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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우석 사태' 취재기 펴낸 MBC 한학수 PD. 그는 8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황 전 교수가 진정으로 난치병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다면 서울대 교수 파면 취소 처분 행정소송을 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여러분께 이 뉴스를 어떻게 전해드려야 할까요?"
"황우석 교수팀의 줄기세포가 없다고 합니다."


지난해 12월 15일 밤 9시 MBC <뉴스데스크>는 이렇게 시작됐다. 그리고 1년 즈음, '황우석 사태' 소용돌이의 한가운데 서 있었던 한학수 MBC PD가 그간의 취재기를 책으로 냈다. <여러분! 이 뉴스를 어떻게 전해드려야 할까요?>(사회평론 간)가 바로 그것이다.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MBC에서 만난 한 PD는 차분히 1년간의 기록을 정리했다.

한 PD는 '황우석 파문이 마무리 돼 간다고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사건은 이제 시작'이라고 책에 썼다. 황우석 사태가 개인의 문제를 떠나, 21세기 대한민국 현실을 반영한 일대 사건이기 때문에, 자성적 차원에서 이 사건을 돌아보고 발전적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로 들린다.

그는 "1주년이 다가오는 즈음인데 황 전 교수 진정으로 국민들에게 사과했는지 의문"이라며 안타까워했다. 비단 황 전 교수만의 문제는 아니다. 한 PD는 "반성은 성찰로 이어질 수 있고 새로운 성장의 기회가 되는데도 황 전 교수와 <조선일보>, 청와대, 노무현 대통령은 결코 사과하지 않았다"고 성찰을 구했다.

한 PD는 "박근혜·정동영·손학규 등 대선 주자들도 최소한 한 번씩 황우석 살리기를 시도했다"며 "사건이 된 이후 국민들 앞에 먼저 사과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정치인의 미덕"이라고 말했다.

특히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는 '황 박사를 비난하는 사람은 이 사회에서 격리시켜야 한다'는 파시스트적인 발언을 했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국토대장정을 했다"며 "국민들에게 무언가 해명이라도 해야 하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한 PD는 <조선일보>의 퇴행적 기사 관행을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냉전논리가 허물어져가는 21세기에도 김대중 논설위원은 좌파라고 몰아세우고 그걸 뒷받침하는 기사를 썼다"며 "<조선일보>의 당시 보도 방식이 너무 비열했다"고 비판했다.

황 전 교수 개인에 대해서도 한 PD는 "황 전 박사가 진정으로 난치병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면 서울대 교수 파면 취소 처분 행정소송을 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질타했다.

다음은 한학수 PD와의 인터뷰 전문이다.

"황 전 교수는 미안한 마음 전혀 없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 '황우석 사태' 1주년에 즈음해 취재기를 정리한 책이 나왔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지난 취재 기록을 뒤져보니 '황우석 사태'는 갈등과 미스터리가 계속 이어진, 힘 겨루기가 대단했던 드라마였다. 3개월간 해외연수 기간 동안 몇 천 개의 이메일과 모든 기록을 다 꺼내서 취재일지와 사건일지를 따로 만든 뒤 두 가지를 비교 검토해 책을 쓰기 시작했다. 방대한 작업이었고 쉬운 일이 아니었다."

- 세계적인 특종을 책으로 정리하면서 한편으로 당시의 아픈 기억도 떠올랐을 것 같다.
"취재윤리 부분이다. YTN에 김선종 연구원을 만나 '황 교수를 죽이러 왔다'는 등의 발언을 했다는 보도가 나왔을 때가 가장 힘들었다. 명백한 오보로 판명 났지만 그때 많이 아팠다. 당시 내가 했던 공식적인 말은 '검찰수사가 시작된다', '진실을 말해달라', '국가청렴위로 연결해주겠다' 등의 읍소였다. 당시 취재 과정에서 그런 말이 윤리적으로 문제가 될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다른 동료기자들도 그 말이 취재윤리에 위배된다는 사실을 알고 뜨끔했을 것이다. 누구라도 그런 상황에서 황 전 교수를 비롯한 공범들이 수사받을지 모른다고 말하는 건 어렵지 않았을 것이라고 본다. 그렇지만 나 또한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는 언론문화의 한 편린이었다고 생각한다. 정말로 중요한 취재나 사건일수록 더욱 절차가 중요하다는 점을 느꼈다."

- 황 전 교수가 서울행정법원에 '파면은 부당하다'는 취지의 소송을 제기했다.
"그는 어떤 재판결과가 나오더라도 수긍하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 자신의 결백을 위해 무엇을 주장할 지 모를 분이다. 조금이라도 난치병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다면 결코 그같은 소송을 내지 못했을 것이다. 국민과 장애인, 난치병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전혀 미안한 마음이 없다는 게 현재 황 전 교수의 상태라고 본다."

- 아직도 '황 교수에게 한 번만 더 기회를 주라'는 시위를 벌이는 소위 '황빠'들이 있다.
"난치병 환자 가족들이 시위할 때 대단히 안타깝다. 난자 의혹 방송 뒤 김송·강원래 부부가 MBC 앞에서 촛불시위를 했다. 그 광경을 10층 시사교양국에서 바라보는데 참 가슴이 아팠다. 장애인들이나 난치병 환자 가족들이 우리를 욕해도, 우리는 그들을 비난할 수 없다. 다만, 과연 누가 난치병 환자에게 도움이 될까를 생각할 따름이다. 논문조작 등으로 과학을 연구하지 않는 사람이 도움이 될까, 아니면 논문조작 실태를 밝혀 진정한 과학자들이 연구하도록 하는 게 나을까… 역사가 판단할 것이라고 본다."

- 황 전 교수의 줄기세포에 희망을 걸었던 많은 장애인과 난치병 환자들이 있었다.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였다. 체세포를 기증하고 임상실험을 두 번이나 연기 당한 10살 짜리 꼬마 김모 어린이의 문제다. 지난해 5월 줄기세포를 주입한다고 했지만 지난해 12월로 연기됐고, 이 보도가 되지 않았다면 올해 5월 <사이언스> 2주년을 기념해 임상실험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뭘 얻을 수 있었을까 의문이다. 당시 줄기세포도 없는데… 그 어린이에게 임상실험을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설혹 그가 죽었더라도 언론에 드러날 수 있었을까, 쉬쉬하고 넘어가지 않았을까. 나는 이 문제가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에 결연해졌다. 동물실험의 경우, 줄기세포를 주입한 개체 중 30% 정도가 즉시 암에 걸린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있다. 그가 암에 걸리지 않았을까. 또 다른 난치병 환자들이 줄기세포 임상실험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정말 끔찍하다."

"보도 안 했다면, 노벨상 수상자 만들기 혈안됐을 것"

ⓒ 오마이뉴스 남소연
- 당시 국익논쟁도 상당했다.
"만일 이 보도가 나가지 않았다면 황 전 교수는 올해의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지 않았을까. 작년에 노벨상을 받지 않았다면 올 10월 다시 황 전 교수를 노벨상 수상자로 만들자는 얘기가 전 언론을 장식했을 것이다. 올해 못 받았다면 내년에는 기어코 받자고 했을 테고, 언젠가는 받았을지 모른다.

노벨상 수상자가 된 뒤로 이 사건을 다뤘다면, <사이언스> 논문 취소 10배 정도의 충격을 낳았을 거라고 본다. 나는 여전히 황 전 교수의 연구 성공 가능성을 낙관하지 않는다. 이것은 생명의 문제다. 더 크게 비화될 국익 논란을 일찍 막았다고 생각한다. < PD수첩 >이 막은 게 아니라 한국 과학자들이 막았다. 한국 과학자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중도에 사라질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 황 전 교수는 어떤 사람인가.
"나도 똑같은 질문을 받았다. 지난 2002년부터 황 전 교수를 겪은 노성일 미즈메디 병원장이 2005년 내게 물었다. '한 PD, 도대체 황우석 교수는 어떤 사람이요?' 반년간 취재를 해왔지만 나도 잘 모르겠다. 취재과정 중 몇 번의 기자회견을 지켜보면서 '그래도 이 정도면 고백하겠지, 사과하겠지, 인정하겠지…' 했으나 전혀 아니었다.

현재까지 밝혀진 거짓이 뭔지 면밀히 검토하고, 그에 맞춰 대응하는 사람이다. 기자회견마다 밝혀진 것 외에 고백한 것은 하나도 없다. 총론적으로 고백해버리고 새로운 대응논리를 개발하곤 했다. 황 전 교수가 아주 평범한 사람은 아니다. 동네에서 작게 활동하는 스타일이 아닌 담대한 고단수다. 일반인이 감당하거나 꿰뚫어보기 힘든 내공이 있다. 그 내공이 학문적인 게 아니라는 게 불행한 것이다."

- <여러분! 이 뉴스를 어떻게 전해드려야 할까요?>를 통해 공개사과해야 할 상징적 세 축을 들었다. 청와대와 <조선일보> 그리고 황 전 교수인데.
"엄밀하게 말하면 과학계와 언론계, 정계 삼각동맹이다. 대표 주자가 황 전 교수, <조선일보>, 청와대 노무현 대통령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12월 5일 'YTN사태' 이후 이쯤에서 덮고 가자고 했다. 얼마나 알고 그렇게 얘기한 건지 난 아직도 모르겠다. 모든 사실을 다 알고도 덮고 가자고 한건지, 정확한 보고를 못 들어서 과장한 것인지, 여전히 모르겠다. 정말 몰랐다면 무능한 대통령이고, 대한민국 핵심 엘리트들의 무능한 정보 취합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본다. 알고도 그랬다면 더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책의 마지막 부분에 '최후통첩, 방송을 취소하라' 대목에서 권력의 압력을 예시했다. 압력을 넣은 모 장관은 누군가.
"모 장관을 거론한 것은 수면 아래에 있던 수많은 말 못할 이야기 중에 하나를 전형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모 장관 외에 다른 사람은 없었겠나, 문화방송 내부의 최씨 3형제가 겪었던 사람들을 모두 실명으로 거론하면 힘들어질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문제는 개인에게 화살을 던지는 것보다 좀 더 시스템적인 문제로 봤으면 하는 것이다.

박근혜, 정동영, 손학규 등 대선 주자들은 황우석 살리기를 한 번씩 시도했다.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의장은 논문 조작 이후에도 친구를 돕고 싶다고 애썼다. 그러나 사건이 된 이후 지금까지도 공개 사과하지 않는 분들이 있다.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는 '황우석을 비난하는 사람은 이 사회에서 격리시켜야 한다'는 파시스트적인 발언을 했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국토대장정을 했다. 국민들에게 무언가 해명은 해야 하지 않나."

"<조선일보> 1주년 맞아 자성하고 사과해야"

- <조선일보> 보도에 대해서도 문제제기 했다.
"<조선일보>를 지적한 것은 여전히 반성하지 않는 언론의 상징적 힘으로 봤기 때문이다. 정치인 중에도 사과해야 할 사람이 사과하지 않았기 때문에 노 대통령에 섭섭함을 갖는 것처럼, <조선일보>라는 책임있는 일간지가 자신의 행동에 대해 사과하지 않는 것에 대한 섭섭함이 있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1주년을 맞이해 좋은 기사를 쓰고 자성할 필요가 있다. 물론 그렇게 하지 않겠지만."

- <조선일보>는 한학수 PD 개인사도 따로 취재해 보도했다.
"서울대 총학생회에서 일했다. 나는 87학번으로서 암울한 80년대를 겪었다. 민노당은 유심히 지켜봐야 할 정치세력이라고 보고 있지만, PD라면 모든 이해관계 당사자를 떠나 취재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당원가입은 하지 않았다. 물론 언론계 종사자에게 당원 가입이 금지돼 있지는 않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조선일보>에 대해 소송을 걸까도 생각해봤다. 퇴행적인 기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21세기 한국에서 냉전논리가 허물어져 가는데 김대중 논설위원이 좌파라고 얘기하고 그걸 뒷받침하는 기사로 그런 얘기를 쓰는 것이야말로 반성해야 한다고 본다.

<조선일보>가 반성하지 않는다면 기자의 양심으로라도 공개 사과해야 한다고 본다. 당시 사안을 다루는 방식이 너무 비열했다. 황 전 교수의 연구가 정직했나, 취재윤리를 어겼나 이런 부분을 다투고 있는데 사상적 편향을 거론하는 건…. 그렇게 사상적 편향 색깔을 끼고 보니까 오히려 그렇게 밖에 안 보이는 게 아니냐고 생각되고 대응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 인간적인 괴로움도 많았을 것 같다.
"이 취재가 내 뜻과 무관하게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수 있다고 생각됐다. 내가 아무리 얘기해도 내 말을 안 믿어줄 수 있겠구나, 그게 최초의 불안감이었다. YTN 보도 이후 인사위에 넘어가고 대기발령 상태에 있을 때 매우 힘겨웠다. 가족들도 그때가 제일 힘들었다. 인터넷에 우리 가족사진이 떠돌고 쳐죽이자! 논란이 일고 있을 때 솔직히 두려웠다.

익명의 사람들이 아직 인터넷에서 위협하고 있어서 우리 가족은 이사를 했다. 지난해 12월 4일 밤, 최승호 팀장과 맥주집에 앉아 술을 마시는데, 그 집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날 쳐다보는 것 같았다. 저놈, 쳐죽일 놈 하고 말이다. 참담했다. 맥주가 식도를 타고 내려가 심장을 지나 위에 가 닿는 느낌이 났다. 그때도 맘이 짠했다."

- MBC 내부에서도 격렬한 논쟁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복기하고 나니까 이 보도에는 맷집이 필요하다. 'X파일'은 MBC가 특종해놓고도 1보를 타사에 놓쳤다. <조선일보> 보도 이후 MBC가 따라갔다. 그것은 쓰라린 치욕이다. 그러나 황우석 사태를 겪으면서 여러 경험이 쌓였다. 자성의 기운도 생겼다. 당시 MBC 내부에도 격력한 토론이 있었다.

부문별로 모여 이 방송을 할 건지, 말 건지 토론이 이어졌다. 좌충우돌했다. 12월 15일 낮, 사장이 결심했다. 최진용 국장을 불러 12월 16일이 디데이라고 말했다. 그때 MBC 전체 분위기는 방송을 내자는 쪽으로 기울었다.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조직적으로 황우석 사태를 풀었다고 본다. 조직적으로 버텨주지 않았다면 이 프로를 방송하기 매우 힘들었을 것이다."

"제보자 K씨와 B씨, 의료계가 이젠 받아줘야"

- 책의 한가운데, 과학자로부터 신용카드를 받아 쓴 기자, 명절 때 쇠고기를 받아먹은 기자 등을 거론하면서 황 전 교수와 연관된 기자들의 윤리문제도 지적했다.
"몇몇 기자들은 공식적인 사과의 글을 썼다. 모 언론의 한 기자는 황 전 교수의 말을 신뢰하고 많이 적었으나, 나중에 황 전 교수를 취재한 공로로 받은 상까지 반납했다. 과거에 대한 자성이라고 본다.

취재원으로부터 대접받는 것이 관례이자 미덕이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 관례를 새롭게 조명해본 것이다. 은글슬쩍 덮어두고 가지 말고 과거에 황 전 교수로부터 신용카드 받아 술 마시고, 쇠고기 먹었던 기자들의 자기고백이 필요하다고 본다."

- 이 취재를 통해 풀리지 않는, 마음 한 켠의 빚이 있다고 들었다.
"나는 프로그램을 마쳤기 때문에 홀가분한 느낌이 있다. 그러나 제보자 K씨와 B씨는 여전히 직업을 못 찾고 있으니까 부담스럽다. 이 책을 쓰게 된 동기 중의 하나가 바로 그들때문이다. 양심적인 공익정보 제공자가 사회에서 왕따 당하는 정설 아닌 정설을 이제는 바꿀 때가 됐다. 그래야 한 사회가 한 걸음 더 나갈 수 있다. 의료계가 이제는 그들을 받아줘야 한다고 본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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