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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4일 멕시코전에서 번트를 치고 질루하는 스즈키 이치로 일본 야구 대표팀 선수.
ⓒ WBC 공식홈페이지
이치로가 환하게 웃었다.

17일 미국 애너하임에서 벌어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2차 리그 최종시합에서 미국이 멕시코에 져 일본의 준결승 진출이 확정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직후 TV카메라 앞에 선 이치로 선수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일본 대표팀은 어제 대(對) 한국전을 마친 뒤 준결승 무대인 샌디에이고로 이동해 있었다. 실낱 같은 희망이었지만 일종의 '자기암시'효과를 노렸는지도 모른다.

"야~ 말끔히 갰네요. 뭔가 있을 거라고 생각은 했어요."

스스로 치밀어 오르는 화를 주체할 수 없는 듯이 보였던 어제 이치로의 모습은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지옥에 떨어졌다 구출된 사람의 표정이 이런 것일까. 어쨌든 분명한 것은 어제도, 오늘도, 그렇게 냉정하고 침착하게 보였던 월드스타 이치로의 평소 이미지와는 완전 딴판이라는 점이다.

이치로는 기자회견에서 "그 분함을 잊지 않고 있다, 일본이 세 번, 같은 상대에게 지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는 다짐도 잊지 않았다.

<오마이뉴스 재팬> 창간을 위한 일본출장 길에 이렇게 '지옥과 천당을 오간' 이치로의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던 것은 의외의 소득이었다.

16일 오전 8시 35분 김포공항을 출발, 하네다 공항을 통해 도쿄 도심에 들어온 것이 정오 무렵. 일본 소프트뱅크측 관계자와 점심식사 약속이 있었기에 일을 마치고 호텔방에 들어가 TV를 켜니 막 한국의 7회 말 공격이 시작되고 있었다. 한국이 선취점을 올리는 상황을 중계하는 일본 아나운서의 목소리는 '절규'에 가까웠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 시선을 잡은 것은 오승환 투수가 일본 마지막 타자 다무라히토시의 헛스윙을 유도해내며 승리를 확정짓는 순간, 벤치에서 이를 지켜보던 이치로 선수가 등을 돌리며 뭐라고 고함을 치는 장면이었다.

"이치로의 입에서 영어의 'F'로 시작하는 '방송금지용어'가 튀어나왔다"며 한 일본 스포츠신문은 그 순간을 이렇게 묘사했다.

"한국에 있고, 일본에는 없었던 것은 뭘까요?"라는 일본기자들의 질문에 이치로는 "글쎄 뭘까요…, 그런 게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어요"라며 고개를 떨궜다.

일본인에게 야구의 의미가 달라지고 있다

▲ 지난 16일 WBC 한·일전에 앞서 일본팬들이 일장기를 들어보이고 있다.
ⓒ WBC 공식홈페이지
17일자 일본 스포츠신문들은 하나도 예외 없이 1면 제목을 '이치로 야구인생에서 가장 굴욕적인 날'이라고 달았다. 이치로가 시합이 끝나고 기자회견에서 한 첫마디 "내 야구인생에서 가장 굴욕적인 날이었다"를 그대로 인용한 것.

이렇듯 일본의 WBC 관련 보도는 이치로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사람들 속에서의 화제도 마찬가지다. 왜? 아마도 이치로가 일본인들에게 야구의 전혀 새로운 측면을 가르쳐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지금까지 일본인들에게 야구란 '즐기는' 도구였다.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이기면 이긴 대로 기뻐서 한잔하고, 지면 진 대로 분해서 한잔하고, 그 자체가 재미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치로는 지금 야구가 '싸우는' 도구도 될 수 있다는 전혀 새로운(?) 사실을 일본인들이 깨닫게 하고 있다.

이치로가 시합 전 "앞으로 30년은 일본을 넘보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또 "세계 챔피언을 결정하는 것이라면 나도 무대에 서고 싶다"며 유난히 국가대항전에 강한 의욕을 보였다. 마쓰이, 다구치 등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다른 일본선수들이 대표팀 소집에 응하지 않은 것과는 사뭇 다른 자세였다.

그가 가진 이미지가 본래 이런 것은 아니다. 오히려 묵묵히 성실하게 자기 분야만 개척해온, 어떻게 보면 지극히 이기적으로 보이는, 정상까지 오른 일본인의 전형적인 모습이 바로 이치로였다.

그렇기에 이치로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무너진' 모습은 일본 팬들에게 야구경기의 패배 그 자체보다 더 충격이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응원하는 팀이 야구에서 져서 눈물을 흘린 것은 내 인생에서 처음입니다. 경기장의 분위기, 끓어오르는 감정, 이것이 '월드컵'이구나 하는 것이 야구에서 처음으로 피부에 와닿았습니다."

애너하임 현장을 지켜본 <주니치 스포츠> 신문 칼럼리스트 이노세의 이 같은 고백은 앞으로 야구의 의미가 일본인들에게 어떻게 바뀌어갈지를 시사하고 있다.

'이치로'를 브랜드화한 대기만성형 노력파
'굴욕' 발언 스즈키 이치로는 누구... 2년간 2군 생활 거쳐 대스타로

본명은 스즈키 이치로(鈴木一郎. 32). 보통 선수들 같았으면 '스즈키'라고 불렀겠지만 그는 굳이 '이치로'로 불리기를 고집했다. 이치로는 일본에서 가장 흔한 이름 중 하나이다. 장남 이름으로 가장 선호하기 때문이다. 이치로는 그런 이름을 세계적인 브랜드로 만든 선수이다.

이치로는 2001년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기 전부터 이미 일본야구의 '살아있는 신화'였다. 2년간의 프로 2군 생활을 거쳐 1군에 정식 데뷔한 94년 첫 해에 일본야구 최다안타(210개)와 퍼시픽리그 타율(.385) 기록을 갈아치우며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됐다.

이후 2000년까지 MVP 연속 3회, 수위타자 연속 5회, 골든글러브 연속 4회, 최고출루율 연속 3회, 타점왕 1회 등의 기록을 작성하며 '이치로 신화'를 써내려갔다. 이 기간동안 통산타율은 .353에 이른다.

2001년 시애틀 마리너스 유니폼을 입고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이치로는 그 해 아메리칸리그 타격왕(.350)과 도루왕(65개)에 오르며 신인왕 타이틀까지 거머쥐었고, 그 후에도 200안타와 3할대 타율을 한 해도 거르지 않았다.

그는 늘 겸허하게 노력하는 선수로 알려져 있다. 일본의 대부분 야구스타들이 고교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냈지만, 이치로는 그렇지 못했다. 4000여개 팀이 지역별 예선을 거쳐 올라오는 일본고교야구대회(고시엔대회)에서 이치로가 다녔던 나고야덴키고교는 1회전도 통과하기 힘들 정도로 약팀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프로야구도 92년 신인 드래프트 4위로 지명돼 입문할 수 있었다. 그리고 2년간의 2군 생활에서 각고의 노력을 거쳐 대스타로 발돋음할 수 있었던 것이다. 미국에 진출해서도 메이저리그 투수들에게 적응하기 위해 밤 늦게까지 연습장에 불을 밝히며 새로운 타격법을 몸에 익힌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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