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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총
그의 카메라에는 피가 튀었다.
지난 10일 대우자동차 노조 사무실이 있는 남문으로 향하는 길 앞에서 알몸의 대우차 해고자들은 경찰의 곤봉과 방패에 무방비 상태였다. 머리가 깨지고 코에서는 피가 흘렀다. 여기저기에서 고통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그 비명이 나오기까지 세상은 무심했다. 2월 16일 대우차 조합원 1750명의 해고 이후 60여일이 지나면서 대우차 문제는 사람들 뇌리에서 점점 잊혀지고 있었다. 언론도 이제 이들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날 경찰의 폭력은 두 명의 해고자 뉴스게릴라에 의해 비디오로 촬영돼 인터넷을 타고 세상에 알려졌다. 민주노총 서버 접속자수가 사흘만에 153만명에 이르렀다.

경찰의 노조원 폭행장면을 세상에 알린 장본인은 바로 대우차 노조 영상패의 김영석(37) 씨와 이춘상(40) 씨. 이들이 찍은 영상물은 지금 김대중 정부를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14일 오후 2시 부평역 집회를 앞두고 산곡성당에서 만난 김영석 씨는 무척 피곤해 보였다. 10일 사건이 터지고 3일 동안 하루 평균 3시간씩 밖에 못 잤다는 김씨는 파급력이 이렇게 클 것을 예상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처음 촬영할 때 그런 것 생각할 겨를이 없었어요. 말로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폭력 그 자체였어요. 저렇게 맞으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바닥에 피가 흥건이 고이고, 군홧발에 짓밟히고 찢겨진 옷을 보면서 그 자리를 뜰 수 없었습니다."

산곡현장에 돌아와서는 분한 마음에 어떻게 하면 이 사실을 알려낼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는 그는 병원에 가서 다친 동료들을 인터뷰 한 이후 곧바로 와서 작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기자회견 때 보여줄 테이프를 만들기 위해 밤을 꼬박 새웠다.

▲대우차 노조 영상패 이춘상 씨. 그는 사건 당시 카메라로 경찰을 내리쳐야 하나, 계속 카메라를 찍어야 하나 고민해야 했다.
ⓒ 오마이뉴스 박수원
김씨와 함께 작업을 진행했던 이춘상 씨는 피범벅이 돼 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던 동료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80년 광주를 목격했었다는 이씨는 당시 상황에 대해 "광주 때보다 더 했으면 더 했지, 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말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었어요. 렌즈로 피가 튀는데 계속 카메라만 들고 구경해야 하나, 카메라로 경찰을 내리쳐야 하나, 정말 고민스럽더군요"

이씨는 "당시 경찰이 KBS, MBC같은 공중파 방송들이 없었기 때문에 아무 거리낌 없이 그런 일을 저질렀던 거 아니겠냐"며 "공중파 방송들은 아마 그 장면을 찍었어도 편집해서 내보냈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부평 비디오'는 인터넷시대에 '모든 시민은 기자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 일대 사건었던 셈이다. 주류 언론이 아무리 눈을 감거나 외면한다 하더라도 '뉴스게릴라'가 잡은 진실이 세상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숨길 수 없는 객관적인 사실이 인터넷을 타고 보도된 이후 김씨와 이씨는 테이프를 요구하는 공중파 방송들에게 두말 없이 테이프를 복사해줬다.

이춘상 씨와 김영석 씨는 이번 사건이 절대 우발적 사건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경찰의 폭력은 이번뿐이 아니었습니다. 지난 2월에도 경찰이 폭력을 휘둘러서 코뼈가 부러지고 실명 위기에 처한 동료도 있습니다. 그런 상황인데 흥분한 전경들의 잘못으로, 그리고 부평경찰서장 직위해제로 상황을 넘기려는 것은 너무 무책임한 것 아닙니까? 왜 부평경찰서 서장이 '정권이 법보다 앞선다'는 말을 했겠습니까 ?"

경찰 12명도 노조원들에게 폭행을 당했다는 주장에 대해 김씨는 "물론 몸싸움은 있었죠. 하지만 경찰들은 중무장을 한 상태였는데 맨 몸뿐인 조합원이 무장한 경찰과 상대가 되나요"라며 경찰 이야기는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대우차 노조 영상패 김영석 씨
ⓒ 오마이뉴스 박수원
이춘상 씨와 김영석 씨는 대우차에 14년 동안 근무했다. 노조 문예패에서 풍물 활동을 시작한 둘은 97년에 노조 영상패를 만들었다. 집에서 아이들 모습을 비디오에 담던 실력 밖에 없던 이들이 다른 동료 셋과 함께 이 일을 시작한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사진 한 장, 기록 한 순간이 아쉬운 때가 있잖아요. 노동자들이 억울한 일 당해도 증거자료 하나도 없어서 당하는 일도 많고. 그래서 카메라를 잡게 됐죠."

이춘상 씨와 김영석 씨의 활동은 밖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뿐이지 이미 나름대로 인정을 받았다. 대우차 해고자들의 고통이 MBC스페셜로 방영돼 반향을 일으켰던 '1750명의 해고자'의 상당 부분은 바로 두 사람의 작품이다.

이씨와 김씨는 다른 사람이 할 수 없는 큰일을 했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보람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이 단순한 경찰의 폭력문제로 한정되거나 경찰청장 사과로 초점이 맞춰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근본적으로 경찰 폭력이 일어난 원인이 무엇인지 국민들이 다시 한번 생각해 줬으면 좋겠어요. 왜 대우차 1750명의 해고자가 길거리로 쫓겨났는지. 그리고 왜 두 달 넘게 해고자들과 가족들이 싸울 수밖에 없는지 말이죠."

이씨과 김씨가 찍은 영상물은 1000여개의 테잎에 담겨 전국에 흩어져 있는 민주노총 소속 노조에 전달되고 있다.

"저희도 '정리해고 분쇄'가 적힌 머리띠를 매고 '공장으로 돌아가자'는 조끼를 입고 싶지만 영상패에게는 규칙이 있어요. '머리띠와 조끼를 절대 착용하지 않는다.' 그게 동료들에게 제일 미안해요."

직장에서 쫓겨난 지 두 달이 지났다. 그러나 이춘상 씨와 김영석 씨는 오늘도 산곡성당으로 집회장으로 해고된 동료와 가족들이 있는 현장이면 어디든 달려간다. 다시 일터로 돌아갈 그날을 기약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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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오마이뉴스 정신을 신뢰합니다. 2000년 3월, 오마이뉴스에 입사해 취재부와 편집부에서 일했습니다. 2022년 4월부터 뉴스본부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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