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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합을 넣어 끓인 칼국수. 국물 맛이 아주 시원하였다.
ⓒ 전갑남
올해는 장마가 일찍 온다고 한다. 나는 마음이 급하다. 장마가 오기 전에 풀을 잡아야하기 때문이다.

장마가 지면 잡초는 물고기가 물은 만난 듯 자라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로 부쩍부쩍 자란다. 손 쓸 틈을 주지 않고 자라서 지금 게으름을 피우면 풀한테 손을 들고 만다.

나는 풀과의 싸움을 벌이고 있다. 아침에는 호미로 고랑에 난 어린 풀을 긁어주고, 오후 들어서는 나무 밑에 자라는 풀을 낫으로 벤다.

아내는 채마밭에 시원스레 물을 준다. 아침저녁으로 물을 주자 따가운 태양과 함께 손바닥하게 자란 상추가 탐스럽다. 요즘 같아서는 하루해가 짧다.

상합 칼국수 한번 끓여볼까?

하루 종일 밭에서 일을 한지라 해거름이 되자 허기가 진다. 이럴 때 시원한 칼국수를 먹으면 제격일 것 같아 아내에게 물었다.

"해물 칼국수 잘 하는 집 알고 있는데, 거기 갈까?"
"칼국수요? 아참! 상합 있잖아요. 내가 집에서 끓일게요."
"상합 넣은 칼국수, 그거 좋겠다!"
"빨리 준비하자구요."

우리는 졸지에 칼국수를 해먹기로 했다. 상합은 이틀 전 형제처럼 가까이 지내는 친구네가 보내왔다.

▲ 칼국수에 넣을 재료. 밀가루 반죽에 우리가 농사지은 감자와 쪽파이다.
ⓒ 전갑남
▲ 칼국수는 직접 손으로 밀어야 제맛이 난다.
ⓒ 전갑남
칼국수에는 감자가 들어가야 맛있을 것 같아 밭에서 감자 한 포기를 들췄다. 아직 실하지는 않았지만 딸려오는 감자를 보고 아내 입이 벌어진다. 언제 이렇게 감자 밑이 들었느냐는 것이다. 감자 순이 누런 잎이 질 때까지 기다려 캐면 더 토실토실할 거라는 기대감에 부푼 것 같다.

쪽파 몇 뿌리를 뽑아 다듬고, 계란을 풀어 밀가루를 반죽하니 금세 칼국수 쑬 준비가 끝났다.

나는 아내가 밀가루 반죽한 것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방망이로 밀어 넓적하게 폈다. 널찍하게 편 것에 밀가루를 바르고, 두르르 말아 칼로 써니 칼국수가 완성되었다.

요즘 시장에 가면 상품화된 칼국수가 있지만 집에서 방망이로 밀어 만든 맛과 비교할 수 있을까?

▲ 준비한 상합. 백합이라고 부른다.
ⓒ 전갑남
조개의 '귀족' 상합

지금은 상합이 많이 나오는 철이다. 상합은 백합의 또 다른 이름이다. 이곳 강화에서는 백합이라는 말 대신 상합이라고 부른다.

상합은 전복에 버금가는 조개의 귀족이다. 특히 강화 주문도, 볼음도 개펄에서 나오는 상합은 예로부터 임금님께 올리는 진상품이었다.

껍질은 까맣고 반들거리는 껍데기가 꼭 니스 칠을 한 것처럼 햇볕에 반짝인다. 겉은 검은 색인데 속살이 희어서 백합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피로회복과 미용식으로 이름이 높다.

상합은 여느 조개와는 달리 필요한 때를 제외하고는 입을 열지 않는다 하여 정절에 비유되기도 한다. 전문가들도 상합을 까는 데 애를 먹는다.

모양이 예쁘고 껍질이 꼭 맞게 맞물려 있어 '부부화합'을 상징한다 하여 일본에서는 혼례음식에 반드시 포함된다고 한다. 상합은 회로, 탕으로 먹기도 하지만 죽, 찜, 구이로도 다양하게 요리한다.

▲ 상합탕이다. 맛이 있으면서도 아주 간단하게 끓일 수 있다.
ⓒ 전갑남
▲ 상합 속에는 속살이게가 들어있었다.
ⓒ 전갑남
상합으로 끓이는 탕만큼 간단한 것도 없다. 나는 상합탕을 좋아한다. 찬물에 상합 서너 개와 파 마늘만 넣고 끓이면 된다. 식성에 따라 마른 세우를 넣어 끓이기도 하는데, 국물 맛이 시원하다. 술 먹은 다음날 상합탕은 숙취해소와 쓰린 속을 달래주는 데 그만이다.

아내가 찬물에 상합을 몇 개 넣고 끓이다가 입을 벌리자 무엇을 발견한 양 호들갑이다.

"상합 속에 게가 들어있어요!"
"당신, 처음 봐?"
"웬 조개 속에 아주 작은 빨간 게가 들어 있네요."
"그게 속살이게라는 거야."
"그럼 조개와 공생관곈가?"
"아마 그럴 걸."

조개 속에 아기 게가 함께 산다는 것이 신비스럽다. 말 못하는 생물들이지만 나름대로 살아가는 방법이 따로 있다는 생각에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자연의 이치를 발견하는 듯싶다.

▲ 국물이 뽀얗게 우러나온 칼국수, 그 맛이 '끝내준다'.
ⓒ 전갑남
야, 국물 맛이 정말 시원한 칼국수네!

상합과 나박나박 썬 감자를 넣고 팔팔 끓이자 국물이 뽀얗게 우러나왔다. 김이 올라오는 국물에서 단내가 난다. 설렁탕 국물처럼 뽀얀 국물에 칼국수를 풀어 넣자 맛있는 음식이 완성되었다. 마지막으로 다진 파를 넣었다.

정신없이 한 그릇 가득 먹는 나를 아내가 빤히 쳐다본다.

"그렇게 맛있어요?"
"당신의 손맛도 손맛이지만, 상합 국물 맛이 끝내주네!"
"음식점에서 사먹는 것보다 훨씬 낫죠?"
"그걸 말이라고 해."

조갯살의 쫄깃한 맛과 부드럽게 씹히는 감자가 색다른 칼국수 맛을 낸 것 같다. 시장기가 있는데다 땀 흘려 일하고 난 뒤 먹은 시원한 상합 칼국수! 가히 그 맛이 예술이라고 하면 지나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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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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