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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립대학 분규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룬 동아일보 4월 17일자 1면 특집기사
사립학교 학내분규 현황과 문제점을 다룬 동아일보 4월 17일자 특집기사 <과격 학내분규 상아탑 멍든다>가 "사립학교 내분의 본질을 호도한 편파왜곡 보도였다"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이 기사의 논조가 초판과는 달리 막판(배달판)에서 학생들의 과격시위 부분만 집중부각시키는 쪽으로 바뀌어 이 과정에서 <동아> 사주-경영진이나 데스크의 입김이 작용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일고 있다.

동아일보는 이날 1면과 3면을 할애해 각각 머릿기사와 3단 해설기사로 사학분규 사태를 다뤘다.

이중 1면 기사는 초판과 막판이 거의 동일했다. 총장실 점거 등을 사례로 들면서 주로 학생들의 과격한 투쟁양상을 문제로 삼았다.

그러나 3면은 초판과 막판이 크게 달랐다.

16일 저녁 6시경에 인쇄돼 서울시내 가판에 깔린 초판신문의 관련기사와 그것을 옮겨놓은 동아닷컴 기사는 분규가 일고 있는 학교당국과 학생·교수협의회 등의 입장을 비교적 객관적으로 소개했다. 주로 재단측의 잘못이 분규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되었다. 제목은 "대학분규 위험수위, 재단-교수-학생 막무가내"로 '양비론'적이었다. 이런 입장은 '학생탓'을 주로 적은 1면과는 상반되는 것이었다.

▲동아일보 4월17일자 3면. 기사에 거론된 대학의 학생과 교수들은 이 기사가 "사건의 원인과 본질은 도외시한 채 문제재단의 입장만을 편들고 있다"고 반발한다. 실제로 이 기사는 취재과정에서부터 문제점을 안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 일부재단은 교원임용과 학사행정에 깊숙이 개입해 학생들과 교직원의 반발을 사고 있다. 교육부가 해임했던 박원국 이사장이 대법원 확정판결을 통해 복귀한 뒤 박이사장 퇴진을 주장해온 일부 교수들을 재임용에서 탈락시켜 문제가 되고 있는 덕성여대는 대표적 사례..."(17일자 초판 3면 기사)

큰제목 밑에 뽑은 작은 제목들도 △재단, 학교재산 유용...교수재임용 좌지우지 △교수, 총장단임제 위반 등 반발 학교와 대립 △학생, "등록금 인상 절대 불가" 매년 실력행사 등을 달고 주로 인하대, 아주대, 청주대 등 분규학교의 사례를 소개했다.

그러나 17일 아침 배달판 신문에서는 3면 기사의 제목이 "일부학생 학사 극렬 개입 사태악화"로 바뀌면서 논조가 대폭 수정됐다. "어느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학생들이...막무가내식 주장을 펼치는"것으로 둔갑한 것이다.

"문제는 어느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 대개의 경우 학생들이 그들의 수준과 정도를 뛰어넘어 무작정 학사행정에 개입하려 하거나 막무가내식 주장을 펼치는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는 점이다."(17일자 배달판 3면 기사)

작은 제목도 △"교육환경 단기간내 개선" 무리한 주장 △대다수 대학 등록금 인상 거부 연례행사 △시위불참 학생들 "우린 학내갈등 피해자" 등으로 변경됐다. 주로 재단측의 원인제공을 지적한 초판기사 내용의 절반 이상이 삭제됐으며, 대신 '일반학생들의 입장', '학교측 입장', '대책은 없나' 등으로 새롭게 편집해 학생들의 잘못을 부각시킨 것이다.

결국 초판에서는 1면에서만 '학생탓'이었고 3면에서는 '주로 재단탓'이었던 것이 막판에서는 1면과 3면 모두에서 '학생탓'이 되어버렸다.

이렇게 되자 기사에 언급됐던 학교 학생-교수들이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덕성여대의 경우 총학생회 및 교수협의회를 중심으로 동아일보측에 "보도경위 해명 및 사과를 요구하겠다"고 나서고 있으며 숭실대 교수와 학생들도 "동아일보 기사는 사태의 본질을 잘못 짚었다"고 반발했다.

특히 3면 배달판 기사에서 "학생들의 총장실 점거 등은 상징적 행동일 뿐 실질적으론 아무 효과를 얻을 수 없다"는 발언을 한 것으로 보도된 '사립학교법 개정 국민운동본부'의 이금천 사무처장의 경우 17일 기사를 쓴 기자에게 "나는 인터뷰에서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며 정식 항의하는 등 문제제기가 확산되고 있다.

초판과 막판사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초판은 대개 오후 6시경에 편집국에 전해진다. 막판은 밤 11시 정도에 최종원고가 마감된다. 17일자 3면 해설기사의 '개벽'은 이 너댓시간 사이에 이뤄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짧은 시간 동안의 기동력 있는 개벽은 누구에 의해 이뤄졌을까? 해당 기사를 쓴 기자는 구체적인 코멘트를 하지 않았다.

취재팀의 일원이었던 한 기자는 "신문의 논조가 바뀐 것이 아니라 보강된 것"이라며 "학생들의 과격성을 부각시키자는 논의는 없었으며 모든 기사는 해당기자가 작성한 것"이라고 말했다.

동아일보의 한 관계자도 "기사가 편파적이라는 지적이 본사로 직접 들어온 경우는 한 건도 없었다"며 "(초판기사와 배달판 기사의 논조가 바뀐 것에 대해)그렇게 고치는 게 기사의 충실도와 완결성이 높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동아일보 편집국 내부에서는 구체적인 '경위'가 흘러나오고 있다. 이에 따르면,

문제가 된 기사는 편집국의 자체기획이었는지 '위'에서 아이디어가 제시된 것인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김학준 사장의 '제보성 의견'이 반영된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인천대 총장과 교총 2대 회장을 역임했던 김학준 동아일보 사장은 지난 주 말 간부직원들에게 "대학가가 너무 몸살을 앓고 있는 것 아니냐"며 대학분규 관련 기사도 다뤄볼 만하다는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어찌되었든 사건팀에서 16일(월) 오후까지 취재한 기사는 '양비론'적이었다. 이를 반영하듯 17일자 초판은 1면은 '학생탓'이, 3면은 '재단탓'이 부각되었다.

그러나 초판을 평가하는 16일밤의 '간부회의'에서 "학생들의 과격성을 부각시키는 것으로 통일하자"는 결정이 내려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결정이 간부들의 자체 판단이었는지 아니면 '제보성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이야기되는 김학준 사장이나 사학재단(고려중앙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김병관 명예회장측의 입김이 작용했는지는 불분명하다.

또 그런 결정이 내려진 후의 3면 해설기사 다시쓰기가 데스크에 의한 것이었는지 해당기자에 의한 것이었는지도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편집국의 여러 갈래에서 흘러나오는 이같은 '경위'는 취재현장에 가 본 적이 없는 간부들이 책상에서 편파왜곡 시비를 불러일으킨 '입장통일'을 결정했다는 점에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한 편집국 기자는 "현장 기자의 종합취재가 몇몇 데스크의 책상머리 결정에 의해 꺾인 이런 사례야말로 '전통의 동아일보'의 경쟁력을 무너뜨리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논조뿐 아니라 초판과 막판은 취재원도 완전히 달라졌다.

초판에서는 인하대 교수협, 아주대 교수협, 숭실대 총학생회와 교직원, 대전대 학생회 등 사학내 단체나 학교측의 공식입장을 주로 다룬 반면 배달판 기사는 대부분 덕성여대의 한 학생, 숭실대의 한 학생, 단국대의 한 교수, 서울시내 한 대학 재단관계자, 경찰청의 한 고위관계자 등 '드러나지 않는 개인 취재원'을 언급하고 있다.

배달판에서 새로 등장한 취재원을 밤 사이에 새로 취재한 것일까? 아니면 애초에 취재해 두었지만 본질이 아니다 싶어 기사화하지 않았던 이들의 입장을 되살린 것일까?

사설에서 재확인된 동아일보의 '편향된' 입장

사학분규의 원인을 '과격학생탓'으로만 돌리는 동아일보의 '과격한입장'은 다음날인 18일자 사설에서 더욱 잘 드러난다. 사설은 "대학사회 폭력행사 안된다"라는 제하에 "대학생들의 과격행동이 빈발하고 있다"는 내용으로 대부분의 지면을 할애했으며, 사립학교 재단의 문제점으로는 "일부 재단의 불투명하고 독단적 경영과 학교운영이 학생들의 과격행동에 빌미를 제공..."이라는 단 한 문장뿐이었다.

"학생들이 학사행정에 물리력으로 개입하고 나서면서 학내문제가 풀리기는커녕 더욱 복잡하게 꼬인다. 사제간의 기본적인 윤리마저 실종되고 있다. 집단행동은 수업파행으로 이어져 결과적으로 공부하려는 대다수 학생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 우리는 특히 일부 학생들의 과격한 움직임의 뒤에는 어떤 외부적인 힘이 작용하는 게 아니냐는 재단이나 학교관계자들의 걱정을 흘려버릴 수 없다. 요 몇 년새 대학사회에서 학생들의 목소리를 커지는 반면 재단이나 학교당국, 교수의 힘은 한없이 약화되고 있다."(18일자 사설)

"왜곡·편파보도 가만 두지 않겠다"

17일자 동아일보 기사가 분규중인 사립학교에 미치는 파장은 적지 않다. 기사에 언급된 학교의 학생, 교수들은 "학내분규의 본질을 왜곡했다" "사학재단 쪽으로 논조가 편향됐다" "사립학교법 개정전에 여론몰이를 하겠다는건가" "사실과 틀린 부분이 있다"고 주장하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이금천 사립학교법 개정 국민운동본부 사무처장은 "동아일보가 내 말을 왜곡인용했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이사무처장에 따르면 그의 실제발언은 "등록금을 둘러싼 학생들의 투쟁이나 재단비리, 인사비리를 둘러싼 투쟁은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등록금과 관련하여 학생들이 요구하는 대화나 정보공개는 재단에 의해 무시되고 이것이 결국은 학생들의 장외투쟁을 초래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말은 "학생들의 총장실 점거 등은 상징적 행동일 뿐 실질적으론 아무 효과를 얻을 수 없다"고 둔갑했다고 이 처장은 주장했다. 그는 동아일보측에 "정보악용에 대한 사과"와 "입장을 밝힐 수 있는 지면 할애"등을 주장하고 있다.

또 '총장실에서 집기를 들어내는 사진'이라며 단국대의 사례가 실렸는데 이는 총장실 복도에서 바리케이드를 쌓고 있는 장면이었다는 것이 학생들의 주장이다. 한 단국대 학생은 "학생들의 폭력성을 의도적으로 부각시키기 위해 사진설명을 왜곡했다"고 주장하고 해당 사진기자와 동아일보측에 공식 항의를 전달할 예정이다.

덕성여대 성낙돈 교수는 "동아일보가 이제까지 사립학교에 대해 재단측의 편을 드는 듯한 기사를 써온 것은 사실이지만 어떻게 1면과 3면 기사를 이런 식으로 쓸 수 있느냐"고 비난했다.

또 신상전 덕성여대 교협회장은 "지금 임시국회에서 민주당이 제안한, 교원 임면권을 총장에게 이양하는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한 사립학교법 개정안이 통과되려 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나온 동아일보 보도는 여러 가지 의문을 남긴다"며 보도경위에 대한 해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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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성여대 한상권, 오영희 교수 <동아>'학내분규 기사' 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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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23년차 직원. 시민기자들과 일 벌이는 걸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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