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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이종호
노무현 대통령은 왜 저토록 한미FTA에 집착하는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정태인씨나 다른 학자의 주장에 의하면 한미FTA로 인해 잃을 것은 너무도 많고, 또 분명해 보인다(특히, 투자자의 정부제소권에 대해서는 등골까지 오싹해진다). 정부 측에서 주장하는 한미FTA의 가장 큰 이점은 경쟁력있는 몇몇 제품의 수출 증대인데, 이들 제품에 대한 미국의 관세가 워낙 낮은 수준이라 실제 손실을 상쇄할 만큼 이익을 가져올지 의구심이 든다.

잃을 것은 분명하고 얻는 것은 불확실한데 왜 그토록 매달리는 걸까? 비록 얻는 것이 확실하다고 해도 그 과실은 대부분 재벌기업에 돌아간다. 그런데 내가 아는 노무현 대통령은 적어도 재벌들의 이익을 위해 그 많은 손실을 감당할 정도로 후안무치한 사람은 아니다. 그래서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도대체 어떤 신념이 노무현 대통령으로 하여금 이렇게 무리수를 두게 만드는 것인가? 그래서, 노 대통령이 "최고의 보고서"라고 극찬한 것으로 알려진 '동반성장을 위한 새로운 비전과 전략(국민경제자문회의)'을 보았다. 그 결과 한 가지 짐작하는 바가 생겼다.

노 대통령이 그렇게 후안무치한 사람은 아니다

그 보고서는 ①세계화 ②지식기반경제로의 전환 ③중국경제의 부상을 중요한 대외여건의 변화로 꼽고 있다. 우리나라 경제는 이러한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성장잠재력이 저하되고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①내수·국내투자 및 일자리 중시 정책 ②일자리창출 능력이 높은 서비스산업 중시 정책 ③산업간 분업에서 산업내 분업으로 인식 전환 ④외국인직접투자의 적극 유치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 중에서도 서비스 산업과 외국인직접투자를 연결시키는 정책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다.

보고서는 FTA를 통해 서비스시장을 개방함으로써 경쟁을 유도하고 국내업체의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교육·의료분야에 대한 개방을 강조하고 있다. 교육 분야는 고등교육기관의 영리법인화와 외국대학의 유치를, 의료 분야 역시 병원의 영리법인 허용 및 외국자본 유치를 그 방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여기서, 필자는 하나의 흐름을 읽을 수 있었다.

'지식기반 경제 - 지식서비스 산업 육성 - 인적자원개발 - 고등교육기관 개혁 - 개방을 통한 고등교육기관 개혁 및 경쟁력 강화'

(그 보고서는 부품소재산업 및 중소기업 육성 정책·금융 및 물류 허브 정책·농업 정책·사회적 안전망 등 다양한 분야를 언급하고 있지만, 한미FTA와 직접적으로 연결되고 노무현 대통령의 성향상 중요시할 부분을 뽑아서 연결한 것이다.)

그의 신념은 틀렸다

▲ '사회공공성 강화, 한미FTA 협상 저지, 공공부문 노동 3권 쟁취를 위한 결의대회'가 8일 오후 서울 종로 1가에서 공무원노조, 공공연맹, 전교조, 대학노조, 교수노조 등 공공연대 소속 조합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과거 산업경제와 달리 지식기반 경제는 사람이 성장의 중심이 된다. 산업경제 하에서는 대규모 공장, 큰 건물과 넓은 도로가 경제발전의 상징이 되었다. 즉, 자본과 노동의 투입량이 경제발전의 변수이다. 그러나, 지식기반 경제는 질적인 개념의 인적자원과 기술수준이 더욱 더 중요한 경제발전의 변수가 된다.

질적인 개념의 인적자원은 노동자의 지식수준 및 숙련도를 의미하고, 기술수준을 높이는 연구개발 역시 사람의 능력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므로 지식기반경제는 결국 사람 중심의 성장모형을 말한다. 사람 중심의 성장모형은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구조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동반성장을 가능하게 한다.

지식기반경제에서는 지식서비스 산업이 핵심이 된다. 지식서비스 산업은 스스로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뿐만 아니라, 제조업의 생산성향상을 측면 지원하고(디자인·컨설팅 등 사업지원서비스) 국민의 삶의 질(교육·문화·의료 등)을 높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지식서비스 산업이 발전한 나라를 보면 그 중앙에 경쟁력있는 대학이 자리잡고 있다. 즉, 지식서비스 산업의 경쟁력은 대학의 경쟁력과 직결된다.

'100명의 단순노동자보다 1명의 지식노동자가 더 중요시 되는 지식기반경제 하에서는 교육이 키워드다. 그런데, 우리 교육 현실은 암담하다. 특히, 산업의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공자왈 맹자왈 식의 대학교육은 더욱 더 문제이다. 대학이 지식기반경제에 맞게 개혁되면 중등교육 역시 그에 맞추어 변화될 것이다.

그런데, 교육계는 스스로의 변화의지가 없으며, 웬만한 외부의 충격에는 끄떡하지 않을 정도로 철밥통 결속력도 갖추고 있다. 이를 깨기 위해서는 더욱 더 힘센 자가 필요하다. 교육시장 개방과 외국자본 유치가 그 답이다. 가장 중요한 개혁을 위해서는 일부 희생은 감수해야 한다.'

이상이 필자가 상상한 노무현 대통령의 한미FTA에 대한 신념이다.

교육모델, 미국이 아닌 핀란드에 있다

지식기반경제에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된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교육이 키워드라는 것도 맞다. 우리나라 교육 현실이 정치 못지않게 한심한 수준이라는 것은 교육계 당사자들만 빼고 누구나 인정하는 바이다. 이러한 논리에 따라서 교육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은 당연한 결론이다.

그러나, 한미FTA를 통하여 교육시장을 개방하고 교육을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시켜서 미국자본에 의해 교육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것은 틀렸다. 진단은 옳았는데, 처방이 틀린 것이다.

지식기반경제에 맞추어 고등교육기관을 개혁하려면 각 지역산업의 수요에 맞추어 지역별로 교육중심대학과 연구중심대학을 육성해야 한다.

교육중심대학은 실무중심 및 현장중심 교육으로 산업수요에 맞는 숙련노동자를 배출하는 일종의 산업대학이다. 가장 모범적인 사례는 핀란드의 폴리텍이다. 핀란드는 90년 중반 전면적인 교육개혁으로 각 지역에 폴리텍을 집중 육성함으로써 고성장을 이루었고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항상 1·2위를 차지하고 있다.

산업수요에 맞는 지역별 교육중심대학을 육성하려면 미국이 아니라 핀란드로 눈을 돌려야 한다. 핀란드의 폴리텍은 영리법인이 아니라 공교육이다. 핀란드의 공교육은 기본적으로 무상교육이다. 미국자본에 의한 대학의 영리법인화와 너무도 틀린 방향이 아닌가? 미국의 영리적인 교육시스템이 산업대학 육성에 성공적이었다는 연구결과를 들어본 적이 없다.

미국 실리콘 밸리에 위치한 스탠포드대학이 성공사례로 꼽히기는 하지만, 이는 연구중심대학에 가깝다. 연구역량 강화를 위한 연구중심대학의 성공사례는 핀란드의 울루대학과 스웨덴의 IT대학도 이에 못지 않다. 외국을 볼 것도 없이 우리나라의 포항공대도 지역 연구중심대학의 성공사례로 손색이 없다.

핀란드의 폴리텍을 본받아 지방대학 및 전문대학을 공교육인 지역별 산업대학으로 전환·육성하고, 포항공대를 벤치마킹하여 지역 연구중심대학을 육성하는 것이 고등교육개혁의 기본방향이 되어야 한다. 교육개방과 미국자본에 의한 대학의 영리법인화는 틀려도 한참 틀린 방향이다.

왜 교육을 돈벌이 수단으로 만들어야 경쟁력이 강화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답답하기만 하다. 평준화 및 공교육에 의해 그나마 유지된 최소한의 '출발의 평등'마저 그 싹이 없어질 우려에 대하여는 일부러 외면하는건지, 아니면 모르는 건지….

GDP 2.2%P... 그들에겐 숫자, 우리에겐 완전 무상교육

▲ 지난 7일 오전 한덕수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이용섭(행자부), 반기문(외통부), 박홍수(농림부), 천정배(법무부), 이상수(노동부) 장관 등 6개 관계부처 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제2차 한미FTA 협상 반대시위 관련 정부 공동 담화문'을 발표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노무현 대통령이 재경부 관료들에 포위되어 제대로 볼 것을 못 보고 있는 것 아니냐는 소리를 종종 듣곤 한다. 한미FTA에 대한 대통령의 잘못된 신념 역시 재경부 관료들의 세뇌에 의한 결과가 아닌가 싶다.

지난 7월 4일 한미FTA에 대한 PD수첩의 방송이 나간 후, 다음날 재경부가 이에 반박하는 보도자료를 냈다. 자신들만의 정보를 이용하여 이것저것 반박하였지만, 필자는 한 대목을 보고는 그 보도자료를 휴지통에 버렸다.

NAFTA 체결로 캐나다의 사회보장이 크게 후퇴되었다는 PD수첩의 주장에 대하여, 재경부는 캐나다의 GDP 대비 사회보장재정지출 비중이 1995년 20.0%에서 2002년 17.8%로 줄었으니 그다지 큰 변동이 없다고 반박하였다. GDP 대비 2.2%P 줄어든 것이 별 것 아니라는 것이다.

이를 우리나라 GDP에 적용하면 17조원에 달하는 금액이다. 우리나라 초등학교부터 대학원까지 완전 무상교육을 실시하는 데 약 15조원의 예산이 추가로 든다(무상교육인 초중등학교의 식대를 비롯한 모든 수익자부담경비도 국가가 부담하는 경우를 포함한다).

아이들이 태어나서부터 대학원 졸업시까지 한푼도 안 드는 상태에서 지금처럼 막대한 교육비를 지출하는 수준으로 후퇴하였는데 이게 별 거 아니라니? 숫자 계산은 잘하나 그 숫자가 의미하는 바는 모르는 것이다. 철학이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많은 숫자와 정보가 들어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서민경제에서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모른다면 그 보고서는 쓰레기에 불과하다.

참여정부에 대한 기대를 다시 낮추며

한 가지 확실한 목표를 정해놓고 그곳에 올인하는 승부사적 기질은 분명히 장점이 있다. 그러나, 목표 또는 그 목표를 이루는 수단이 잘못된 경우 엄청난 재앙을 가져온다는 단점도 있다. 한미FTA에 반대하는 지금의 목소리는 '대안없는 무책임한 반대'가 아니라, 앞으로 다가올 재앙에 대한 경고이다.

그동안 필자의 눈에 장점으로 보이던 노무현 대통령의 고집과 승부사적 기질이 이제는 두렵다. 잘못된 신념은 신념이 없음만 못하다. 이제 참여정부에 거는 기대를 몇 단계 더 낮추어야겠다.

'참여정부의 최대 업적은 한미FTA를 체결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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