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동아일보 A6면에는 '횡설수설'이라는 고정꼭지가 있다. 논설위원이 한가지 주제를 잡아 유려하고 감칠맛 나는 문체로 풀어나가는 칼럼이다. 꼭지 이름만 횡설수설이지 나름대로 논리가 정연하다.

그런데 지난 10월 13일 고려대 앞에서는 진짜 횡설수설이 있었다. 그 주인공은 동아일보의 회장인 김병관(66) 씨.

(동영상 보기-권동욱/임유철)

"한겨레?" 횡설수설 김이사장1

"주사파다" 횡설수설 김이사장2

YS-고대생 고대앞 대치

저지학생과 수강생의 논쟁

(열린시선 Wide Angle 제공)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학교 정문 앞에서 김영삼 전대통령과 학생 120여명이 대치하고 있을 때 고려대학교 재단 이사장이자 동아일보 회장인 김병관 씨가 세차례나 찾아왔다.

김 이사장은 김 전대통령이 타고 있던 승용차에 올라 이야기했다. 김 이사장이 밖으로 나오자 기자들의 질문공세가 이어졌다. 김 이사장은 술냄새를 많이 풍겼으며 그야말로 횡설수설했다.

김 이사장은 '(저지시위중인 대학생들에게) 주사파 애들', '논리적으로 고대는 민족고대이고 동아일보는 민족신문이니 같은 민족이다, YS를 동아일보로 모시겠다', '한겨레신문이 젊은이들을 선동하고 있다'는 등의 말을 했다.

자, 음성과 함께 김병관 이사장의 횡설수설을 들어보자.

김 이사장의 횡설수설 1
"저지 시위대는 주사파", "김정일 동지한테 CD선물 받았다"


"주사파 애들한테 분명히 전한다. 김영삼 대통령과 대화한 것을 분명히 전하고 김영삼 대통령한테 불러준 노래를…."

오디오 듣기 1

"김영삼 대통령한테 이 노래를 들려드려서 설득을 하려했더니 안돼. 주사파 애들한테 이 노래를 보여주면서 한번 대화해 보자는 거야."

"98년 10월 12일날 김정일 동지께서 나한테 준거야."

김 이사장은 저지시위중인 대학생들을 수차례나 "주사파 애들"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그의 말은 앞뒤가 맞지 않았다. 한 기자가 "김 이사장님이 하신 말을 종합해보면 시위중인 학생을 주사파라고 보시는 겁니까?"라고 묻자 "그건 아니겠지…"라고 답했다.

또한 김 이사장은 북한에서 만든 것으로 보이는 '조선영화음악' CD를 보여주며 "여기 나오는 노래 중에 '심장에 남는 사람'이라는 노래를 주사파 애기들에게 들려주며 설득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 CD를 "김정일 위원장이 98년 10월 12일 나한테 하사한 것"이라고 밝혔다. 김 이사장은 '심장에 남는 사람'이라는 노래의 가사를 줄줄 읊었다.

"오랜 세월 같이 있어서 심장에 남는 사람 없고,
잠깐 만나도 잠깐 만나도 심장에 남는 사람 있네,
아, 그런 사람 나는 소중해.
북조선 노랩니다."

도대체 이 노래가 왜 김영삼씨와 학생들을 화해시킬 수 있다는 것인지, 김 이사장의 횡설수설 속에는 그 답이 없었다.


김 이사장의 취중 횡설수설 2
"고대는 민족고대, 동아일보는 민족신문, 같은 민족아냐"


ⓒ 오마이뉴스 최승환
그 이전 김병관 이사장은 갑자기 학생들 앞으로 다가가 "고려대학은 민족대학이고 동아일보는 민족신문이다, 동아일보로 모시겠다, 이상 끝"이라고 말해 학생들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김 이사장은 기자들에게 "논리적으로 이야기해야한다"며 "고대는 민족고대이고 동아일보는 민족신문이다, 같은 민족 아니냐"고 주장했다.

오디오 듣기 2

김영삼 대통령을 만나고 나온 김 이사장은 김 대통령이 동아일보로 모시겠다는 제의를 거절했다며 "체면이 말이 아니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의 취중 횡설수설 3
"한겨레 신문, 이렇게 선동해서 되겠습니까!"


김병관 이사장의 취중 발언은 한겨레신문에 관련해서 절정에 달했다. 한겨레신문의 한 여기자가 김 이사장에게 질문을 하자 "아, 한겨레신문!"이라며 갑자기 속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냈다. 한겨레신문 정연주 논설주간이 10월 11일자로 쓴 칼럼 '한국신문의 조폭적 형태'를 복사한 것.

오디오 듣기 3

김 이사장은 한겨레신문 여기자에게 갑자기 언성을 높이며 말했다.

"일어나라, 조폭! 폭파해라, 조폭! 젊은이야, 일어나라! 사주, 타도하라! 이거아냐!"

김 이사장은 덧붙였다.

"조폭, 일어나라! 이거 아닙니까. 이렇게 선동해서 되겠습니까! (시위 학생들을 가리키며) 바로 저 학생들이 한겨레 지지잡니다. 난 그렇게 봅니다."


김병관 이사장은 고려대학교 정문앞에서 숱한 헤프닝을 벌이다 주변 사람들의 만류로 승용차에 올랐다. 김 이사장의 말 한마디한마디에 취재기자들 반은 어안이 벙벙했고, 반은 웃을 수밖에 없었다.

김 이사장의 이해할 수 없는 '고대앞 취중 횡설수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아무리 술을 먹었다고 하지만 그는 한 언론사의 사주이자 한국 대표적인 사학의 이사장이 아닌가. 또한 시간은 대낮이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0월 16일 상도동에서 가진 기자들과의 오찬에서 "김병관 회장이 나에게 와서 CD 듣자고 했다, 좋아하지도 않는 노래인데 자꾸 그랬다"며 참석한 동아일보 기자에게 "김회장에게 앞으로 그러지 말라고 그래라, 낮부터 술먹지 말라고 그래라"고 말했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