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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을 가장 먼저 적용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일까?

DNA기술로 불치병을 치료받아야 할 환자와 가족들, 새로운 기술로 로또 대박의 꿈을 이루고픈 사장님들, 그리고 기술을 정치에 이용하여 정권연장을 이루고 싶은 정치인들일 것이다.

그 중 기술을 가장 강렬히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생명체의 강한 집착-욕망 중 가장 강렬한 '생명 유지'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가장 강렬한 권력이라는 생명의 연장-정권 연장을 이루어내는 수단으로 기술은 활용되어 왔고 활용될 것이다.

나는 유비쿼터스 컴퓨팅 기술이 정치적으로 어떻게 이용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이해와 어떻게 활용해야하는지를 모니터에 그려보고 싶어졌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2004년 11월에 전자투표 사업추진단을 설치하였다. 그리고 정보화 전략 계획을 수립하여 2005년 5월부터 전자투표기 및 인터넷 투표시스템 개발에 들어갔다. 또한 2008년 18대 총선부터 전자투표제를 도입하기 위한 파일럿 시스템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그리고 2012년 19대 총선부터는 유권자가 투표소에 가지 않더라도 개인용 컴퓨터, 노트북, 이동전화, PDA 등을 통해서 선거를 치를 수 있는 유비쿼터스 전자투표 시스템 구축 계획을 발표하였다.

우리나라의 선거 방식의 변화는 투표용지에 아라비아 숫자 도입, 자동개표기 도입이 전부일 정도로 변화가 없었다. 그것은 기술 발전이 없어서가 아니라, 선거시스템을 변경하는 것은 불필요한 정치적 오해, 전 국민의 이해 등을 요구하기 때문이었다.

지난 시절에 선거 방식의 변화는 3.15부정선거 등의 악영향으로 부정 선거라는 오해를 불러올 수 있을 만큼 정권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낮았다. 물론 오늘날 우리나라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는 민주화와 국민적 성숙함을 이룬 나라이지만, 아직도 정치 문제에 민감한 국민 정서와 이해관계 속에서 전자투표는 신중하게 추진되어야 할 과제임에 틀림없다.

현재 추진하고 있는 전자투표제도가 성공한다면, 투표참여율 증가(투표를 하지 않는 이유 중 대부분이 개인적인 용무 때문인 점을 감안하면 원격투표 체제로 발전하게 될 경우 자신이 속한 투표소가 아닌 원하는 장소 어디에서나 투표를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투표율이 높아질 것임), 막대한 선거비용 절감, 무효표 방지, 우리나라의 선거문화를 외국에 수출할 수 있는 기회(해킹 등 보안의 취약점으로 2004년 미국의 대선에서도 도입하지 않은 인터넷 투표 프로젝트를 먼저 시행하여 성공할 경우 수출할 수 있다는 점이지만 그만큼 검증되지 않은 위험한 제도를 도입한다는 위험이 있음) 등이 있다.

과연 이러한 이점 때문에 수십 년 동안 지역감정, 민주화, 독재 등의 역사로 어느 나라보다 시끌시끌하였던 선거방식을 바꿀 수 있는 타당한 이유가 있는지에 대하여 반문하고 싶다.

물론 유비쿼터스 시대에 전자투표제도의 도입은 피할 수 없는 방향이지만 세계 최초로 도입하는 나라치고는 정치적 안정, 문화적 성숙, 국민의 정치적 민감도, 남북 대치, 정치에 대한 신뢰(정치권에 대한 불신으로 투표하지 않았다는 이유가 개인적 용무 다음으로 많음) 등을 고려했을 때 과연 앞선 적용이 바른 것인가 조심스러워지는 대목이다.

유비쿼터스 시대에 전자투표는 기술적으로 선거 행위를 전자화하고 다양한 암호기법으로 위험을 최소화하는 것만이 아니라, 진정한 전자투표제도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대의 민주주의로부터 직접 민주주의가 가능한 시스템 환경 구축, 아날로그 환경에서 구현할 수 없었던 대의민주주의를 이룰 수 있는 새로운 선거 제도 제시가 더욱 중요할 것이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의 몇몇 대통령들은 30~40%대의 찬성으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절대 과반수의 지지나 전체 지역으로부터 고른 지지를 얻지 못하고 특정 지역(특정 지역에 90%이상의 지지를 받아서 당선된 경우도 있음) 등의 인기만 가지고도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선거제도에 문제가 있음은 전 국민이 공감하고 있다.

수학자들이 제시하는 합리적 다수결 제도로는 '결선투표제', '찬성투표제', '보다 산출법'이 있다.

'결선투표제'는 인물 못지않게 정당 간의 연대를 필요로 하는 제도이다. 따라서 상호 비방 대결보다는 정책대결이 더 중요하다. '찬성투표제'는 선호하는 후보에게 모두 표를 던질 수 있는 제도인데 한 번에 선거를 끝낼 수 있으며, 다수의 사람들이 싫어하는 후보가 선출되지 않는다는 장점 때문에 유엔사무총장도 이 방식으로 선출하고 있다.

우리나라 대통령 중에는 대다수의 국민이 싫어한다 해도 일부 지역의 몰표로도 가능한 30%대의 득표로 당선된 경우도 있다는 점 때문에 수학자들이 내세우는 또 하나의 투표방법이 '보다 산출법'이 있다. 이 방법을 쉽게 설명하면, 투표자들이 선호하는 순서로 후보자에게 1, 2, 3등 방식으로 표를 던지게 한 뒤 1등에겐 2점, 2등에겐 1점 그리고 3등에겐 0점 등으로 각 유권자들의 선호도에 점수를 부여하여 종합 득점으로 결정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이 진짜 유권자들의 뜻을 반영한 방법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많다. 하지만 보다 산출법은 투표과정과 개표과정 등의 복잡함으로 현재의 아날로그 투표 방식으로는 실현되기 어려운 방식이다.

따라서 유비쿼터스 컴퓨팅 기술은 아날로그 시대에 불가능한 보다 산출법을 실현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 과거에 할 수 없었던 섬세한 국민 의사 반영, 직접민주주의 제도의 구현 등에 신기술은 활용되어야 할 것이다.

유비쿼터스 컴퓨팅 기술로 전자투표를 구현할 때 선거라는 국민의 권리이자 의무인 중대한 사안을 편리함의 제공이라는 사탕에만 의존하여 도입을 권유할 것이 아니라, 기존 선거제도 안에서 해결할 수 없는 근본적인 민주주의 정신의 반영을 위한 새로운 제안과 대안 제시가 창의적으로 제시되지 못하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가눌 길이 없다. 정책 입안자들의 대안 제시가 선명하지 못할 때, 유비쿼터스 컴퓨팅 선거제도라는 선도 기술도 낡은 정치적 쟁점 거리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막연히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선거제도라는 커다란 변화를 시도하고, 잘 운영되던 아날로그 선거제도를 단순히 편리함을 주기 위해 디지털 기술을 도입한다는 것은 젊은 층의 투표율을 높여 선거에서의 이해관계를 얻으려는 정치적 술수라는 오해 등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정책 담당자와 정치 브레인의 혜안 없는 모습에 실소를 금할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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