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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3일 새벽 오마이뉴스 이메일을 통해 한 현직기자가 장문의 출입기자실 체험기를 보내왔습니다. 원고지 70매 분량의 글에는 고뇌와 반성이 담겨 있습니다. 아래 글은 그 전문을 35매 분량으로 축약한 것입니다. 시간이 허락되시면 전문을 모두 읽어보길 권합니다. 전문은 기사 중간에 링크되어 있습니다...편집자주


"안타깝습니다. 부끄럽습니다. 하지만 이제 정말 달라져야 합니다."

지난 3월말 인천공항 기자실에서 벌어진 오마이뉴스 기자 축출사건을 접한 기자의 솔직한 느낌은 그랬습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라는 후배기자에 대한 안타까움.
"아직도 우린 이런 구태를 반복하고 있나. 그동안 뭘 했나"라는 부끄러움.
그러다 "더 이상 이런 구태는 반복되지 말아야 한다"는 다짐.
이렇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습니다.

저(필명 '김정인'은 저의 가명입니다)는 지금 한 중앙일간지에서 일하고 있는 현직 기자입니다. 그 동안 일선 경찰서는 물론 여러 행정부처를 두루 출입했습니다.

이 사건의 본질은 이유야 어떻든 “출입기자실 오간사는 왜 인터넷신문 최기자를 쫓아냈나. 그와 동료 기자들은 어떤 생각을 하면서 그를 내보내는 데 동조했나, 나아가 기자실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데 있습니다.

사실 오기자가 취한 그날의 행동은 한마디로 득은 없고 실만 가득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네티즌 여러분. 오기자를 더 이상 꾸짖지 마십시오. 이제 이만하면 족합니다. 문제의 본질은 오기자 개인의 인격과는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습니다.

인천공항 소속 기자들은 물론 많은 기자들은 아직도 이 사건의 본질에 대해 문제의식이 없는 듯합니다. 숱한 신문의 미디어면조차도 이 사건을 외면하는 걸 보면 그것을 알 수 있고, 기자실에서 이야기하는 많은 현직기자들의 얘기에서도 기자실에 대한 그들의 문제의식은 박약합니다.

이는 바로 그들 자신이 수혜자이자 기득권자이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그들 자신이 한편으로는 피해자인 줄 모르고서요.

심지어 언론개혁을 외치는 한겨레 본지조차 기자실에 대해 여전히 아무런 목소리조차 없고 각종 언론 유관 시민단체도 민언련을 제외하면 관망중입니다. 기자실 문제에 대해 그들은 왜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않았을까요.

더 큰 언론개혁의 화두, 즉 편집권 독립이나 언론사주의 문제, 족벌언론 문제 등 때문이었나요? 이에 따른 전술적 유보를 하고 있기 때문인가요?

그러나 분명한 건 기자실 문제 또한 언론개혁의 대상이란 것입니다. 기자실 문제를 바로 잡지 않고서는 진정한 언론개혁은 매우 힘들 것입니다.

나도 꿀맛에 젖어버린 기득권자였다

사실 개인적으로 저는 기자실이란 공간을 통해 이뤄지는 취재시스템에 대해 진작부터 문제점이 많다는 점을 느껴왔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이를 공론화하는 데 나서지 못했습니다. 용기의 부족도 있었지만 사실은 저 자신이 이미 그 꿀맛에 젖어버린 기득권자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점에서 선배기자로서 되레 오기자에게 미안하다고 해야 할 것같습니다. 선배들이 고치지 못한 잘못된 관행이 결국 후배들에게까지 이어져 오늘날 그가 본의 아니게 뉴스의 인물이 돼버렸으니까요.

기자실의 실체에 대해 잘 알 수 있는 그림은 우선 과천의 점심시간 풍경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낮 12시쯤되면 과천 청사 각 부처 건물 뒷편에는 내로라하는 인근 음식점 차량들이 대기하고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바로 기자들을 모시기 위해 각 부처 공보실에서 부른 차량들이죠.

기자실에 있던 기자들이 속속 내려와 이 차량에 오르면 차량은 출발합니다. 각 부처 공보실은 점심시간마다 이렇게 기자들을 모십니다. 물론 경비는 각 부처에서 담당하는데, 부처마다 사정이 다르지만 장관 판공비나 각 국장 판공비를 갹출해 쓰는 경우도 있고, 한때 한 부처의 경우에는 소속 산하 기관에게 그 경비를 갹출해 부담하도록 한 경우도 있습니다.


한 중앙일간지 기자의 출입기자실 체험기(전문)


예컨대 소속기관에서 기자실에 와서 브리핑을 한 뒤 점심을 사도록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기자들은 으레 이런 대접받기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죠. 이런 관행을 통해 취재원이, 즉 여기선 행정부처나 출연기관이 되겠죠, 기자들에게 자신들이 홍보할 거리를 제공하고 기자들은 이를 입맛에 따라 기사로 내보내죠.

매사 그런 건 아니지만 대체로 신문에 나오는 발표기사는 이런 식의 과정을 통해 이뤄집니다.

요즘에는 적어도 예전과 같이 기자실이란 공간을 통해 촌지가 오고가지는 않지만 기자들에 대한 식사모시기 관행은 여전히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밥 한끼 먹는 게 뭐 대수냐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취재원과의 식사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그게 아닌 것이 점심시간의 이 풍경은 기자실의 특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하나의 일례입니다. 취재원 특히 정부기관 즉 권력과 일정한 비판적 거리를 가져야 하는 기자들이 일상적으로 이들로부터 그 어떤 특혜를 받는 공간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걸 이 점심시간은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공보관으로부터 제공받는 '일용할 양식', 기사

취재원 특히 정부기관들은 이런 일상적 편의 제공을 통해 기자들에게 자신들의 입맛에 따른 보도자료를 내거나 아니면 아예 내지를 않습니다. 사실 이는 눈에 잘 보이지 않아 기자들도 선뜻 공감을 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기자실에서 간사를 한 이들이거나 유독 기자실 폐해에 관심을 기울인 기자라면 또렷이 인식할 수 있습니다. 기자실이란 공간이 약이 아니라 독이라는 것을.

각 부처나 기관의 공보실은 언론을 위해 늘 양식을 준비합니다. 이 양식은 기자들에게는 일용할 양식이죠. 취재를 해 기사를 작성해야 하는 고달픈 그들에게 그저 기자실에 앉아 있으면 그냥 쓰라고 가져다주는 양식인 것입니다. 쉽게 쓸 수 있는 꺼리인 것입니다.

기자들은 적어도 이런 양식이 있을 때는 움직이려고 하지 않죠. 그들도 인간인 만큼 일할 꺼리가 없을 때야 움직입니다. 그런데 이 일용할 양식이 어떻게 마련될까요.

이들 양식은 공보실 공보관과 간사가 마주 앉아 결정하죠. 공보관이나 공보담당관은 기관의 주요 결정사항, 알려야 할 사항은 정리해 간사에게 내놓고 간사는 이들을 받아보고 이른바 보도시점을 상호 결정합니다. 이른바 엠바고 설정을 말합니다. 간혹 이 과정에서 공보담당자와 간사 사이에 갈등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좋은게 좋다라는 식으로 흘러갑니다.

아무튼 이렇게 뉴스가 사실상 발생이전부터 공보관과 간사의 공동기획에 의해 결정되고 있죠. 대부분의 발표 기사는 이렇게 해 나옵니다.

어쨌든 부처 공보관은 어떤 한 정책이 뉴스를 탈 경우 어떤 파장이 있고, 무엇이 유리한 지 자로재듯 한껏 재어보고 결정합니다. 이 과정에서 자신들에게 불리한 것들을 걸러냅니다. 때로는 판단을 잘못해 언론에 두드려 맞는 경우도 있지만.

기자들은 따지고보면 기자실을 통해 정보를 제공하는 취재원의 원격조종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기자실이란 공간은 뉴스원들에게 보다 적극적으로 기자들을 관리하도록 하기에 좋은 공간입니다. 전문적인 홍보요원을 통해서 자신들의 구미에 맞춘 단편적인 사실의 나열에 그치도록 하는, 의제된 뉴스를 보도하도록 하는 뉴스원들의 수에 기자들은 그저 취해있는 것입니다. 기자실은 취재원과 기자들의 공존공생이란 이름의 담합을 가져다주는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는 것입니다.

뉴스원이야 그러는 건 당연하겠죠. 문제는 기자들이죠. 그리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이어집니다.

천편일률의 보도는 주지하다시피 바로 20여개의 언론사 기자들이 한 자리에서 모여 이러쿵 저러쿵 눈치보고 때론 의논하는 과정을 통해 이뤄지기 때문에 빚어집니다.

심한 경우 일부 게으른 기자들은 후배기자나 타 언론사 기자가 먼저 작성한 기사를 보고 그대로 베껴놓고 적당히 토씨만 바꾸는 경우도 있습니다. 요즘처럼 컴퓨터가 발달한 환경이 더더욱 이런 편리를 가능케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신문이 그 신문이고 그 방송이 그 방송인 것도 다 이런 기자실이란 공간의 특성이 상당히 기인하는 요소입니다.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 못하는 후발 매체 기자들

따지자면 기자실 제공 자체도 그렇습니다.

인천공항기자실의 경우에서 보듯 그 어떤 기자실도 입주 언론사에서 임대료를 내는 경우는 없습니다. 다만 사용료란 명목으로 그것도 근년 들어서 1인당 월 3만원 정도로 돈을 내고 있습니다.

이 돈은 기자들의 간식이나 전화비 정도에 불과한 돈입니다. 따라서 기자실 사용을 중앙기자들이 이런 사용료를 근거로 주장한다면 별로 설득력은 없습니다. 정부기관의 기자실의 경우에는 사실상 국민의 세금으로 운용되는 것이라고 봐야하고 기업의 기자실은 물론 해당기업이 전적으로 부담하고 있습니다.

그런만큼 기자실은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것입니다. 일부 기자들이 들어와라, 마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마치 주인인양 행세합니다.

신생매체가 생길 경우, 그들은 일단 어떻든 기자실에 들어오고자 합니다. 그랬을 때 각종 취재편의를 제공받을 뿐더러 해당부처 취재가 용이하죠.

제가 한 때 출입하던 부처에서도 한 신문의 출입여부를 두고 투표를 한 적이 있었죠. 당시 대부분의 기자들이 불가판정을 내려 당시 이 신문 기자는 한동안 공보실 등을 떠돌았죠. 그러다 이 기자는 뒤늦게 겨우 은전(?)을 얻어 등록기자가 된 경우도 봤습니다.

당시 한 때 서러움을 받았던 후발 매체의 일부 기자들의 경우, 이미 기자실의 정식 등록기자가 된 뒤에는 개구리 올챙이시절 생각 못하듯 침묵하더군요. 이는 기자실의 등록기자와 비등록기자 사이에 받는 대우의 차이 때문입니다.

어중이 떠중이 다 출입할 수 없다?

기자실과 관련해 어중이 떠중이 다 출입할 수 없다는 논리가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는 꽤 진취적인 성향의 기자들도 같은 견해를 보입니다. 이 논리에는 보따리 장수처럼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기사를 송고할 수 없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사실 이 논리는 기자실과 아무런 논리적 연관이 없습니다. 기자실 문제를 지적하는 이들도 이를 아예 폐쇄하자는 게 아니니까요. 기자실을 기자라면 누구나 이용 가능한 개방적 공간으로 만들자는 의견도 있으니까요.

기자와 취재원과 신뢰를 바탕으로 이뤄지는 주요 사건에 대한 엠바고가 지켜지지 못하고 무분별한 보도가 난무할 것이라는 견해도 만만찮습니다. 그러나 이 또한 어불성설입니다. 순서가 바뀌었죠. 되레 지금의 기자실 제도가 엠바고를 무분별하게 난무하면서 국민의 알권리를 스스로 제한하는 우를 범하고 있습니다. 검찰이나 경찰의 주요사건에 대한 보도 브리핑이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 또한 철저히 기득권적 논리입니다.

우선 이 시각에는 우리만이 전문가이며 양식 있는 언론인이라는 턱없는 우월의식이 내재하고 있으며 그렇지 못한 매체의 기자는 선정적이며 무분별한 보도를 일삼는 언론인이라는 비하가 숨겨져 있습니다. 이는 특히 출입기자만이 사전지식을 갖고 제대로 사안에 대해 판단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을 겁니다.

또 기자실의 기자단으로 압력을 가해야 그나마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논리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게 기자실을 몇몇 언론사 기자들만의 점유공간으로 해야한다는 합리적인 근거가 됩니까? 될 수 있다고 보십니까? 그렇다면 미국 등 선진국의 경우에는 기자단이 없어 취재가 안되는 겁니까? 그들은 제대로 보도를 하지 않고 있습니까?

진실과 사실은 기자실이 아닌 현장과 기자정신에 의해서야 겨우 얼굴을 드러냅니다.

얘기를 하다보니 기자실과 동료기자들에 대한 부정적인 얘기만 늘어놓은 것같아 속상합니다. 사실 오늘날 많은 기자들은 장시간 노동 등 여러 열악한 조건에서도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불철주야 일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노고는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여기까지 글을 쓰느라 밤을 새웠습니다. 저는 또 저희 회사를 위해 취재현장으로 달려갑니다. 다음에 시간이 되면 '출입기자실의 개혁 방안'에 대한 제 나름대로의 생각을 오마이뉴스 지면을 통해 밝혀볼 생각입니다.)


한 중앙일간지 기자의 출입기자실 체험기(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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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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