명(김봉호, 이인구, 서훈, 신영국)을 제외한 다른 많은 사람이 납세와 재산관련 의혹의 확인이 충분치 않았다는 것. 그래서 4명만 명단에 우선 넣고 확인되는 그때그때 추가할 것인가 아니면 나중에 일괄적으로 발표할 것인가를 가지고 논쟁이 있었다.

결론은 전자인 즉각반영. 이런 과정을 거쳐 서훈, 신영국 후보가 순수하게 납세, 재산관련 문제로 낙선대상자 명단에 포함되었다.(김봉호, 이인구 후보는 이미 공천반대인사 명단에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사유에 납세·재산관련 부분이 추가된 수준이다.)

또다른 논쟁점은 22개 집중 낙선운동지역을 언론에 공개할 것인가 아니면 내부적으로만 정해놓고 공개는 하지 말 것인가였다. 낙선운동 집중지역을 선정하여 역량을 집중시키는 것에는 대해서는 이미 결정된 사항이었지만 이것을 기자회견때 공개할 것인가 말것이가는 또다른 문제이다.

이 명단이야 말로 '살생부 중의 살생부'이기 때문이다. 논쟁 끝에 결론은 '정면돌파'. 기자회견때 86명의 명단과 함께 22개 낙선운동 집중지역이 발표되었고 자료집에도 분명히 명기가 되었다. 이것에 대해 총선연대 정대화 정책대변인은 "전설의 야구왕 베이브루스가 예고를 하고 홈런을 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여러 가지 중요한 논쟁이 있었다고 회의 참석자들은 전한다. 가장 큰 논쟁점들은 86명의 명단 포함·제외 여부. 중요한 결정은 모두 표결로 결정을 했다고 한다.

새벽 회의에서 발언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144명이었고 그중 112명이 의결권을 가지고 있었다. 총선연대 박원순 상임공동대표는 명단선정 과정에 대해 "10번도 넘게 표결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에피소드 하나 - "지독하다! 보안팀"

3일 오전 8시경 한마음 수련원을 나와 서울 정동 이벤트홀로 이동할 때 6대의 대절버스를 이용했다. 그러나 승용차를 가져온 사람의 경우에는 기자회견후 다시 의정부로 갈 수도 없는 노릇.

그래서 몇몇은 승용차를 타고 서울로 향했는데, 이때 보안팀 등장, 승용차 한 대마다 한명씩 동승했다. 핸드폰은 아직 지급하지 않았지만 차안에서 '혹시나…'했기 때문.

그러나 이에 대해 몇몇 지역대표가 강력히 반발했다고 한다. 사실 기분이 나쁘기도 했었을 것. "차안에서까지…. 나를 정말 못믿는 건가?"

이렇게 철저히 보안에 신경 쓴 결과 이번 명단발표에는 2차 때와 같은 사전 유출은 일어나지 않았다.

에피소드 둘 - "명단발표날 죽을 뻔 했어요"

새벽 4시 10분경 총선연대 실무자중 김기식, 이은아, 이태호, 이승희 4명은 자료집 인쇄를 위해 원고를 들고 한마음 수련원을 나와 서울 을지로 인쇄소로 향했다.

그러나 인쇄소에 도착하자 왜 그리 오타가 많이 나오는지. 하나를 고치면 하나가 나오고 하는 바람에 밤새 서울에 있는 모 숙소와 인쇄소를 오가야 했다.

새벽 6시 30분경. '이제는 인쇄만 남았다'하고 숙소로 돌아왔던 김기식씨와 이은아씨는 또 잘못된 부분이 있다는 전화연락을 받았다. 잠시 눈을 붙이고 있었던 그들은 또다시 일어나 비몽사몽 차를 몰고 을지로 인쇄소로 향했다.

운전을 하고 있던 이씨는 옆에 탄 김씨에게 "저 사거리에서 어디로 가면 되죠?"라고 물었고 김씨는 "쭉가면 되요"라고 답했다. 그 말에 엑셀레이터을 그대로 밟아 사거리로 들어서는 순간, 바로 옆에서 거대한 버스가 맹렬히 달려오는 것이 아닌가.

"으악!"
이씨는 잠이 확 깼고, 무의식중에 엑셀레이터를 세게 밟았다.

"만약 그때 브레이크를 밟았다면 죽었을지도 몰라요. 정말 아찔했습니다."

다행히 버스는 승용차의 뒷부분과 충돌했고 차는 라이트와 범퍼만 나갔다. 자신들의 과실이 분명했기에 버스아저씨께 계속 머리를 숙이고 연락처를 준 것은 물론.

목숨이 왔다갔다하게 했던 교정 사항이 중요한 것이었냐는 질문에 김씨는 말했다.
"사소한 것이었어요. 명단에 안들어갈 사람이 들어갔다거나 들어갈 사람이 안들어간, 그런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 소속이 잘못 됐다거나 정당별 집계를 잘못 했다거나 하는 것이었어요."

그렇게 밤새 교정을 봤는 데도 결국 자료집에 몇몇 옥에 티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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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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