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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 다도, 사무라이, 망가, 군국주의
프랑스 = 에펠탑, 포도주, 치즈, 속물근성(스노비즘)


다른 문화를 떠올릴 때 반사적으로 연상되는 인상이 편견이라면 이국주의(엑조티즘)는 편견에 기초한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때문에 나라 이름과 동시에 떠오르는 기본적인 이미지가 없다면 애초에 이국주의도 불가능하다.

외국인들이 보는 한국은 어떤 인상일까. 막연히 일본어나 중국어를 쓰는 인도차이나 반도 어디쯤에 위치한 아시아의 작은 나라로 인식하는 유럽인들에게 한국은 종종 일본이나 베트남이 주는 이국주의와 혼돈되거나 왜곡된다. 프랑스인 두 기자 나탈리 투레(28)와 트리스탕 드 부르봉-파르므(31)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국 땅을 밟는 순간까지도 이들이 갖고 있던 한국의 이미지라면 고등학교 때 배운 한국전쟁이 전부였다.

▲ 프랑스인 두 기자 나탈리 투레(28)와 트리스탕 드 부르봉-파르므(31)은 한국통신원 생활을 통해 본 한국의 모습을 지난해 <베일 벗는 한국>이라는 한 권의 책으로 펴냈다.
ⓒ 박영신
나탈리와 트리스탕은 각각 프랑스의 라디오(<프랑스 앵포> <에르에프이(RFI)>)와 일간지(<라 트리뷴> <르 피가로> <르 파리지앙> <뤼마니떼>) 통신원 자격으로 지난 2001~2003년까지 2년 간 한국에 머물렀다. 그리고 이들의 경험은 지난해 <베일 벗는 한국>이라는 한 권의 책으로 태어났다.

이제껏 프랑스에서 출간된 한국 관련 책들은 한국의 아름다운 전통문화를 소개하는 수준이었다. IMF 금융 위기 직후의 한국을 소개한 <한국, 조용한 아침의 나라의 폭풍(장 피엘)> 도 있지만, 이것도 이미 7년 전의 일이다.

<베일 벗는 한국>의 작가를 만나보고 싶었던 이유는 단 하나, 이것이 프랑스에서 출판된 한국 관련 저서 중 가장 최근의 한국을 말한다는 것이었다. <베일 벗는 한국>은 크게 가족, 생활환경, 사고방식의 3분야로 나눈 후 그 속에 여성운동, 입양인, 음주문화, 한총련, 도시빈민, 양심적 병역 거부 등 오늘날 한국사회를 움직이는 민감한 사안 들을 총 15개의 초상으로 그려내고 있다.

각 현상마다 외국인의 눈으로 문제를 제기한 후 한국인들의 목소리를 통해 해답을 찾거나 각 사회현상에 맞서 싸우는 한국인들을 집중 조명한 까닭에 <베일 벗는 한국>은 비판서라기보다는 희망에 가깝다. 라디오 <에르에프이> 아시아 담당 기자로 현재 파리에서 일하고 있는 나탈리 투레를 만나 이들의 경험을 들어봤다. 나탈리는 지난 9월 30일 이다도시가 파리를 방문했을 때 사회를 맡기도 했다.

나탈리는 한국인들의 인종차별주의, 태아 성감별을 통한 낙태 등을 부각시켰다는 이유로 다수의 한국인들로부터 항의성 메일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일부 한국인들은 자신을 '반한 인사' 또는 '혐한 인사'로 낙인찍었다면서 비판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한국인들의 태도에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다음은 나탈리와 나눈 대화를 요약 정리한 것이다.

"취지가 옳은 프로그램을 다른 미디어가 그토록 몰아붙이다니..."

▲ <베일 벗는 한국> 표지.
- 당신이 한국에 체류한 2001~2003년은 한-일 월드컵, 대선 등이 치러진 격변의 시기였다. 현장에서 직접 목격해보니 어땠나?
"한-일 월드컵은 한 마디로 환상적이었다. 프랑스의 기자로서 바라본 그날의 광경은 사실 믿을 수 없을 정도였으며 한국 팀의 승리를 한국에서 지켜볼 수 있었던 것은 내게 큰 영광이었다. 50만의 군중이 휩쓸고 간 거리가 티끌 하나 발견할 수 없을 만큼 말끔하게 정리돼 있는 게 아닌가. 한국 정부는 애초에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군중에 우려를 나타냈으나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거리에서 어울릴 수 있었던 그 분위기는 한국 역사에도 매우 소중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월드컵에서 보여준 한국인들의 열정은 현재 황우석 교수 사건으로 이어지고 있다. '애국' '국익'을 앞세운 '집단 광기'라는 지적도 있는데.
"라디오를 위해 황우석 교수에 관한 리포트를 준비하면서 한 한국인과 전화 통화를 한 일이 있다. 그는 황 교수를 일러 '모든 국민이 지지하는 국민 영웅'이라고 했다. 나는 과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황 교수의 업적을 평가할 입장은 못 되지만 논문 조작 사실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과학을 진일보시켰다는 점에서 한국인들이 황 교수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게 당연해 보였다. 그러나 특히 서구에서는 여전히 금기에 해당하는 생명 복제와 연관이 있어서 짐짓 우려스럽기도 했다.

한국인들은 외부에 비쳐질 스스로의 이미지를 중요시한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언론이 여론을 부추기며 황 교수의 입장을 지지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황 교수 문제를 폭로한 <엠비시(MBC)>의 해당 프로그램에 광고 중단 사태가 초래될 만큼 비난이 퍼부어진 것은 문제다. 기자들은 그들의 일을 했고 황 교수의 논문 조작 문제를 파헤친 것은 정당했다. 취지가 옳았던 프로그램을 다른 미디어들이 그토록 몰아붙인 것은 전적으로 부당하다. 하지만 동시에 이것은 지극히 한국적인 태도이기도 하다.

▲ "뭔가를 증명하고자 하는 의지, 자신의 자리를 명확히 하고자 하는 소망 등 한국인에게는 이제 더 이상 갖지 않아도 좋을 '열등감'이 있다. 극단적인 애국주의, 민족주의도 여기서 나오는 것 같다. 그러나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이미 확실한 자리매김을 했다."
ⓒ 박영신
한국인들은 더 이상 남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아도 될 때가 됐다. 누가 한국이 가진 단점을 지적해도 심각한 일이 아니다. 각각의 나라가 나름의 단점을 가지고 있고 그 단점 하나로 폄훼되지는 않는다. 뭔가를 증명하고자 하는 의지, 자신의 자리를 명확히 하고자 하는 소망 등 한국인에게는 이제 더 이상 갖지 않아도 좋을 '열등감'이 있다. 극단적인 애국주의, 민족주의도 여기서 나오는 것 같다. 그러나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이미 확실한 자리매김을 했다.

프랑스는 정반대의 문제점을 갖고 있다. 프랑스인들은 스스로가 매우 중요한 사람들이며 국제 사회에서 막강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믿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이것은 프랑스인들의 착각이며 근거 없는 우월감에 지나지 않는다. 현실의 프랑스가 이전만큼의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다는 자각이 프랑스인들을 마비시키는 것처럼 한국의 열등감이 한국인들을 마비시키는 것이다.

애국주의, 민족주의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한국인들은 말을 할 때 주어가 '나는'이 아니라 '우리나라는'으로 시작한다. 한국 민족주의의 상징이다. 그러나 한국 민족주의는 사소한 것이라도 할지라도 상대의 비판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무조건 방어 하려는 성향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방해하는 것 같다. 경제 발전을 위해 전세대의 희생을 강요한 박정희 체제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홍상수 감독 영화에서 한국의 남녀문제가 보였다

- 책의 도입부에서 당신은 한국의 정치 상황을 간략하게 정리했다. 여기서 해방 이후 친일파를 처단하지 못한 채 그 위에 새겨진 한국의 역사를 언급했는데 이에 대한 당신의 의견이 궁금하다.
"프랑스에도 물론 꼴라보(친독 협력자)가 있었고 또 이들을 처형하기도 했으나 모두를 심판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프랑스의 꼴라보는 몇 년의 문제였지만 한국은 35년의 긴 역사가 일본의 식민 정책에 짓밟혔다. 친일파를 단죄하지 못한 결과 오늘날 한국사회에 적잖은 문제가 야기되고 있다. 미군정으로부터 독재 정권까지 이어온 권력자들은 이들 친일파가 필요했기 때문에 단죄하지 않았다. 그 결과 현재까지도 권력을 쥔 인물들 중에 친일파들이 건재하지 않나.

박정희 전 대통령을 평가하는 오늘날 젊은이들의 시각이 양립되는 것도 흥미롭다. 현재의 한일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일본이 한국의 성노예 피해자들에게 사과하는 것이다. 지금은 친일파 문제보다 이에 대한 토론이 더 활발해야 할 때라고 본다."

-첫 장에서 당신은 한국의 가족에 초점을 맞췄다. 특히 한국 남성과 여성을 이해하기 위해 홍상수 감독을 끌어들였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한국에 가기 전에 재불 한국문화원에서 영화 <강원도의 힘>(1998)을 본 일이 있는데 독특한 영화라고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막상 한국에서 이 영화를 다시 봤을 때는 이것이 '한국의 남녀 관계를 푸는 열쇠'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을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홍 감독이 들려준 이야기는 특이한 것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것이었다. 한국 남녀의 복잡한 성 관계, 죽도록 술 마시는 분위기, 가라오케, 매춘처럼 결혼의 굴레 밖에서 이뤄지는 섹스 등 홍 감독의 영화는 낙관적이지는 않지만 한국 사회의 현실을 말하고 있었다. 영화인으로서 흥미로운 인물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관심을 갖는 소재를 건드리고 있었으므로 홍 감독을 만나야 했다. 그의 영화는 한국 남녀 관계의 전형을 가혹할 정도로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 "여의도 순복음교회 예배 현장을 지켜봤는데 조 목사가 재림한 예수라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조 목사가 던지는 '선과 악', '신을 향한 두려움' 등의 메시지는 조지 W. 부시의 연설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 박영신
-당신이 만난 한국의 여성과 남성은 어땠나?
"개인적으로 매우 충격적인 경험을 한 일이 있다. 30대 중반의 한국 남자 한 사람이 프랑스에 온 일이 있는데 '나는 변호사니까 프랑스에서 여자를 만나기는 쉬울 것'이라고 말하는 거였다. 돈 잘 버는 변호사 남편이 나쁠 건 없지만 변호사이기 때문에 결혼을 할 수는 없지 않나.

한국 여성들은 일과 변화에 대한 욕구가 큰 것이 사실이지만 현실적 장벽이 높다. 예뻐야 하고 옷을 잘 입어야 하는 한국 여성들이 사회에서 담당하는 업무도 남성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부수적이라는 인상도 받았다. 한국에서 트리스탕과 함께 인터뷰를 가면 사람들은 별 고민 없이 내가 트리스탕의 보조역일 것이라고 지레짐작해 버리곤 했다."

한국인들은 획일적... '다름'을 인정하는 데 인색하다

- 한국인들의 해외입양 문제도 거론했는데, 해외 입양이 '국가의 수치'라고 생각하면서도 국내 입양은 꺼리는 사회, 성인이 된 입양인들을 여전히 '입양아'라고 부르며 특히 이들을 외국인으로 보는 시각 등을 벨기에에 입양된 한 여성의 눈으로 따라가고 있다.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사는 프랑스에서 입양은 매우 흔한 일이다. 한국과 비교해 생김새가 다른 사람들에 대한 반감이 프랑스는 덜한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성인이 된 이들이 처음 외국 땅을 밟은 30여 년 전에는 인종 문제로 고통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지난 50여 년 동안 한국은 15만여 명의 아이를 해외로 입양시켰다. 88올림픽 당시까지 세계 제일의 고아 수출국이라는 오명을 갖고 있었던 한국은 이제 중국, 러시아에 이어 세 번째에 랭크됐다. 지난 2002년 홀트 아동복지회가 한국으로 입양시킨 아이는 617명이었던 반면 국경을 넘은 아이들은 1048명에 이른다.

한국인들은 '피'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보니 입양됐다는 사실만으로도 문제가 되는 것 같다. 갓난아기 입양을 선호하는 것도 후에 아이를 입양했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한 것이라고 들었다. 프랑스에서 입양은 안정된 환경에서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등 아이를 위한 일로 인식되고 있으나 한국에서는 반대로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부부가 스스로를 위해 입양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여성 혼자서 아이를 키우기에 제약이 많은 사회라는 점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입양기관에 위탁되는 아이들의 20%가 이혼 가정의 자녀라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 한국의 교회를 다룬 장에서는 조용기 목사가 이끄는 여의도 순복음교회를 집중 해부하기도 했는데.
"조용기 목사를 한 번 만나보려 했으나 거부당했다. 외국 언론과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전 세계에서 가장 유교적인 나라이지만 한국 사회에 기독교는 매우 깊숙이 들어가 있고 그 영향력도 대단한 것 같다. 여의도 순복음교회 예배 현장을 지켜봤는데 조 목사가 재림한 예수라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교회에 투입되는 엄청난 돈은 차치하고라도 조 목사가 던지는 '선과 악', '신을 향한 두려움' 등의 메시지는 조지 W. 부시의 연설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결코 한국적이지 않은, '교회'라는 개념에 순응하는 이 같은 태도가 한국사회에 부정적으로 작용한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한국인들은 교회에 매우 헌신적이며 그것을 좋아하는 것처럼 보였다."

▲ "내가 살던 동네에서 과일상을 하던 한 부인과 친해진 이후 두 차례 한국을 다시 찾았는데 그때마다 이 분을 만나러 갔었다. 비록 언어의 장벽은 높았지만 매우 소중한 기억이다."
ⓒ 박영신
- 한국인들이 천편일률적이라고 해석한 부분도 있었다.
"한국사회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지만 한국인들에게 일정한 틀 속으로 들어가려는 욕망이 강하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획일적이라고 할까. 때문에 '다름'을 인정하는데 인색하다. 극빈자, 동성애자, 장애인 심지어 여성에 이르기까지 소수자들이 살아가기에 매우 어려운 곳이라는 인상을 주는 것도 '다름'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고집에서 비롯되는 듯하다."

-한국에서 겪은 가장 인상적이었던 혹은 불쾌했던 기억이 있다면?
"한국에 가기 전에 오스트레일리아에 잠시 머물렀는데 앵글로색슨 문화답게 사람들 간의 접촉은 매우 용이했으나 표면적 관계에서 그치곤 했다. 반면 한국인들과 신뢰를 천천히 쌓아가다 보면 나중에는 매우 강렬한 우정으로 나타난다. 내가 살던 동네에서 과일상을 하던 한 부인과 친해진 이후 두 차례 한국을 다시 찾았는데 그때마다 이 분을 만나러 갔었다. 비록 언어의 장벽은 높았지만 매우 소중한 기억이다. 이외에도 즐거운 추억은 무진장 많다. 특히 월드컵을 빠트릴 수는 없지 않겠나. 나도 경기장에서 붉은 티셔츠를 입고 '대~한민국'을 외치고 함께 노래를 불렀으며 한국 대표팀이 승리할 때는 자랑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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