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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영화를 보러 갔습니다.
예경이가 태어난 이후 단 한번도 극장에 가 본적이 없는데 이번에는 큰 맘먹고 두 딸아이를 떼어 놓고 극장에 간 것입니다.

서울에서만 200만명 이상이 봤다는 ‘공동경비구역JSA’를 비디오 나오면 보겠다며 참고 기다렸었는데, 보고 온 사람들마다 이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 그 감동이 더 살아날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해서 뒤늦게 이 영화를 보기로 결심했습니다.

아직 어린 딸아이들을 데리고 극장에 갈 수가 없어서 직장 때문에 얼마 전부터 집에 와 있는 동생에게 아이를 맡겼습니다. 예림이(2살)는 재웠고, 예경이(5살)는 삼촌과 컴퓨터 게임을 하라며 달랬습니다.

마지막회 상영이 밤 9시40분이었는데 아내는 아이들을 오래 떼어놓을 수 없다며 계속 머뭇거리다가 영화 상영 15분 전에 겨우 집을 나섰습니다. 택시를 잡아타고 극장에 갔지만 이미 영화는 시작되었고 우리는 맨 뒷자리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제 영화를 내릴 때가 되어서인지 극장 안에는 관객이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아내와 단 둘이서 영화를 본 것이 벌써 5년 전의 일이니 영화가 주는 감동 아니고도 충분히 즐거울 수 있었습니다.

영화는 끝나고 자막이 올라가려는 순간 아내는 벌떡 일어섰습니다. 예전에는 자막이 다 올라가고 나야 영화가 끝난 것이라며 남들 다 나간 이후까지 앉아 있다가 맨 마지막에 극장 문을 나섰는데, 이번에는 영화의 잔상이 사라지기도 전에 손을 잡아 끌었습니다.

제가 영화에 쏙 빠져 있는 동안 아내는 집에 두고 온 아이들 생각만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쯤이면 예경이도 자고 있을 거야.”
“아냐, 예림이는 자다 일어나서 엄마가 옆에 없으면 찾는단 말야.”

집에 전화를 걸었더니 둘 다 잘 자고 있다며 이왕 둘이 나갔으니 마음껏 놀다 오랍니다.

“봐, 내 말이 맞지? 우리 요 앞에 카페에 가서 차 한잔 하고 갈까?”
“싫어, 그냥 집에 가자.”
“아이들 잔다니까 괜찮아.”
“그래도 언제 깰지 모르는 일이고 삼촌한테도 미안하잖아.”

아내와 한참을 밀고 당긴 끝에 포장마차에서 호떡 몇 개를 사서 그냥 집으로 향했습니다.

“다음엔 나 혼자 영화를 보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 너하곤 같이 영화 안 본다. 이럴 때 같이 영화 볼 애인이라도 하나 만들든지 해야지.”

단둘만의 외출이 이렇게 시시하게 끝나는 게 아쉬워 아내에게 싫은 소리를 했습니다. 아내는 들은 척, 만 척 아이들 생각만 하고 있는 눈치입니다.

아내는 벌써 엄마가 되어 있는데, 전 아직 아빠가 되어가고 있는 중인가 봅니다.

집에 돌아오니 아이들은 그때까지 자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극장에 갈 수 있을 나이가 되면 자주 데리고 가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때까지는 아쉽지만 비디오를 함께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겠지요.

잠자리에 누우려는데 아내가 손을 꼭 잡으며 이야기 합니다.
“그래도 오랜만에 둘이서 극장에 가니까 좋긴 좋더라.”
호떡 봉지를 잡고 있던 손이라 그런지 아내의 손이 따뜻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날은 밤새도록 그 따뜻한 손을 꼭 잡고 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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